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유튜브에 접속해 믿기지 않는 뉴스를 봤다. 라이브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전하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시즌이라는 것도 잊고 살고 있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 컸다. 문학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강 소설의 애독자로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한강은 아시아 출신 수상자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여성으로서는 최초라는 영예 또한 안았다.
그동안 유럽중심주의, 남성작가 중심주의로 비판받아 왔던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가 50대의 아시아 여성작가인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파격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장수를 해야 한다는 식의 유머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더욱 그렇다!
노벨문학상으로 논문을 쓴 적이 있었기에, 이 상을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기에, 한강 작가가 오래도록 후보에 들면서도 수상하지 못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수상한 것이 더욱 기뻤다. 고은 시인이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후보에 들면서 오래도록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 하면서 입었던(고은) 그리고 입고 있는(하루키) 내적인 고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하의 내용은 기존에 썼던 논문에서 노벨문학상과 관련된 것만을 일부 간추린 것이다)
◈ 노벨문학상, 작가 중심에서 작품 중심으로
노벨문학상은 ‘세계문학’에 부합되는 작품/작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알려져 있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문학상은 최근 서구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문학상이라는 이유로 비서구 지역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수상에 이르기까지의 구체적인 과정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알프레드 노벨이 노벨상 후보자와 그에 관한 평가를 수상 후 50년 동안 비공개로 한다는 유언을 남겼던 것과 관련이 있다.
현재 시점에서 열람 가능한 노벨문학상 수상 경위는 에이빈트 욘손과 하리 마르틴손이 노벨문학상을 공동수상한 1974년까지다. 노벨문학상은 초기에는 작가를 중심에 뒀다가 점차 작품 중심의 평가로 변해갔다. 알프레드 노벨이 노벨문학상에 대해서 “문학 영역은 이상적인 방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수여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초기에는 뛰어난 작가에게 수여하는 것이 기준이었지만 수상자 선정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노벨이 제시한 애매한 기준의 ‘이상주의’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셈법 하에 당대 최고의 작가지만 정치성을 보였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기준으로 작동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 한 작가 리스트에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베르톨트 브레히트, 조지 오웰, 스콧 피츠제럴드, 버지니아 울프, 니코스 카잔차키스, 릴케, 카프카, 마흐무드 다르위시 등이 있는 것만을 보더라도 공정성 논란을 피해가기 힘들다.
톨스토이나 브레이트는 각각 무정부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릴케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끊임없이 방랑했고, 국적이 없었기에 노벨에 제시할 만한 아이덴티티도, 국가적인 학회나 비평가들의 지지”도 얻지 못 해 배제됐다. 더구나 노벨위원회가 수상자를 선정하며 번역본에 기대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작가들을 공정하게 뽑을 수 있는 길은 애초부터 막혀 있었다. 수상작이 대부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권역에서 나왔음은 이를 방증한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관하여
노벨문학상의 작가 중심 평가가 작품 중심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인간성 상실의 충격은 노벨문학상 평가의 축을 “‘인간의 진정한 가치’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 이행하는 계기가 됐다. 2차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세계질서 속에서 노벨문학상 선고위원회가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가운데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1960년대 초부터 노벨문학상 후보에 들었다.
유력한 후보였던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아니라 가와바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설국>>이 동양의 미의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자들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전쟁중에 미 해군의 일본어통역관으로 활동했던 도날드 킨(Donald Keene)이나 해병대원으로 일본에 진주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George Seidensticker) 등 일본을 잘 이해하는 번역자/연구자가 가와바타문학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했던 이 두 연구자에 의해 일본문학은 1950년대부터 영어로 번역됐으며, 그것은 미일 간의 전쟁이 불러온 뜻밖의 ‘선물’이기도 했다.
한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1994년은 동서냉전이 종식되고 일본의 구 식민지였던 지역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관한 책임을 둘러싼 이의제기가 본격화된 시기였다. 오에 겐자부로는 전쟁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일본의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고통스러운 ‘개인적 체험’과 역사의 비극을 그린 수작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 작별하지 않는다
멜버른에 오며 책을 30여권 정도 가져왔는데 그 중에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도 있다. 김숨 작가에게 증정받은 <<오키나와 스파이>>를 완독하고 이 책을 지난주부터 조금씩 읽기 시작하고 있던 중에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번역 작업과 논문 작업, 틈틈히 읽어서 아직 반도 읽지 못 한 상태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되는데,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5.18을 이 소설에서 '제주4.3'을 다루었으니 한국 근현대사의 어둠과 그것을 밝힌 시민들의 힘, 그리고 한국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재일조선인 작가인 김시종 시인이나 김석범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를 희망했지만, 두 분 다 후보로 추천받은 적이 없음을 알기에 그건 개인적인 아쉬움일 뿐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고 맨부커상이나 카프카상 등을 받아 작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야만 하기에, 두 작가의 난해한 작품이 그렇게 되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김시종 시인의 시는 전설적인 난해함으로 인해, 김석범 작가는 <<화산도>>의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서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을 단시간에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재일조선인문학은 국민문학 사이에 끼어 있어서 한 국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난제라 할 수 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을 기뻐하며 노벨위원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수상 소식을 전하는 영상과 한강 작가와의 전화 인터뷰까지 모두 다 들어봤다.
2024년 10월 10일, 한국인 작가/한국문학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기념하며 노벨위원회 홈페이지를 캡쳐해 둔다.
♠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알리는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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