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로 떠나기로 한 계기는 THE BALTIMORE ROW HOUSE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도시의 연립주택(rowhouse)에 얽힌 200년의 역사를 다루며, 이러한 건축 양식이 볼티모어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볼티모어에서 연립주택이 번창하고 보존된 이유와 그 역사적 배경에 매료된 나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약간의 긴장이 있었다. 대학원 친구들이 볼티모어의 높은 강력 범죄율에 대해 우려하며 조심하라고 충고했고, 당시 뉴욕 맨해튼에서는 한 한인이 강도 사건 중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흉흉한 뉴스까지 들려왔다. 이런 이야기에 아내는 불안을 느꼈지만, 나는 신중히 여행을 준비하며 예정대로 떠나기로 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볼티모어로 향했다. 차 안을 둘러보니, 아시안은 우리 부부뿐이었고 대부분이 흑인이었다. 아내는 조금 긴장했지만, 버스 안 분위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아무 문제 없이 도착한 볼티모어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연립주택의 도시, 볼티모어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THE BALTIMORE ROW HOUSE에서 묘사된 연립주택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볼티모어의 연립주택은 붉은 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시의 완만한 언덕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 건축 양식은 19세기 이주민들을 위한 실용적인 주택에서 시작되어, 20세기에 지역 정부의 지원 아래 개조와 회복 과정을 거쳤고, 현재는 부유한 전문가들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볼티모어의 연립주택은 다른 도시들처럼 대규모 파괴를 겪지 않고 독창성을 유지한 채 보존되었으며, 이는 지역 주민들의 노력과 문화적 자부심 덕분이었다. 이 독특한 풍경은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면을 보여주었고, 나는 잠시 이곳의 시간 속에 빠져들었다.
Historic Ships in Baltimore 방문
첫 번째 방문지는 볼티모어 해안가에 위치한 Historic Ships in Baltimore였다. 이곳은 USS 컨스텔레이션 박물관과 볼티모어 해양 박물관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해양 박물관으로, 네 척의 역사적인 배와 등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USS 컨스텔레이션이었다. 이는 미국 해군이 설계하고 건조한 마지막 순수 돛범선으로, 미국의 해양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이었다.
다른 전시물로는 진주만 공격에 참여했던 해안경비대 함정 WHEC-37, 제2차 세계대전 중 적 함선을 마지막으로 격침시킨 잠수함 USS 토르스크, 그리고 체서피크만 입구를 지켰던 라이트쉽 체서피크가 있었다. 모두가 국립역사기념물로 지정된 이 유산들은 과거의 해양 역사를 생생히 느끼게 해주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다음으로 찾은 곳은 볼티모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었다. 이곳은 롬바드와 게이 스트리트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으며, 중심에는 조셉 셰퍼드의 홀로코스트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불길 속에서 뒤틀린 채 쌓인 희생자들의 형상을 본 순간, 나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비극과 고통을 마주한 듯했다.
조각상의 아래에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유명한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
삼각형 모양의 중앙 광장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착용해야 했던 노란 배지를 상징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 세워진 조각과 기념비는 역사를 잊지 말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볼티모어의 해안가와 시내를 6시간 넘게 둘러본 뒤, 저녁 무렵 기차를 타고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의 우려와는 달리 여행은 대체로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물론 몇 차례 긴장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볼티모어의 매력적인 건축물과 역사를 체험하며 얻은 감동이 모든 걱정을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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