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양석일은 ‘재일조선인1, 2세 작가(재일한국인작가, 재일작가라고도 부름)’들 중에서 일본의 독서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널리 알려졌다(대중성)’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데, 재일조선인작가들의 경우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엄밀한 의미에서 일본의 대다수 독서 대중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일조선인1, 2세의 경우에는 일본의 독서대중보다는 문단 및 재일조선인들에게 주목을 받는 작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유미리나 가네시로 카즈키에 앞서 일본독자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양석일 문학의 ‘대중성’을 논하기 이전에 우선 살펴 봐야 할 것은 그가 재일조선인문학사 가운데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재일조선인’ 작가라 함은 1945년 이후 일본에서 문학적 활동을 일본어로 해온 작가들을 지칭한다. 재일조선인이라는 명칭이 일본에서 정착되게 된 데에는 이회성의 단편 ‘다듬이질 하는 여자(砧をうつ女)’가 1972년 제6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외국인으로서는 최초 수상)으로 결정된 시기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는 재일조선인문학자들의 작품이 일본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재일조선인문학’으로 분류되고 수용(소비)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재일조선인사회의 변화(세대교체)와 함께 ‘재일조선인’이라는 명칭은 다시 한 번 ‘재일’로 변용된다.(조국지향에서 재일지향) 매우 편의적인 분류이기는 하지만 1970년대에는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이 일본문단으로 진출한다. 그러한 가운데 양석일도 일본문단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의 작품은 초기 대표작인 ‘택시드라이버’ 시리즈(1978~)로부터 『피와 뼈』(1998), 그리고 최근작인 『뉴욕지하공화국』(2006)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며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피카레스크(건달) 문학’, ‘세계문학’, ‘리얼리즘문학’, ‘엔터테인먼트문학’ ‘마초적 문학’ 등등 그의 작품세계를 지칭하는 많은 수식어들은 ‘재일조선인문학’이라는 중핵을 감싸는 외피들이며, 그의 문학을 대중과 호흡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양석일의 소설은 일본 독자들에게 생경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며 ‘보편적인 소재’속에 그것을 풀어놓는다. 이는 김석범이 4.3이라는 ‘생경한 소재’로 이룩한 거대한 문학적 성과와는 그 방법상에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양석일 문학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역시 여타의 재일조선인 작가와 그 폭이 다른 ‘대중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석일은 독자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재일조선인의 삶을 매우 설득력 있게 일본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독보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미로속의 재일조선인 ― 택시드라이버시리즈
양석일의 작품세계를 논할 때 ‘택시드라이버 시리즈’는 빼놓을 수 없다. 택시운전은 도시의 중심부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삶(Diaspora)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직업이다. 양석일이 택시기사가 된 것은 그가 작가가 되는데 매우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양석일은 인쇄소사업의 실패 후 오랜 방탕과 방황 끝에 1970년 2월 신주쿠지하통로에서 4일간 노숙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나흘째 아침, 신주쿠 중앙공원 벤치에 앉아있을 때 바람에 휘날려 온 신문에 실린 택시운전기사 모집 광고를 보게 된다. (양석일 자필양력) 그 후 양석일의 택시기사 생활은 10여년에 이른다. 양석일의 택시기사 체험은 그의 첫 소설집 『광조곡(狂躁曲)』(1981), 『택시 광조곡(狂躁曲)』(1987, 광조곡 재간)의 작품들의 기본적인 모티브이다. 한국에서는 1994년에『달은 어디에 떠 있나』(백태희역, 인간과예술사)로 번역되었다. 수록된 작품은 ‘미로’, ‘신주쿠에서’, ‘공동 생활’, ‘제사’, ‘운하’, ‘크레이지 호스 I’, ‘크레이지 호스 II’이다. 이는 1987년 일본에서 출판된 『택시 광조곡(狂躁曲)』(치쿠마서방)에 수록된 작품들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인 ‘미로’를 보면 첫 문장부터 양석일의 택시운전 체험담으로 시작된다. 양석일은 ‘택시드라이버’에 대해 작품 ‘미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지위가 낮은데다 사채업자들까지도 무시하는 택시운전수를 오래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잠시 견딜 요량으로 몸담을 생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기회만 있다면 전직(轉職)을 고대한다. 하지만, 1년이 2년, 3년이 5년이 되는 동안에 전직의 기회는 멀어져가게 된다. 일반회사에서는 연공서열식으로 급료가 가산되어 불완전하기는 해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택시 운전수는 그와 반대이다.
양석일이 그리고 있는 ‘택시드라이버’ 속에 ‘재일조선인’이 오버랩 되고 있음은 위의 기술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택시기사의 이러한 생활상 위에 ‘재인조선인’이라는 자각이 가미되면서 ‘미로’와 같은 현실 속을 주인공 ‘나’는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작품의 끝에서 결국 ‘나’는 택시회사에서도 해고되게 된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미로’와 같은 도시속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택시운전기사의 삶과 일본내의 재일조선인의 삶을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주인공 나는 계장에게 해고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묻고 있다.
“이유가 뭡니까? 제가 조선인이라서 입니까?”라고 나는 힐문했다.
“아닐세. 그런 이유가 아니야. 만약에 그랬다면 처음부터 채용하지 않았을 걸세. 본사에서 통지가 왔네. 나도 사실 이유는 잘 몰라.”라고 말하는 계장의 대답은 전혀 요령이 없었다.
이른바 불안정한 생활인 ‘택시운전기사’ 가운데서도 이중으로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의 모습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양석일의 초기작품에는 신랄한 리얼리즘적 세계관이 매우 뿌리깊게 투영되어 있다. ‘마이너리티(소수자) 문학’이 정치성을 표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부분은 양석일 문학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가타리, 들뢰주, 『카프카 마이너문학을 위해』)
‘폭력’의 기원, 아버지와의 정면 대결 ―『피와 뼈』
양석일의 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체험이 매우 깊이 투영되어 있다. 양석일에게 아버지 양준평은 ‘폭력’ 그 자체였다고 한다.(작가자필 이력) 그 폭력이 얼마나 심했으면 1967년(30세)양석일은 아버지 양준평의 폭력과 습격을 견디다 못해 피신을 했을 정도다. 작품 『피와 뼈』는 1996년 7월부터 1997년 4월까지 잡지 ‘산사라’에 연재된 원고지 1000매(200자) 분량의 대작으로 양석일의 원체험이 매우 뿌리 깊게 투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특히 양석일의 친아버지 양준평(梁俊平)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김준평(金俊平)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양석일이 아버지(폭력의 근원)와 정면으로 대면한 작품이다. 2006년 6월 사회문학춘계대회에서 양석일씨와 직접 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양석일씨는 아버지가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버지의 폭력을 생산해낸 일본제국주의의 폭력의 악순환과 연관되어 있다면서, 일부 평론가들이 작품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하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양석일이 작품에서 표현하려 했던 폭력의 구조는 매우 중층적이다. 우선 재일조선인의 비극을 양산한 근본적인 폭력은 국가(일제)이다. 그리고 일제에 의해 오사카등지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일본사회의 다양한 폭력(언어를 비롯해 의식주에 이르기까지)에 시달린다. 하지만 문제는 또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재일조선인사회 내에서도 폭력 구조는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라는 구조 속에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층적인 폭력구조 속에 김준평의 폭력이 위치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일본이라는 집단의 ‘폭력’에 의한 ‘이단추방’ 및 ‘만장일치성’ (르네 지라르), ‘규격화’된 힘의 작용에 의해 ‘비교하고 차별화하고 질서화하고 배제’(미셸 푸코)의 논리에서 완전히 추방된 김준평이 제국의 폭력안에 편입되어 약한 자 및 가족(동족)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음이 이 작품에 나타나는 ‘폭력’의 이중구조이다. 이러한 폭력구조를 인식한 이후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문제가 매우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1930년경의 오사카 생선묵공장에서 일하는 제주도출신의 김준평은 커다란 체구로 폭력을 휘둘러서 공포의 대상이다.(이물성) 싸움을 밥먹듯이 하고, 술을 퍼마시고, 도박을 하고, 여자를 건드리기를 반복하는 김준평은, 술집주인인 영희를 강간하여 자신의 부인으로 삼는다. 부부가 되어 아이가 태어났음에도 김준평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집안을 부수고 영희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거기서 더 나아가 영희가 번 돈을 뺏어서 다른 여자와 방탕하게 놀아난다. 그 가운데 시대가 변하고 노동운동이 격해지는 속에서도 김준평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방탕한 생활을 계속한다.
일본이 패전한 이후 김준평은 자신이 직접 생선묵공장을 개업하여 돈을 벌어들인다. 그 후 그는 영희와 별거하고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연이어서 차려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준평은 뇌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투병생활을 하게 되고 생선묵공장은 문을 닫게 된다. 그 후 그는 사채업자가 되어 거액의 돈을 벌어들인다. 영희는 암에 걸리고 아들인 성한이 병원비를 달라고 하며 찾아오지만 그를 쫒아내 버린다. 결국 영희는 암으로 죽는다. 그 후 김준평은 뇌경색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힘을 못쓰게 된다. 그러자 그와 함께 살던 여자는 그가 벌어놓은 돈을 들고 집을 나가버린다. 그는 결국 아들인 성한에게도 버림받고 북한으로 돌아간다. 수년 후 택시드라이버가 된 성한은 신문기사에서 김준평이 죽은 것을 알게 된다.
『피와 뼈』의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김준평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오사카에 이주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폭력의 구조를 작품속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어째서 오사카로 올 수 밖에 없었는지를 우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오사카로 먹고 살기 위해 온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밑바닥 생활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김준평이 휘두르는 폭력 그 자체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폭력을 생산해 낸 상하부 구조를 전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즉, 김준평은 일제강점기가 조선인에게 강요했던 폭력에 의해 탄생한 ‘괴물’(이물성, 르네 지라르)인 셈이다. 양석일은 이 작품에서 아버지와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역사적인 문제로 정면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즉, 김준평 또한 일제가 휘두르는 거대한 폭력을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양석일이 독자에게 제시하고 싶었던 것은, 식민지 폭력구조라는 공동체(르네 지라르) 속에서 폭력의 하부구조인 식민지 민중의 폭력구조 또한 일제의 폭력구조를 넘어설 수 없었음에 대한 자각과 폭로였다고 보인다. 이는 아버지 준평의 폭력을 작가가 역사적 담론속에 위치시킴으로 인해 정면대결을 하는 동시에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양석일은 이 작품을 통해 ‘아버지’의 폭력을 넘어선 이 세상의 폭력과 진정으로 대면하게 되는 셈이다. 양석일의 『뉴욕지하공화국』은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또다시 폭력을 강요하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폭력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전지구화된 ‘폭력’의 극복을 위해 ― 뉴욕지하공화국
양석일의『뉴욕지하공화국』(2006년 9월, 강담사)은 『인포켓(IN★POCKET)』에 2004년 1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연재된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판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양석일이 9.11을 미국에서 체험한 것이 모태다.
“양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 전날 뉴욕에 도착한 양석일에게 도쿄의 잡지 편집자가 전화로 알려온 메시지다. 양석일은 바로 티비를 켰다. 티비에서는 세계무역센터빌딩이 붕괴되고 있었다.
“제가 있던 호텔로부터 8키로 앞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믿을 수 없었죠.”(2006년 9월 12일 요미우리신문 조간)
소설구상을 위해 미국에 간 양석일에게 9.11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은 탄생하게 된다. 양석일은 작품을 쓰기위해 30여권에 달하는 정치 및 역사서적을 참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 또한 양석일이 올곧게 써오고 있는 ‘폭력구조 해체’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주목해 봄직 하다. 따져보면 ‘택시드라이버’ 시리즈 또한 사회구조라는 ‘폭력’ 앞에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작품은 양석일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잘 나타내주듯이 기존과는 다른 무대(뉴욕)와 스케일을 보여준다. 문체 또한 매우 영화적이며 긴박감이 넘쳐 흐른다. 이는 작가에 의해 의된 작품 구성으로 보여진다. 즉 소설자체의 완성도나 작품성 보다는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역사성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대본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대화가 작품 초반부터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는 매우 자명해 보인다.
작품은 맥과 앱킨스 경관이 순찰을 돌면서 도망치는 두명의 흑인을 향해 발포를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맥은 그들이 마약거래를 하러 온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주저없이 발포를 한다. 맥의 총에 맞고 쓰러진 샘은 다른 동료들에 의해 간신히 그 자리를 탈출하게 되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간신히 동물에게 쓰는 항생제를 구하게 된다. 하지만 샘의 애인인 알레사가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틈에 샘과 함께 도망쳤던 네이산은 경찰에게 들키는 것이 아닌가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네이산은 샘을 쏜 경찰들을 고소할지 말지 고민하게 되면서 평소 흑인 인권변호사였던 모리슨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네이산은 모리슨이 변했다고 분개한다.
그런 가운데 뉴욕의 경찰들도 움직이기 시작해서 네이산은 쫒기게 되고 지하로 도망치다가 지하에 숨겨둔 마약을 빼앗기게 된다. 네이산은 조직의 보스로부터 손실액을 변상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당한다. 그러한 사건을 둘러싸고 거리에는 경관들과 갱(gang) 사이의 복수극이 펼쳐지게 된다. 그 가운데 작가의 눈은 뉴욕 뒷골목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한다. 한 발만 빈민가로 발을 들여놓으면 차별과 폭력이 넘실대는 세상, 인종차별의 도시 뉴욕의 진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9.11이후 미국사회의 전쟁파병을 둘러싼 다국적기업의 움직임과 정치권의 움직임이 그 위에 오버랩되면서 ‘음모’의 실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한 가운데 전쟁의 참상과 모순을 눈으로 본 아프카니스탄에서 귀환병이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체제파괴조직인 ‘뉴욕지하공화국’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것이 다국적기업 및 정치권의 움직임 가운데 촉발된 미국사회의 내부모순에 의해 폭발된 ‘혁명’이라는 점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다. 이 작품은 픽션인 만큼 부시 대통령대신 포스터라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9.11이후 미국이 수행한 아프카니스탄 및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뉴욕지하공화국’에 전쟁 귀환병들이 가담하는 모습에 대해서,
이라크로부터 귀환한 병사들 중에는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도 멀어져서, 마약에 중독되거나, 알콜중독이 돼서, 홈리스가 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한 홈리스들이 ‘뉴욕지하공화국’에 가담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정치당국은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치안 당국은 아직도 ‘뉴욕지하공화국’의 생활실태를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어딘가에 ‘뉴욕지하공화국’의 근거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권, 393p)
양석일은 네그리와 하트의『제국(Empire)』및 『다중(multitude)』에서 ‘제국’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담론’ 및 ‘네트워크형 적’의 개념을 빌려와서 미군의 전방위적 지배에 대항하는 구도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렇게 보자면 이 소설은 ‘제국’시대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대항’ 및 ‘저항’을 그린 소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모순 타파에 헌신한 인물인 젬의 죽음과 이라크의 내전상태에 대한 기술로 끝이 난다. 이는 거짓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디스토피아의 제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끝내며
양석일의 소설은 매우 대중적이며 재미있는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정치 및 역사 담론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글을 시작하며 키워드로 제시했던 양석일 문학의 ‘대중성’은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전략적 선택이라고도 보여진다.
1980년대의 도시노동자(택시드라이버)의 삶 및 인종차별문제(재일조선인문제)에 대한 고찰(택시드라이버시리즈), 2000년대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담론(평론집『아시아적 신체』및 『피와 뼈』), ‘제국담론’ (『뉴욕지하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양석일의 소설은 심각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스타일로 대중들의 뇌리를 파고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양석일 작품이 갖고 있는 ‘대중성’의 본질이다.
양석일은 자신의 원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택시드라이버 시리즈’를 통해 일본사회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이제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비판(『뉴욕지하공화국』)으로 문제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그 밑바탕에 재일조선인 2세라는 자각과 함께 자신이 일제가 낳은 식민주의(colonialism)의 ‘사생아’라는 ‘실존인식’이 깔려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카가미 겐지(中上健次) 및 메도로마 슌(目取真俊)의 문학과 비견될 수 있는 양석일의 작품세계는 이 두 작가에 비해 더욱 신랄하고 섬뜩하며 직설적이다. 양석일 문학이 피카레스크소설(picaresque小說)로 불림은 양석일 내부의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양석일 문학의 ‘폭력성’을 단순하게 마초적이라 비판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일 수 있다. 양석일 문학의 성과는 일본현대문학이 이루지 못한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을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룩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양석일(梁石日)
1936년 8월 20일 오사카에서 제주도출신의 아버지 양준평과 어머니 이춘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2년 오사카부립 코즈고등학교(大阪府立高津高等学校)에 입학하여 1955년에 졸업했다. 1954년(18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1955년 맹장으로 진료소에 입원하여 당시 입원중이던 김시종과 만났다. 그 인연으로 김시종이 주재하던 '진달래'의 동인이 되어 현대시에 눈뜨게 됐다. 1957년 총련과의 대립으로 진달래가 폐간됐다. 1958년(22세) 김시종과 함께 동인지 '카리온'을 창간했다. 1960년 '카리온'이 폐간됐다. 이후 양석일은 문학과 멀어졌다.
1961년 결혼했다.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3살 위인 누나가 자살했다. 아버지와 화해하고 인쇄회사를 차렸다. 1966년(29세) 인쇄회사가 도산했다. 이 후 여자와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고 빚 독촉에 시달렸다. 1970년(34세) 헨리밀러의 '남회귀선'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도쿄로 가서 택시운전사가 됐다.
1978년 '문예전망'에 옴니버스소설 '미로' '신주쿠에서' '공동생활' '제사'를 발표하고 소설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1980년 택시운전중 교통사고를 2차례 당하고 퇴사했다. 1981년 첫 소설집 『광조곡』을 간행했다. 1985년(49세) 생활이 곤란해져 자기매트를 팔러 다녔다. 1987년(51세) 리비아를 방문했다. 이후 이력은 생략한다.
(저자자필이력, '재일문학전집-양석일편-' 참조)
# 얼마 전 타계하신 양석일 작가님의 명복을 빌며 포스팅을 마친다.
'도시의 문 안에서 > 연구와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 사상의 원점 (0) | 2024.09.21 |
---|---|
일본문학자들의 전쟁책임을 묻다 / 오다기리 히데오 (0) | 2024.09.20 |
아쿠타가와상 작가, 마타요시 에이키의 문학세계 (0) | 2024.09.20 |
희망으로서의 ‘호러소설’ /다카하시 토시오 (0) | 2024.09.19 |
오키나와문학에서 배운다 / 다카하시 토시오 (0) | 2024.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