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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까페, 극장, 오락실, 헛간

한일 축구에 관한 단상 /10여년 전의 예측

by DoorsNwalls 202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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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 축구와 연을 맺던 시절에 썼던 글이다.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듯 하여 예전 글을 약간 손 봐 헛간에 넣어둔다. 이제 축구와의 연은 거의 끊어졌지만, 옛 정을 생각하면 한국 축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J리그와의 비교는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판단된다.
 

메시를 눈앞에서 보던 시절의 기자실

 
엘리트 스포츠의 빛과 그늘
 
그 동안 AFC 주최 및 A3 챔피언스컵 등 공식대회에서 K리그 팀들은 J리그 소속 클럽과의 맞대결을 통해 20승 9무 9패의 우위(2006년 3월 10일 현재)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주니어피켜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의 김연아가 일본의 아사다마오를 꺽자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일본방송에서 내보낸 통계가 피겨 선수 수였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일본이 2천여명이었고 한국은 그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였던 것으로 방송이 되었다. 그러면서 얼마전 폐막한 토리노동계올림픽 통계수치를 보여주었다. 일본은 120명 파견에 금메달 한 개, 한국은 선수단 40명 파견에 11개 금메달. 일본 캐스터들이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적게 투자한 한국이 무려 11배의 성과를 올렸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축구에서도 이러한 투자 대 성과의 비율이 다르게 나올 때, 한 쪽은 성격상 그러면 더 투자하자라는 결론이 나올 것이고, 다른 한 쪽은 또 성격상 그 만큼 해서 이 정도 했으니 투자를 안 해도 되겠다는 결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K리그의 경기력 우위가 의미하는 것
 
이러한 성과는 물론 환영할 만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시장의 원리대로 말하면 일본은 망하는 장사를 한 것이고 한국은 효율적인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누린 셈이다. 축구 시장규모나 저변만을 놓고 볼 때 한국은 일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대 일본전 전적에서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승리를 거두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많이 졌다) 리그의 경제적 규모와 실력은 어떤 면에서는 비례하는 측면이 있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한국과 일본처럼 특수한 역사적 관계에 놓여있을 때,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는 집단은 가해자 집단에 대해 쉽사리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을 준비하기 마련이다. 일본과의 시합이 선수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록 프로리그에서의 경기이기는 하지만 정서적으로 일본에 진다는 것은, 축구에서 만큼은 쉽사리 용서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만이 절대적인 이유는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이는 양국 리그의 플레이 스타일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양국의 프로리그 스타일에서도 그 원인은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J리그를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K리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느슨한 수비망이다. 매우 주관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J리그의 경우 관중을 불러모으기 위해서 멋진 골장면을 애써 막지는 않는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특히 일대일 노마크 찬스에서 백테클로 경기를 끊고, 불필요한 지역에서의 몸싸움 등은 K리그에 비해 매우 적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리에 충실하자
 
본론으로 돌아가서, 최소 투자에 최대 효과를 냈다면 이는 경영자의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가끔 이런 소리를 듣는다.
 
“일본의 축구문화가 아무리 발달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일본을 이기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타당한 말씀이다. 우리가 경기력 면에서 우위에 있고 그것을 계속 지금의 체제로도 유지해갈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리지 않는 지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서포터나 팬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포터는 소비자이다. (물론 리그의 발전을 위해 함께 협력해가는 소비자이다.)
 
일본을 우리가 이기는 한 그들의 축구문화가 아무리 발달을 하더라도 거기서 배울 것은 없다라고 일언지하에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라와 서포터
 
다시 본 주제로 넘어가겠다. J리그 구단의 재정은 속속 흑자로 전환되고 있다. 우라와 레즈에서 만난 한 서포터는 자신들의 조직이 수 십 개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100여명도 안 되는 작은 소그룹에서 이미 자체적으로 티셔츠를 만들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출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포터 그룹은 작게는 몇 십 명 단위에서부터 시작되어, 몇 천명까지 확대되어 나간다. 그리고 다시 그 단위는 필히 몇 십 명 단위로 쪼개지게 되어있다. 우라와 레즈 서포터의 경우 그것은 매우 발전적인 해체의 한 과정을 이루었음을 나는 그곳에서 목도한 것이다. 97년 일본 축구여행 당시 보았던 서포터의 모습은 우리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서포터들이 일본 프로리그 서포터들에 비해 결코 응원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조직이 발전적으로 해체해서 몇 십 개의 하위 조직이 각각 자생적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자율적인 모습으로 하위 문화를 형성하고, 경기장에서 그것을 별 싸움 없이 조율해 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레벨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구나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는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전관중의 서포터화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이다.
유럽을 예로 들면 그것이 바로 각 서포터들의 지역단위 펍 문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제이리그의 서포터들은 이미 그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양의 축적이 질을 바꾼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는 문화의 힘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양질변화의 법칙이다. 경제학 기초 책자에 나오는, 양질변화의 법칙은 이렇다.
 
양적 변화가 극에 달하면 그것을 수용하는 틀(frame)은 더 이상 양을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며 파괴된다. 그리고 새로운 틀이 생성되어 질적 변화를 급격히 도모하게 된다. 이것이 변증법의 '양질전환의 법칙'이다.
 
J리그는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으며 이는 곳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양국 리그의 스타일의 차이 그리고 역사적 굴곡으로 인한 정신무장적 측면을 제외하고서도 지금 이대로 50년을 간다면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나는 물론 알 수 없다. 세상사 내 앞일도 모르는 판에 리그의 50년 후는 더욱 예측할 수 없다. 다만, J리그가 끊임없이 JFA의 [백년구상]대로 굴러가고 우리가 [단기구상]으로 리그를 운영해 나간다면, 승리의 여신이 어느 편을 들어줄지 모르겠다.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J리그의 출범 이후로 한국은 더 이상 일본을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실제로 이유를 불문하고 아시아지역최고 권위의 대회인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3연패를 달성한 것은, 우리에겐 간과할 측면이 아니다. 그것을 월드컵 4강으로 눌러버릴 수만은 없다. 이미 일본은 J리그 출범 이후로 과거의 일본이 아니지 않은가.
 
J리그 백년 구상
 
제이리그 백년 구상의 개요를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이 사는 마을에 푸른 잔디로 뒤덮인 광장과 시설을 만드는 것
-축구에 한정하지 않고, 당신이 하고 싶은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클럽을 만드는 것
-[보기] [참여] [참가하기] 스포츠를 통해 세대를 넘어선 접촉의 장을 넓히는 것
 
지금 내가 여기서 단순히 비교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사회전체적인 문제로서 총체적인 검토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아무런 자료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분석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니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축구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았다. 각론은 있으나, 총론이 존재하지 않았다. 경기력 향상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은 좋다. 축구인 위상 강화도 물론 좋다. 그러는 사이 우리 소비자 서포터들이 즐겨야 할 문화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어디서 하고 있는가? 이것이 과연 서포터만의 문제일까? (이 글은 10여년 전에 쓴 것이다. 지금은 KFA에도 장기 플랜이 세워져 있다- 글쓴이)
 
축구에서도 문화적 역량이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이기고 있다고 내일도 이길 수 없음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주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으로 더구나 자본력으로 무장하고 축구 문화를 만들어가는 세력이 일본에 존재하는 한, 또 우리 국민들이 일본을 축구에서 이겨주기를 바란다면, 지금이 바로 새롭게 총론과 계획을 짜고 준비해야할 시점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대로라면 축구에서 일본을 이길 수 없는 날이 10년 후 20년 후에 당도할 것이다. (2006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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