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감옥은 중국에서 만철 답사를 진행하면서 방문했던 곳이다. 만철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의 줄임말로 "1906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만주 침략과 만주 식민지 경영을 위해 존재했던 일본의 국책 회사"(우리역사넷)이다.
일본 제국은 엘리트 집단인 만철을 앞세워 중국 동북부에서 자국의 이익을 철저히 관철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후일 중국 침략의 교두보로서 정보 수집과 영토 확장의 첨병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만철이 만든 철도 및 근대 도시는 현대 중국의 국가 및 도시 형성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대련/다이렌은 특히 만철과 관련이 깊은 도시이다. 만철 답사이니 대련/다이렌은 무조건 방문해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단동에서 중국고속철도를 타고 대련으로 향했다. 티켓값은 약 18000원. 시간을 보니 2시간 15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이제 중국은 세계 고속철도 대국으로 최장 거리의 고속철도가 전국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근대문학이나 근대역사 속에서만 보던 대련으로 간다는 기대감을 품고 화개호에 올랐다.
1시간이 조금 지난 후 구글맵을 켜 보니 꽤 많이 온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엽 요동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강하게 충돌했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곳의 지배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비극적인 식민지 역사 또한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원조를 받아가며 러일전쟁으로 러시아 세력을 밀쳐내고 한반도의 위를 장악하면서 더 이상 걸림돌은 없던 셈이다.
동양평화와 조선의 독립을 그 누구보다 희구하던 당시의 안중근 의사에게 이런 상황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엄혹한 동북 아시아 정세였다. 더구나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한반도에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통감으로 한 통감부를 설치해 조선을 반 식민지 상태로 만들자, 20대 청년 안중근은 1909년 2월 7일 러시아 제국 연해주 그라스키노 근처 카리에 위치한 자작나무 숲에서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친일파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것을 결의했다. 그 결과는 지난 번 포스팅한 '하얼빈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집약돼 있다.
안중근 의사는 여수감옥에서 끝내 다 쓰지 못 한 <<동양평화론>>에서 하얼빈에서 의로운 싸움을 시작한 연유를 아래와 같이 적었다.
그러므로 동양 평화를 위한 의로운 싸움을 하얼빈에서 시작했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는 여순으로 정했다. 이어 동양 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니 여러분은 깊이 살펴주기 바란다.
택시를 타고 여순형무소 앞에 도착했다. 중국식 읽기로는 뤼순형무소다. 중국어로는 여순일러감옥박물관旅顺日俄监狱博物馆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이곳은 1902년 러시아가 항의하는 중국인들을 가두기 위해 만든 곳인데,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면서 일본 제국의 것이 되었다. 이후 일본 제국에 항의하는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들을 수감하기 위해 1907년 쯤 증축되었다고 한다. 일본 제국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 악명 높은 감옥이었으며 이곳에서 독립운동가 안중근, 신채호가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감옥 안에 옛 모습을 전시해 놓고 있다. 1907년 사진과 1920년 사진을 볼 수 있다.
전시물을 보고 검신실을 거쳐 안중근 의사가 갇혀 있던 감옥으로 향했다. 한국어로 된 설명을 보며 중국 정부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하얼빈역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 또한 마찬가지다. 20세기 초엽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했다고 하는 공통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중근 의사가 갇혀 있던 감방에 도착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11월 13일에 여순감옥에 온 후,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이곳에서 교수형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그러니 이 감방은 안중근 의사가 4-5개월 정도 머문 곳인 셈이다.
다른 죄수와 달리 안중근 의사는 이곳에 홀로 갇혀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노모를 남겨두고 사형을 앞둔 그의 심정을 범인으로서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다만 그 또한 인간이기에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철저히 버리고 민족의 미래를 희구하는 영웅의 표본이 됐지만 그의 자식 안준생은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받으며 괴로운 삶을 보내다 친일파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곳에는 여순감옥 마지막 형무소장 타고 지로에 관한 전시물도 있다. 일본이 패망한 후 그는 체포돼 고난을 겪었다고 나오는데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찾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다만 마지막 형무소장이었으니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고 있지 않았을까?
당시 사용하던 전기시계도 전시돼 있다. 시계 뒤로 전깃줄이 연결돼 전기로 움직이는 시계인듯 하다.
여기는 일반죄수 수감동이다. 여름인데도 서늘한 냉기가 스며 나오는 곳이라 한겨울에는 극심한 추위였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조금 으스스해진다. 여순감옥의 사형집행장으로 가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형 집행과정도 소상하게 안내돼 있다. 거의 모든 전시물에 한국어가 병기돼 있다. "관동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사형에 처하며 즉시 집행한다"라는 말과 함께 사형이 집행된다고 나와 있다. 고가 쇼이치의 증언에 따른 것이니 당시의 상황을 거의 정확히 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절차에 따라서 안중근 의사도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아파왔다.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을 당한 후 다른 죄수와는 달리 하얼빈산 소나무로 제작된 관 안에 안치돼 묻혔다는 최근의 기사를 접했다. 다만 어디에 묻혔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몇 차례의 발굴 작업은 소득이 전혀 없이 끝났다. 죽은 뒤에 고국으로 유해를 옮겨달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못 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중략)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조금은 으스스한 사형집행장을 나와서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특별 전시가 열리는 별실로 이동했다.
꽃에 둘러싸인 안중근 의사의 사진 주위로 그가 쓴 유묵 전시돼 있다. 敬天. 1910년 3월 여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쓴 유묵이라고 한다.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의 경천(敬天)이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는 뜻의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도 걸려 있다. 이것도 1910년 3월 여순 옥중에서 자신을 취조한 당시 여순 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라고 한다. 야스오카는 죽기 직전 그의 장녀에게 이 유묵을 물려주었으며, 그 후 유족이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다음 글귀는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이다.
여순감옥(뤼순 감옥)은 러시아가 1902년에 건립하고, 이후 일본이 증축한 감옥으로, 1907년부터 1945년까지 악명 높은 수감 시설로 운영되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와 신채호 등 한국과 중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거나 처형된 역사적 장소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이곳에 갇혀 1910년 교수형을 당했다. 여순감옥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당시의 감옥 모형과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사형 집행 과정도 볼 수 있다.
대련/다이렌에 방문한다면 안중근 의사가 최후를 맞이한 이곳에 꼭 오고 싶었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이곳에서 남긴 유묵과 그의 삶을 돌아보는 전시물들은 그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여순감옥은 대련을 방문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역사적 장소로, 안중근 의사의 정신과 그가 남긴 발자취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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