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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연구와 번역46

한강 작가의 202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뻐하며 어젯밤 유튜브에 접속해 믿기지 않는 뉴스를 봤다. 라이브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전하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시즌이라는 것도 잊고 살고 있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 컸다. 문학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강 소설의 애독자로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한강은 아시아 출신 수상자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여성으로서는 최초라는 영예 또한 안았다.  그동안 유럽중심주의, 남성작가 중심주의로 비판받아 왔던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가 50대의 아시아 여성작가인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파격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장수를 해야 한다는 식의 유머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더욱 그렇다!  노벨문학상으로 논문을 쓴 적이 있었기에, 이 상을 받는 것이 얼마.. 2024. 10. 11.
어느 일본 작가와 시인 김종한의 우정 일제의 패망이 점차 다가오고 있던 1944년 9월 말, 식민지 조선의 시인 김종한은 급성 폐렴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여기에 번역해 소개하는 글은 노리타케 카즈오(則武三雄, 1909-1990)가 그런 김종한의 죽음을 애도하며 『국민시인(國民詩人)』(朝鮮文人報國會詩部會 機關誌, 第四卷四號)에 발표한 것이다. 이 글을 번역 소개하면서 다음 두 가지에 주목해 봤다. 첫째, 『국민시인』이라는 매체의 존재와 김종한의 일본어 시 「광진」의 발견이다. 이 글을 보고 일제말 인문사(人文社)에서 발행한 『국민시인』이라는 잡지의 존재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이 잡지는 1945년에 발행된 것으로 일부 연구에서 다뤄져 왔으나, 이는 적어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서정주가 관여했다고 회자되고 있는 『국.. 2024. 10. 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세키구치 야스요시 교수 / 일본 측 추천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 기행문 한국어 번역을 기대하며  세키구치 야스요시関口安義 / 쓰루문과대학都留文科大学 명예교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기행문『지나유기支那游記』(『중국유기中国游記』)는 오늘날 일본과 중국에서 재평가 되고 있다. 1920년대 초, 검열이라는 국가의 탄압을 의식하면서 허용된 표현의 범위 안에서 아슬아슬 하게 줄타기하며 중국의 실태를 그린 이 작품이 현재 새로운 고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에서는 일본의 연구 상황을 흡수하면서 세 종류의 『중국유기』가 각가 다른 번역자에 의해 출판됐다.  과거 중국에서 아쿠타가와는 중국을 멸시하는 내용의 기행문을 쓴 작가로 여겨져 부정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쿠타가와가 『지나유기』에서 1920년대 초기 중국을 사실적으로 명확히 .. 2024. 9. 3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오자와 준 연구자 / 일본 측 추천문 저널리스트로서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개조사改造社의 저널리즘을 둘러싸고  오자와 준小澤純 / 아쿠타가와 문학 연구자    『지나유기』를 간행한 개조사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관계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개조사는 정치적 야심을 계속 품고 있었던 가고시마鹿児島 출신의 야마모토 사네아쓰山本実彦(1885‐1952)가 1919년에 창업한 신흥 출판사다. 야마모토는 정치적으로는 보수파로 소년 시기에는 오키나와에서 소학교 대용교원(자격증 없이 교직에 종사)이 됐고, 야마토신문사やまと新聞社에서 일할 때는 런던 특파원으로 파견됐다.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했을 때는 러일공동사업의 가능성을 모색했으며, 현대 중국에 대해서도 강한 관심을 갖는 등 저널리스트적인 감성이 풍부했다. 종합잡지 『개조』는 데모크라시democracy를.. 2024. 9. 3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시노자키 교수 / 일본 측 추천문 '흔들림'으로부터 배운다  시노자키 미오코篠崎美生子 / 게이센여자학원대학 교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910년대부터 20년대에 걸쳐서 활약한 단편소설 작가지만, 살아 있을 당시에도 아시아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어 실력이 출중한 독자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 그 정도로 많았던 것은 당시 일본이 식민지를 만든 결과라 하겠습니다. 다만 아쿠타가와가 1927년에 자살했을 때, 그 형이상학적인 죽음을 흉내 낸 청년은 일본 만이 아니라 조선에서도 있었습니다. 당시 아쿠타가와가 그 정도로 강력한 언설 생산력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 그가 구사한 언어를 시대 속에 다시 놓고 진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일본의 독자, 연구자만의 힘만으로.. 2024. 9. 3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진강 교수 / 중국 측 추천문 지성이 연마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중국 기행  진강秦剛 / 북경외국어대학 교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근대 일본인 작가 가운데서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애독된 작가 중 한명이다. 그것은 그가 아시아에 공통된 전통적인 문화 교양을 지니고 구미歐美 문학과 깊이 있게 접촉함으로써 현대문예의 소양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시야를 확보해서 주옥과도 같은 작품을 많이 창작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등의 문제는 아쿠타가와가 전 생애 걸쳐 전개했던 문학적 주제였다. 아쿠타가와는 유행작가가 된 젊은 무렵부터 동서의 교양과 지성을 겸비하고 있는 문화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21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서 아쿠타가와는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大阪毎日新聞社의 특파원으로서 중국 각지를 넉 달에.. 2024. 9. 3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미야사카 교수 / 일본 측 추천문 『지나유기』, 작은 풍경화小景              미야사카 사토루宮坂覺 /페리스여자학원대학フェリス女学院大学 명예교수, 국제아쿠타가와학회 회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35년여의 생애 동안 1921년 3월부터 7월에 걸쳐 생애 첫 해외여행인 중국을 다녀왔다. 그 기행에서 얻은 성과 중 하나가 『지나유기支那游記』이다. 아쿠타가와가 쓴 서간 등을 훑어보면 그가 중국 기행에 깊은 관심을 지닌 것은 몇 년 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18년 가을에는 "나도 지나支那에 가고 싶지만 은의 시세가 올라갔고 금은 전혀 없어. 가고 싶다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라고 쓰고 있다. 또한 다음 해 1919년 여름에는 "소생은 지나 여행을 하지 않는 한"이라고 쓰면서 그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2024. 9. 30.
김시종 시인과 함께 했던 니가타 방문 기록 / 일본 김시종 시인과 관련된 행사가 니가타에서 열려 두 번째로 니가타를 방문했다. 니가타에는 지금까지 총 3번 다녀왔는데 인천공항에서 직항이 매일 있지 않아서 날짜를 잘 맞춰야 한다. 이번 방문의 목적지는 '귀국사업' 때 배가 오갔던 니가타항구와 간기길, 그리고 행사가 열렸던 사구관이다. 니가타항구는 당시를 기념하는 '버드나무길'이 지금도 건재하다. 니가타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니가타항구로 향했다. 멀지 않은 길이라 1000엔 조금 넘는 미터가 올라갔을 때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니가타 항구 주변니가타 항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북한과의 관계 악화로 귀국사업 때 배가 오고갔던 선착장 출입 자체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 문구도 붙어 있다. 포켓몬고 유저 출입도 금지한다.. 2024. 9. 25.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 사상의 원점 이 글은 이제 막 시작된 한국 내 오키나와 문학 수용을 시야에 넣고, 오키나와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메도루마 슌(目取真俊, 1960-)의 반기지 활동을 이룬 사상의 원점을 점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메도루마는 자신이 밟고 서있는 땅을 일본 및 미국과 맺은 근대 이후의 역사를 통해 상대화해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작가/활동가로서 살아왔다. 이 글에서는 메도루마가 오키나와를 기점으로 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사유를 확대되어간 경위를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1999년을 기점으로 활발히 펼친 평론활동을 검토하려 한다.   ‘공포의 섬’ 오키나와  메도루마 슌은 ‘군사기지의 섬’ 오키나와가 근대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공포의 섬’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2024. 9. 21.
일본문학자들의 전쟁책임을 묻다 / 오다기리 히데오 오다기리 히데오(小田切秀雄) 중요한 문제이기에 (1946년) 3월 29일, 신일본문학회 도쿄지부 창립대회에서 제안을 해 가결된 회의 요지를 이하 게재한다. 요지 작성에 있어서는 지부 창립준비위원회 제 씨의 협력을 얻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 새로운 문학적 창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혼미・빈곤이 일반적인 상태다. 이는 전쟁 중의 암담한 날들 가운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억압으로 인해 우리들 창조의 주체 그 자신이 심각하게 고통 받은 실정을 말해 주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에 견딜 수 있기까지는 억압에 의해 왜곡된 우리들 자신의 혼과 육체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을 회복하는 것은 용이하게 이뤄지는 일은 아니리라. 우리들이 받은 상흔은 크며 쉽게 아물지 않는 깊이를 통해 육체를 부수고 피를.. 2024. 9. 20.
재일조선인 베스트셀러 작가, 양석일의 문학세계 시작하며 양석일은 ‘재일조선인1, 2세 작가(재일한국인작가, 재일작가라고도 부름)’들 중에서 일본의 독서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널리 알려졌다(대중성)’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데, 재일조선인작가들의 경우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엄밀한 의미에서 일본의 대다수 독서 대중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일조선인1, 2세의 경우에는 일본의 독서대중보다는 문단 및 재일조선인들에게 주목을 받는 작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유미리나 가네시로 카즈키에 앞서 일본독자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양석일 문학의 ‘대중성’을 논하기 이전에 우선 살펴 봐야 할 것은 그가 재일조선인문학사 가운데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재일조선인’ 작가라 함은 1945년 이후 일본에서 문학적 활.. 2024. 9. 20.
아쿠타가와상 작가, 마타요시 에이키의 문학세계 작가 스스로가 말하는 자신의 작품 세계!  제8회 규슈예술제문학상을 수상한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ジョージが射殺した猪)」(『文学科界』1978.3)라는 작품을 통해서 제 소설관의 일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래, 소설 작품이라는 것은 완결돼 있어서, (작가가) 작품을 보족하거나 해설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으며, 또한 올바르지 못한 방법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오키나와라고 하는 작은 섬의 일단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독자 한 사람’의 입장에서 제 작품을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  줄거리베트남전쟁 당시. 무대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주변. 마음이 약하고 왜소한 체격의 미군 병사 조지가 주인공. 조지는 동료에게도 흑인 병사에게도 오키나.. 2024.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