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유기』, 작은 풍경화小景
미야사카 사토루宮坂覺 /페리스여자학원대학フェリス女学院大学 명예교수, 국제아쿠타가와학회 회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35년여의 생애 동안 1921년 3월부터 7월에 걸쳐 생애 첫 해외여행인 중국을 다녀왔다. 그 기행에서 얻은 성과 중 하나가 『지나유기支那游記』이다. 아쿠타가와가 쓴 서간 등을 훑어보면 그가 중국 기행에 깊은 관심을 지닌 것은 몇 년 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18년 가을에는 "나도 지나支那에 가고 싶지만 은의 시세가 올라갔고 금은 전혀 없어. 가고 싶다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라고 쓰고 있다. 또한 다음 해 1919년 여름에는 "소생은 지나 여행을 하지 않는 한"이라고 쓰면서 그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다음 해 1920년 봄에는 "가능한 (여비를) 마련해서 함께 가지 그러나. 나도 가난한 여행을 할 작정이네."라고 쓰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중국 여행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1910년대 후반부터 오갔던 정황을 알 수 있다. 다만 아쿠타가와가 그렇게 염원하던 중국 여행은 특파원으로 파견되는 형태로 1921년에 실현됐다.
아쿠타가와는 1921년 2월 19일 자신이 사원으로 있던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大阪毎日新聞社의 전보를 받고 급히 오사카로 향했다. 사흘 후인 22일 아쿠타가와는 중국에 특파원으로 가달라는 신문사의 요청을 받아, 3월 중순부터 약 반년간의 예정으로 중국에 파견됐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전개에 대해서는 「아쿠타가와 문학과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1995년 일본근대문학회에서 발표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발표에서 아쿠타가와의 중국행은 당시 황태자(당시 21세, 후일의 쇼와천황昭和天皇)의 유럽 방문(3-9월, 귀국 후 11월 섭정으로 취임)과 관련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황태자가 유럽을 방문하게 되면서 미디어의 관심이 유럽으로 쏠린 가운데, 오사카마이니치신문은 이에 대항해 아시아 쪽으로 시선을 끌려고 꾀하고 있었다. 아쿠타가와가 중국 특파원으로 파견되는 급격한 전개 과정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시야에 넣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쿠타가와에게 중국 기행은 과거 품고 있던 갈망을 배반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를 계기로 아쿠타가와의 건강은 언덕길에서 돌이 굴러내리듯 무너져서, 남은 생애에 치명적인 상처 자국을 남기게 된다. 아쿠타가와는 3월 19일 감기 몸살에 걸려서 모지門司로 출발하지만 오사카에서 잠시 정양할 목적으로 하차해, 일주일 후에야 겨우 모지에서 상해를 향해 다시 출항했다. 하지만 배 위에서도 거센 비바람에 괴로워해서, 상해에 상륙한 후 약 삼 주 동안 입원 할 수밖에 없었다(다만 병원을 빠져나와 헌책방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아쿠타가와는 도쿄를 출발해 약 한달 후인 4월 하순부터 특파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게 됐다. 상해上海, 항주杭州, 소주蘇州, 진강鎮江, 양주揚州, 남경南京, 한구漢口, 장사長沙, 정주鄭州, 낙양洛陽 등을 거쳐서 북경北京, 천진天津 등을 돌았고, 북경에서는 "이곳이라면 이삼 년 살아도 좋다.", "북경에 살게 된다면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 "북경이라면 일이 년 유학해도 좋다는 기분이다.", "연극, 건축, 회화, 책, 예기藝妓, 요리, 모든 면에서 북경이 좋다."고 말하는 등 북경에 대한 호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아쿠타가와는 예정을 당겨서 7월에 귀국했다.
아쿠타가와는 특파원으로 파견된 것도 있고 건강도 좋지 않아서 그렇게 동경하던 중국 기행을 즐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쿠타가와는 중국에서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에 추가 여비를 달라고 했지만 원고를 써서 보내지는 않았다. 그는 각지에 있는 일본인 모임을 방문하고, 저널리스트로서 중요한 인물과 만나거나, 회식 자리에 나가는 등 특파원으로서 무거운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저널리스트(기자)로서의 과밀한 일정에 익숙하지 않았던 작가 아쿠타가와로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지나치게 빡빡한 일정이었다. 요컨대 독자는 작가 아쿠타가와의 중국에 대한 동경과 신체적 부조화를 원인으로 하는 좌절, 식민주의로부터 이탈할 수 없는 특파원 아쿠타가와의 언설 전략이라고 하는 두 가지 층위를 주의 깊게 파헤쳐가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나아가 말하자면 『지나유기』의 작가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을 둘러싼 정황을 간과한다면 이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또한 여기에 『지나유기』의 다층적인 깊이와 매력이 있다.
『지나유기』의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작업은 대단히 큰 의미가 크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독자가 포스트콜로니얼적인 시점만이 아니라, 아주 조금 거리감을 갖고 이 책을 읽어준다면, 혼미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전신을 던져서 싸운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새로운 매력을 접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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