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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기억과 장소

정지용, 신동엽, 신석정 문학 답사

by DoorsNwalls 2024. 8. 27.

몇 해 전에 충북 옥천(정지용)과 충남 부여(신동엽), 전북 부안(신석정)에 있는 

세 작가의 생가터와 문학관을 찾았다.

 

정지용은 <향수>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한데, 그의 초기 일본어 창작에 비춰진 그는

서정 시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가 쓴 일본어 수필 중에서 <일본의 이불은 무겁다>를 특히 좋아한다.

직접 번역한 것이다.

 

일본의 이불은 무겁다

어울리지 않는 기모노를 몸에 두르고 서툰 일본어로 말하는 자신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하다. 내 자신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격렬해지면 침 방울이 사방에 튀고 날카롭고 거친 금속성의 이상한 발음이 튀어나온다. 예의에 벗어나게 독특한 행동을 하거나 발작적으로 손을 흔들기도 하고 얼굴 근육이 격렬하게 신축되는 등의 버릇이 나올 때 친절한 친구가 악의를 품은 웃음을 짓고 당혹해 하는 듯한 기분을 알 수 있어서 몸의 구성물이 뿔뿔이 갈라질 것 같은 쓸쓸함에 하숙집으로 돌아온다. 이 넝마처럼 감격하는 기질 때문에 얼마나 더 불쾌한 경험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침상에 들어가 생각해 본다. 오늘은 하루 중일 흐린 날이다.

조선의 하늘은 언제나 쾌청하고 아름답다. 조선 아이들의 마음도 쾌청하고 아름답다.

자칫하면 흐려지는 이 마음이 저주스럽다. 추방된 민족의 종자이니만큼 잡초처럼 억척스러움을 갖아야만 한다. 어디에 심더라도 아름다운 조선풍의 꽃을 피워야만 한다.

내 마음에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마음이 혼재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은 누구에게나 알려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엄마나 아빠도 알아주지 않기에 질색이다. 닭의 마음. 토끼의 마음. 남자의 마음. 여자의 마음. 붉은 벽돌 도기陶器의 마음. 악당의 마음. 이리의 마음―그 가운데 이리의 마음이 어쩐지 이상히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독일 부근 숲의 전설에 나올 듯한 딱하게도 굶주린 외로운 이리―그것이 나인 것이다. 행복과 쓸쓸함의 감촉―새하얀 요 위에 사지를 허공에 올린 채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는 이리. 게다가 그것이 감기에 걸리고 무언가를 말하고 사랑을 하는 짐승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리의 뺨도 발가스름해진다.

찢어진 장지 종이가 바늘 같이 차가운 바람에 한밤중에 휘이익 노래小唄(에도 시대 말기에 유행한 속곡俗曲-역자 주)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불의 안쪽까지 들어가서 몸을 오그라든다. ……일본의 이불은 무겁다.

 

정지용 생가 터를 본 후, 일행들과 신동엽 문학관으로 향했다.

전시도 그렇고, 작가들의 애정도 그렇고, 신동엽문학관은 박제화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문학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신동엽문학관 다음은 식석정문학관. 문학관 외관이 상당히 투박하다.

신석정은 교과서에서만 알았기에 문학관 내의 전시를 보고 배울 점이 많았다.

시대를 향한 그의 뜨거운 분노가 느껴지는 전시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