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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벽을 넘어/국내 및 동아시아

아름다운 미야코섬에 빠져든 사흘 동안의 여행 기록 / 오키나와

by DoorsNwalls 2024. 10. 7.

지난 여름 오키나와 본도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킬로 정도 떨어진 미야코섬宮古島에 다녀왔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미야코섬과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연구 목적상 일본 여기저기와 오키나와 곳곳을 다녀봤기에 미야코 또한 오키나와 제도 안에 속한 하나의 섬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사흘의 시간을 보내고, 미야코섬은 오키나와 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억에 각인됐다.  

미야코행 일본 국내선 티켓

미야코섬에서 처음으로 사방이 탁 트인 바다 위 작은 섬에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한밤중 '호텔' 주인의 안내로 은하수를 보러 간 경험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진으로는 온전히 남길 수 없는, 글과 생각 속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특히 은하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본 것이라서 내 구형 카메라로 찍은 것에는 어둠만이 남겨져 있다.

나하에서 미야코까지는 352KM
나하공항을 떠나 미야코섬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미야코공항에 내려서 렌트카부터 찾았다
미야코를 안내해주신 분의 집에 잠깐 들렀다
미야코섬 안내도

 헨나사키 등대(平安名埼灯台)로!


미야코섬에 도착해서 렌트카를 빌린 후 헨나사키등대를 방문했다. 미야코섬에서 태어난 오키나와 시인 이치하라 치카코는 이 등대를 자신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등대는 큰 뱀


용을 너무나 동경하여
몸이 비틀린 큰 뱀이
곶에 있는 등대*의 
나선형 계간을 알맞은 거처로 삼아
3천 년 동안 빛을 닦고 있다
하는데

빛을 내기까지 
뜨거운 나선형 미로를 제 자신의 극점까지
매달아 올려 힘들게 견디며
그 굽어 있음을 동경해 
빛의 아름다움을 소생시킨다

(시의 일부임. 전문은 오키나와문학 선집에 수록돼 있음)

헨나사키 등대 가는 길
헨나사키 등대 가는 길

 

헨나사키 등대 가는 길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며 등대에 서 있으면,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변엔 그저 하늘과 바다뿐,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감돈다.
 
이곳에 서 있자, 미야코 출신 지식인들의 넓은 시야가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 시인 이치하라 치카코가 이 등대를 시에서 큰 뱀으로 묘사한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그녀의 시에서 등대는 몸이 뒤틀린 뱀이 나선형 계단을 3천 년 동안 빛을 닦으며 오르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곳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마치 이 등대가 오랜 세월 동안 그 비틀린 길을 견디며 빛을 찾아내는 것처럼, 이 섬에서 태어난 이들이 깊이 있는 사유 끝에 넓은 시야를 얻게 되는 여정을 닮아 있다고 느껴졌다.
 
섬의 고립감 속에서,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을 마주하며, 이곳이 주는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이 그들의 지적 여정을 형성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야코 류큐-미국 문화 회관으로


도착한 날의 마지막 여정으로 류큐-미국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오키나와 문화라고 해도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실감을 얻었다. 미야코섬의 위치는 오키나와와 타이완 사이에 있어서 오키나와 본섬보다도 남방문화의 영향을 훨씬 더 강하게 받은 곳이다. 이곳에서 본 검은 가면을 쓴 '내방신'은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방신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다.

미야코 류큐-미국 문화 회관에서

 

미야코 류큐-미국 문화 회관에서

미야코섬에서 경험한 내방신은 단순한 전통 의례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했다. 검은 가면을 쓴 내방신의 모습은 신비롭고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이 섬의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오키나와 본섬과는 또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품고 있는 미야코섬의 내방신 의식은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자,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축복과 수호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내방신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시도는 이 섬의 문화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미야코 류큐-미국 문화 회관에서

 
 

미야코 류큐-미국 문화 회관에서

 
 
 
 게이코미술관


다음날은 미야코섬에서 살고 있는 S라는 현지인의 안내를 받고 돌아다녔다. S씨의 안내를 받고 다음날 아침 찾아간 곳은 미야코 섬에서 살고 있는 미술가 가키하나 게이코 씨가 만든 '게이코미술관'이다.

게이코미술관

 
1998년에 개관한 게이코미술관은 미야코섬 시가지 근처의 히라라 지역 시모사토 거리에 있다. 건물에는 눈 모양이 그려져 있으며, 사람 얼굴 타일이 건물 전체에 붙어 있는 초현실주의 컨셉의 미술관이다. 입구에는 ‘무섭고 신기한 미술관’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게이코미술관
게이코미술관에서

이 미술관은 오키나와 현 유일의 초현실주의, 환상 미술을 중심으로 한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서양화가 가키하나 게이코 씨의 작품을 주로 다룬다. 또한, 전시는 1층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2층은 주거 공간이다.

우리가 찾아간 날 가키하나 게이코 씨가 직접 미술관을 안내해주셨다. 게이코 씨의 작품 설명을 들으며 초현실주의와 환상 미술에 대한 그녀의 깊은 이해와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친 후에는 2층으로 올라가 커피를 대접받으며 한참 동안 환담을 나누었다. 그녀의 남편 또한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시며, 그가 남긴 시모타 세이지 전집을 내게 선물로 주셨다. 전집은 양이 많아 들고 다니기 어려웠기에 근처 우체국을 찾아 한국으로 배편 발송했다. 이 만남은 미술과 문학을 아우르는 의미 있는 교류의 시간이었고, 미야코섬에서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아리랑비


점심을 먹고 S씨의 안내를 받고 찾아간 곳은 미야코섬 노바루野原에 있는 아리랑 비이다. 자위대기지와 인접한 곳에 비가 있었는데, 바로 그 옆에는 일본 군 보충병 위문비가 서 있었다. 

아리랑비에서
아리랑비에서

 

아리랑비에서

비문을 읽어보면 아리랑비에는 11개의 언어로 평화를 위한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조선인 위안부가 빨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앉아서 쉬던 장소에 세워졌다고 한다. 

일본군 보충병 위문비

 
아리랑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일본군 보충병 위문비에는 미야코섬에서 주둔했던 일본인 병사, 다카자와 요시히토高沢義人(본토 출신) 씨가 쓴 단카短歌가 새겨져 있다.
 
이라부섬 사와다노하마


이튿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찾아간 곳은 이라부섬에 있는 사와다노하마이다. 사와다 해변에 갈 때 일행들은 조금 쉬고 싶다고 해서 숙소에 두고 나 혼자서 다녀왔다. 이곳의 환초를 찍은 사진은 윈도우 배경 화면으로 설정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오키나와의 빼어난 경치 등을 선정할 때 들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라부섬 사와다노해변 환초



이라부섬 사와다노해변 환초

 

이라부섬 사와다노해변 환초

 
 

이라부섬 사와다노해변 환초

 
  오푸유식당


오푸유식당에 도착하자, 간판이 반겨주는 아늑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메뉴를 살펴본 결과, 1500엔짜리 참치 사시미와 함께 카라아게, 고랴참푸루를 주문했다. 참치 사시미가 먼저 나왔고, 그 첫입을 먹어보니 놀라움이 가득했다. 숙성회로 제공된 참치 사시미는 다른 식당의 두 배 이상의 양이었고, 그 맛은 신선하고 부드러웠다. 각 조각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듯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오푸유식당
오푸유식당

 

오푸유식당



사시미만으로도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푸짐했지만, 함께 주문한 카라아게와 고랴참푸루도 그에 못지않게 맛있었다. 카라아게는 바삭하게 튀겨져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고랴참푸루는 아삭한 채소와 함께 조리되어 깔끔한 맛을 더해주었다. 이렇게 훌륭한 마무리 식사를 통해 미야코섬 여행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음식의 맛과 서비스 모두 만족스러웠던 오푸유식당은 미야코섬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완벽한 선택이었다.

오푸유식당
오푸유식당
오푸유식당

이제 미야코에서의 모든 여정이 끝났다. 일본 국내선을 타고 나하공항으로 간 후 거기서 인천으로 향한다.


나하공항으로 가는 길
귀국을 위해 다시 나하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