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여행의 세 번째 날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좀 더 깊이 경험하는 여정이었다. 아침부터 북적이는 퀸시 마켓에서 시작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고, 이어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찾아가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상처를 되새겨 보았다. 마치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듯한 그곳을 지나, 벙커 힐로 발걸음을 옮겨 독립전쟁 당시의 혁명과 저항의 흔적을 따라가며 보스턴이 간직한 독립의 열정을 새롭게 마주하는 기회를 가졌다.
♣ 보스턴 퀸시마켓: 랍스터롤과 차우더에 빠져 들다
보스턴 퀸시마켓은 활기찬 분위기와 다양한 음식점으로 유명해 방문 전부터 큰 기대가 됐다. 마켓에 들어서자마자 양옆으로 늘어선 상점들과 군침 도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와 음식 준비하는 소리가 어우러져 활기가 넘쳤다. 퀸시마켓은 보스턴의 중심지로서 전 세계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우선 랍스터롤을 주문했다. 한 입 베어 물자 입안 가득 퍼지는 신선한 랍스터와 고소한 버터 향이 정말 일품이었다. 랍스터 살이 탱글탱글하고 신선함이 그대로 느껴졌고, 간도 딱 맞아 너무 짜거나 느끼하지 않았다. 이어서 차우더도 맛봤는데, 크리미하면서도 깊은 바다의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찬 바람 부는 보스턴 거리에서 따뜻한 차우더 한 숟갈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래리 버드 기념비로 향했다. 1979년 NBA에 데뷔한 래리 버드는 미국 농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백인 스타라고 한다. 그가 보스턴 셀틱스를 이끌며 수많은 명승부와 기록들을 남긴 덕에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비록 그의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더 뉴잉글랜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강렬한 상징으로 가득한 장소다. 투명한 유리 타워들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특히 타워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증기가 기념비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한다.
이 수증기는 두 가지 의미를 상징하는 듯 하다. 하나는 홀로코스트 당시 가스실에서 희생된 이들의 마지막 숨결을 나타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비극의 무게를 직접 느끼게 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망각을 거부하는 영원한 기억의 상징이기도 하다. 끝없이 피어오르는 증기는 희생자들이 결코 잊히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 마음에 계속해서 살아있음을 상기시킨다.
기념비의 한편에는 독일인 목사 마틴 니묄러의 시가 새겨져 있었다. 그 유명한 구절,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비석은 침묵의 대가를 경고한다. 마지막 구절인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현재성을 확보하고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금언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들, 타워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증기, 그리고 니묄러의 시는 모두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새기고 있다.
♣ 미국 독립전쟁의 성지 벙커힐과 미 해군 군함 컨스티튜션을 기리는 뮤지엄에 가다
미국 독립전쟁의 역사가 숨 쉬는 벙커힐에 도착하자마자, 전쟁 당시의 치열했던 순간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벙커힐 전투는 1775년 6월, 보스턴 포위전 중에 일어난 주요 전투로, 영국군이 승리했지만 미국 독립군이 보여준 용기와 저항 정신은 독립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기념비가 서 있는 언덕에 올라 바라본 보스턴 시내는 그날의 전투와 승리를 꿈꾸던 독립군의 마음을 느끼게 했다. 벙커힐의 기념비는 당시 그들의 희생을 기리며, 오늘날까지도 미국 독립 정신을 상기시킨다.
벙커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미 해군 군함 컨스티튜션 뮤지엄도 함께 방문했다. 이곳에는 미국 해군의 역사와 이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군함 컨스티튜션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어서 본 미 해군 군함 컨스티튜션은 3개의 돛을 단 목조 프리깃으로, 전함의 위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헌법'이라는 뜻을 지닌 이 이름은 미국 헌법 제정 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직접 붙인 이름으로, 미국이 자랑하는 상징적인 함선이다.
보스턴에서 만난 미 해군의 목조 호위함, 컨스티튜션은 오랜 역사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배는 미영전쟁 당시 활약으로 유명하며, 미국 해군의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영국 해군에 맞서기 위해 통과된 해군법에 따라 건조된 6척의 44문 대형 호위함 중 하나로, 1797년에 처음 건조되어 진수되었다. 현재의 모항은 바로 이곳 보스턴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항행이 가능한 군함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배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면서도 여전히 미 해군의 현역 함정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함정의 함장은 일반적으로 항공모함이나 전략 핵잠수함(SSBN)의 지휘 경험이 있거나, 그에 준하는 군 경험을 가진 대령 계급의 장교가 명예직으로 맡는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이 이 함정을 어떻게 여기는지, 또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느껴졌다.
미 해군 군함 컨스티튜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해군함으로, 1797년에 취역한 후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이 배는 독립 이후 미국이 해상에서 자국을 방어하고, 해군력을 확립하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군함을 바라보며 당시 미국의 자부심과 헌법 수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이 역사의 산증인이 오늘날까지 보존된 것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
'도시의 벽을 넘어 > 미국 및 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욕 맨하탄 생활 17-볼티모어 연립주택을 찾아 (0) | 2024.11.22 |
---|---|
뉴욕 맨하탄 생활 16-필라델피아 시티 홀, 독립기념관 자유의 종, 유펜 인류고고학물관 (0) | 2024.11.22 |
뉴욕 맨하탄 생활 14-보스턴 하버드대학 방문 후 덕투어 (0) | 2024.11.22 |
뉴욕 맨하탄 생활 13-미국 3대 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방문 (0) | 2024.11.22 |
뉴욕 맨하탄 생활 12-예일대학 베이네케 고문서 도서관 (0) | 2024.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