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02-장벽에 둘러싸인 바티칸 시국 안에서
장벽에 둘러싸인 바티칸 시국Città del Vaticano: 두 번의 여정에서 발견한 매력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바티칸 시국을 여행하며 느꼈던 경외감은 여전히 생생하다. 10년 전, 첫 방문에서 이 작은 도시국가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최근 두 번째 방문에서, 시간과 경험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바티칸은 다시금 나를 놀라게 했다. 종교적 신념을 넘어 예술, 건축, 역사로 가득 찬 이곳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바티칸은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의 끝처럼 고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 국가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그 규모를 넘어서는 문화적, 역사적 유산은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이번 글에서는 바티칸 시국의 매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천사의 다리(Ponte Sant'Angelo): 바티칸으로 가는 신성한 길
바티칸 시국으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천사의 다리(Ponte Sant'Angelo)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의 유산과 가톨릭교회의 신앙이 어우러져, 바티칸으로 향하는 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천사의 다리의 역사적 기원
천사의 다리는 서기 134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가 자신의 영묘로 가는 길목에 세운 다리로, 당시에는 Aelius 다리라 불렸다. 하드리아누스 영묘는 후에 산탄젤로 성(Castel Sant'Angelo)으로 개명되었고, 다리도 자연스레 산탄젤로와 연관되어 이름이 바뀌었다.
이 다리는 티베르 강을 가로지르며, 로마 중심부와 바티칸 시국을 연결하는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해왔다. 중세 시기에는 바티칸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자리 잡아 신앙적인 중요성도 높아졌다.

천사의 다리와 베르니니의 조각
현재 천사의 다리는 단순한 교량이 아닌 예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리를 장식하는 열 명의 천사상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조각가 지오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설계한 것이다.

각 천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물건을 들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천사는 십자가를 들고 있으며, 또 다른 천사는 가시관을 쥐고 있다. 이러한 상징들은 단순히 다리를 건너는 행위를 신앙적 묵상의 시간으로 변모시킨다.
특히, 천사상은 섬세한 디테일과 웅장한 조화를 자랑한다. 베르니니의 손길이 닿은 이 작품들은 단순한 장식물을 넘어 신성함을 전하는 도구로 여겨진다.

천사의 다리는 단순히 물리적 연결을 넘어, 바티칸으로 향하는 신앙적 여정을 상징한다. 많은 순례자와 여행객들에게,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은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가는 신성한 발걸음의 시작이다.
오늘날 천사의 다리는 로마를 찾는 이들에게 사진 명소로도 사랑받고 있지만, 그 속에는 수세기에 걸친 역사의 무게와 종교적 신비로움이 녹아 있다. 바티칸으로 가는 길에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로마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티칸 시국의 역사와 도시 구성
바티칸 시국은 면적이 약 44헥타르(0.44㎢)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 국가다. 교황청의 본거지이자 가톨릭교회의 중심지로, 1929년 라테라노 조약에 따라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했다. 장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국가의 기원은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성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 그를 기리기 위한 교회를 세운 것이 이곳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바티칸 시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성 베드로 광장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공간과, 교황의 거처이자 행정 중심지인 바티칸 궁전 및 정원이다. 특히 바티칸 박물관은 방대한 예술품과 고문서를 보관하고 있어, 예술과 역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대성당 앞의 성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은 대성당의 웅장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광장은 타원형으로, 중앙의 오벨리스크와 분수, 그리고 이를 둘러싼 대열주(콜로네이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광장은 매주 교황이 축복을 내리는 장소로,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와 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신앙과 예술의 정점
성 베드로 대성당은 단순히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신앙과 예술이 결합된 거대한 걸작이다. 이곳은 초기 기독교의 수호자인 성 베드로의 유해가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장소 위에 세워졌다. 대성당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돔 중 하나다.

피에타(Pietà)
미켈란젤로가 24세의 나이에 조각한 피에타는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이 작품은 섬세하면서도 고요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대성당의 돔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돔 중 하나다. 돔의 높이는 약 136미터로, 성당의 중심에 서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돔 내부에는 천국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어, 신성한 분위기를 더한다.
정면은 마데르노(Maderno)가 설계한 것으로, 기둥과 조각이 조화를 이루며 압도적인 웅장함을 자랑한다. 입구로 들어서면 대성당의 넓고 화려한 내부가 펼쳐진다. 대성당 내부의 중심에는 베르니니가 설계한 발다키노가 있다. 거대한 청동 기둥으로 만들어진 이 천개는 성 베드로의 무덤을 보호하며, 성스러움과 장엄함을 더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초대 교황이자 예수의 제자였던 성 베드로(Saint Peter)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하였고, 그의 유해는 이곳에 묻혔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장소에 초기 기독교 교회를 세웠는데, 이것이 대성당의 기원이다.
현재의 대성당은 1506년에 착공되어 1626년에 완공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거장들이 참여했다. 브라만테(Bramante), 라파엘로(Raphael),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베르니니(Bernini) 등이 설계와 조각에 관여하며, 이곳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당으로 만들었다.


성 베드로의 유해와 지하 묘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가장 신성한 부분은 지하에 위치한 성 베드로의 무덤이다. 이곳은 성당의 기초가 된 장소로, 순례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고고학 발굴로 실제로 성 베드로의 유해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신앙적 상징이 되었다. 지하 묘지에는 성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교황들의 무덤도 있어, 바티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옥상에서 바라본 바티칸 시국의 전경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에 오르면 바티칸 시국과 로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로는 광장이 보이고, 주변으로는 로마의 붉은 지붕들이 펼쳐진다. 바티칸 정원의 푸르름과 멀리 보이는 티베르 강은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돔 위에서는 도시의 구성과 더불어 바티칸 시국의 독립성과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세계의 중심 같은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놀라울 만큼 평화롭다.


장벽에 둘러싸인 도시
바티칸이 장벽으로 둘러싸인 이유는 역사적, 종교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세 시대에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벽이 필요했다. 또한, 교황청의 독립성과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도 있었다.


장벽은 단순히 방어 시설이 아니라, 종교와 세속을 분리하는 상징이었다. 지금은 과거처럼 물리적 방어가 필요하지 않지만, 장벽은 여전히 바티칸 시국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짓는 역할을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신앙과 예술의 결정체다. 이곳에 서면 인류의 경이로운 창조력과 신앙의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대성당을 방문하며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평생의 기억이 될 것이다.
다음 여행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로
바티칸 시국에서 느낀 신앙과 역사의 여운을 간직한 채, 이제 다음 여행지로 피렌체를 추천하고 싶다.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알려진 피렌체는 예술과 건축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두오모 성당,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다리 등 셀 수 없는 명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티칸이 영혼의 고양을 느끼게 했다면, 피렌체는 예술적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이 두 도시의 여정은 인간이 남긴 위대한 유산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되새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