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에는 1년에 1-2번 씩은 중국에 갈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중국 산시성(陝西省) 서안(西安/시안)에 가게 된 것은 진시황릉(秦始皇陵)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는 한 여름 서안의 날씨였다. 일기예보를 보니 날씨가 한낮에는 40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서안을 안내해 준 중국인 지인은 온도는 높지만 습도가 거의 없어서 그늘로 들어가면 문제 없다는 반응이었다.
여름 무더위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약간의 공포심을 품고 서안으로 향했다.
전체 일정은 서안에서만 3박 4일을 하고 이후 고속열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계획이었다.
첫째날 서안에서 산시성역사박물관을 보고 다음날 드디어 진시황릉으로 향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여산에 만들어진 진시황릉은 엄청난 규모라서 전체가 다 발굴된 것은 아니다.
관광객이 접근 가능한 곳은 진시황릉 바로 옆에 있는 병마용갱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다행히 코로나 전이라 폐쇄되지 않았다. 병마용갱 자체도 규모가 커서 천천히 음미하며 보려면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
40도가 넘는 더위에 이미 꽤 지쳐 있는 상태였지만 병마용갱 안은 선선해서 2-3시간 가까이 갱 안을 돌아볼 수 있었다.
병마용갱은 말그대로 황제를 호위하는 병사와 말들을 빚어 놓은 공간이다. 아직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을 만큼 엄청난 규모인 것을 안에 들어가보면 알 수 있다. 진시황릉에 갔다고는 하지만 황릉 자체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여산 자체가 황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 발굴이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묘역을 조성하며 대량의 수은을 붓고, 안전장치를 해둬서 현재 기술로는 발굴하기가 힘들다는 듯 했다.
병마용은 예전에 교과서에서 본 것과 달리 표정이 무척 풍부했다. 병용에 따라서 계급과 임무가 달라서이겠지만 병용의 표정을 보며 진나라 시대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약간 훼손돼 있었지만 표정이 특이한 병용을 발견했다. 병용의 키는 184cm를 넘고 197cm 정도 된다고 한다. 큰 키의 병용은 장군이라고 했다. 아래 병용은 병사라기보다는 내시에 가까워 보였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마차도 있었는데 발굴 전과 후가 재현돼 있는 듯 했다. 워낙 잘 만들어서 그런지 지금이라도 말이 살아나서 마차를 끌고 전쟁터로 달려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시황릉을 나와 찾아간 곳은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한 화청지(華淸池)다. 이곳도 여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화청지는 당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든 온천이다. 구룡호(九龍湖)에는 비너스상을 조금 닮은 양귀비상(像)이 있었는데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냐고 바빴다.
화청지에 온 목적은 <장한가>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공연이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서 배도 채울 겸 수프와 커피를 마셨다.
<장한가>의 내용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안사의 난과 이어진다. 당 현종이 양귀비에게 푹 빠져 국정이 문란해지고 그런 가운데 안록산이 난을 일으켜 양귀비를 죽이는 내용이다. 당 현종도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니 내용으로는 비극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 쯤인데 거의 만석이다!
중국에서 공연을 몇 번 본적이 있지만 <장한가>는 그 중에서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그런데!!
공연을 다 보고 나온 후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출국 전에 아주 건강하던 딸아이가 아파서 입원을 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상황을 보니 내가 들어가야 했다. 일행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비행기 티켓을 변경했다.
다행히 대한항공에서 직접 예매한 티켓이라 변경은 편리했다. 이후 나는 가능하면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티켓을 산다. 대행사를 거치면 변경이 안 되는 티켓도 있고 무척 번거롭기 때문이다. 날이 저문 후라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에서 바로 병원으로 직행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회복을 잘 해서 며칠 후에 퇴원을 했다.
이후 서안을 생각하면 진시황릉과 화청지만이 아니라, 딸아이와 병원도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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