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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벽을 넘어/국내 및 동아시아

요코하마 근대 개항지 답사-조노하나파크, 요코하마 개항자료관, 차이나타운 등

by DoorsNwalls 2024.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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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는 10번도 넘게 가본듯 한데 일상인 기분으로 가던 곳이라서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난 몇 해 동안 요코하마 근대 개항지에 초점을 맞춰서 답사를 진행하며 찍었던 사진을 중심으로 이번 글을 써보려 한다. 몇 번의 답사에서 집중적으로 돌아본 곳은 요코하마항구 주변이다. 조노하나파크, 요코하마 개항자료관,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야마시타초, 요코하마외국인묘지, 가나가와 근대문학관 등이 그곳이다.

 
우선 조노하나 근처에 있는 요코하마개항자료관으로 향했다. 일행중에 노 교수님이 계셔서 요코하마 역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15분 쯤 가자 요코하마개항 자료관에 도착했다.
 

요코하마역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요코하마개항자료관


요코하마 개항 자료관은 야마시타공원 근처에 있는 역사 자료관으로 에도시대부터 쇼와 초기에 이르기까지 요코하마와 관련된 국내외 자료를 조사 및 연구하여 수집하고 전시해 놓은 곳이다. 원래는 영국대사관이었던 장소이다. 일본의 근대사를 바꿔놓은 페리 제독이 요코스카 우라가항에 내항한 사건(1853년)을 그려놓은 그림과 관련된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 아래 그림이다. 아래 그림 오른쪽을 보면 나무가 하나 있는데 유칼립투스 계열의 이 나무는 일본에서 다마쿠스 나무로 불린다.

E. Brown, Jr가 그린 페리 내항 장면

요코하마 개항자료관 정원에는 다마쿠스 나무가 한그루 심어져 있는데, 이 나무는 바로 페리 내항 그림에 그려져 있는 나무의 자손이다. 1923년 관동대지진의 피해를 입고 죽어가던 나무가 싹을 내렸고, 그것이 자라나 아름다운 수목으로 되살아나 요코하마 개항의 상징이 되었다.

요코하마개항자료
다마쿠스 나무

 

다마쿠스 나무
요코하마의 원풍경

마침 오키나와와 관련된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어서 자세히 둘러봤다. 근대 이후 오키나와사람들이 오사카로 주로 가서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코하마에도 많은 이들이 이주해서 살았던 것 같다. 요코하마에 서양인, 중국인, 오키나와인 등 많은 외부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중국인들은 통역 등으로 요코하마에 왔다가 이곳에서 살게 되면서 차이나타운을 이뤘다. 요코하마차이나타운은 현재 요코하마의 상징적인 곳으로까지 자리잡았다.

특별전시 / 요코하마에 정착한 오키나와 사람들

 
  차이나타운에서 야마시타초까지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은 워낙 유명해서 기본적인 설명 자체가 필요 없는 곳이다. 다만 이곳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중국인들이 야마시타초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당시에 비가 내리면 자주 침수가 되는 저지대였기 때문이다. 요코하마 외국인묘지가 있는 지역인 고지대인 야마테초 쪽에 서양인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중국인들은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야마시타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답사에서 차이나타운에 온 것은 바로 무라오카 히라키치(村岡平吉)가 만든 기독교 계열의 인쇄합작 회사인 복음인쇄소福音印刷所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복음인쇄소에서는 당시 유학생이었던 염상섭이 잠시 일하기도 했고, 조선인 유학생 기관지나 동인지가 이곳에서 많이 인쇄됐다. <<창조>>또한 이곳에서 인쇄된 걸로 유명하다. 조선어 활자를 갖춘 인쇄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복음인쇄소가 있었던 야마시타초 골목

 

야마시타초 까페 샹글리아


장소는 특정할 수 있었지만 복음인쇄소의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관동대진재 때 인쇄소의 사옥과 공장, 창고 등의 건물이 전소됐고, 회사직원이 재난을 틈타서 중요 서류를 훔쳐가면서 파산 위기에 몰렸고 이후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야마시타초 초입에 있는 까페 샹글리아에서 커피를 마시고, 옛 요코하마부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노하나(코끼리코) 파크


2009년 개장한 조노하나 파크에 왔다. 이곳에 온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조선문인들이 이곳에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했던 기념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임화 또한 이곳에서 배에 올랐다. 조노하나파크는 아카렌가 파크(赤レンガパーク)와 야마시타 공원(山下公園) 근처에 위치해 있다. 오산바시 국제여객선 터미널(大さん橋国際客船ターミナル) 근처이기도 하다. 방파제를 위에서 보면 코끼리 코와 닮아 있어, 흔히 '조노하나(象の鼻)'라고 불린다.

조노하나파크 설명
조노하나파크의 커피숍
조노하나파크
조노하나파크에서 바라본 풍경
조노하나파크에서 바라본 풍경
조노하나 방파제 설명
조노하나 방파제 옛 벽돌
리모델링을 하면서 옛 구조물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멀리 오산바시 여객터미널이 보인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이곳에서 조선 문인들이 고국을 떠나오거나 고국을 향해 떠나갔다. 이곳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요코하마에는 갈 곳이 무척 많지만, 근대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살펴보고 싶다면 조노하나파크는 꼭 와봐야 하는 곳이다.
 
   요코하마외국인묘지&가나가와근대문학관


이번 답사에서는 방문하지 않았지만 요코하마 외국인묘지와, 가나가와근대문학관은 둘 다 다섯 번 넘게 방문했던 장소이다. 다만 찍어둔 사진을 찾을 수 없어서 홈페이지에서 캡쳐를 가져왔다.  
 
요코하마 외국인묘지는 요코하마 개항당시의 발전에 공헌한 19세기의 사람들을 시작으로, 40여개국의 외국인 약4800명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자료관은 무료로 개방하고 있지만, 묘지는 원칙적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
 
가나가와근대문학관에는 재일조선인문학과 관련된 원자료를 보러 몇 차례 방문했었다. 특히 김달수가 쓴 엽서 등이 보관돼 있어서 관련 연구자라면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동선상 외국인묘지를 본 후 가나가와근대문학관에 방문하면 좋다.

 


이번 답사에서는 요코하마의 근대 개항지와 그에 얽힌 역사적 장소들을 중심으로 돌아보았다. 요코하마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항구 도시로,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조노하나파크는 조선 문인들이 고국을 향해 떠났던 역사적인 장소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에서는 페리 제독의 내항과 관련된 자료들과 함께 개항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며, 차이나타운과 야마시타초에서는 복음인쇄소의 흔적을 찾으며 조선 문학과 인쇄술의 역사를 되새겼다. 또한, 요코하마 외국인묘지와 가나가와근대문학관 등은 요코하마가 국제적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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