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시인과 관련된 행사가 니가타에서 열려 두 번째로 니가타를 방문했다. 니가타에는 지금까지 총 3번 다녀왔는데 인천공항에서 직항이 매일 있지 않아서 날짜를 잘 맞춰야 한다.
이번 방문의 목적지는 '귀국사업' 때 배가 오갔던 니가타항구와 간기길, 그리고 행사가 열렸던 사구관이다. 니가타항구는 당시를 기념하는 '버드나무길'이 지금도 건재하다.
니가타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니가타항구로 향했다. 멀지 않은 길이라 1000엔 조금 넘는 미터가 올라갔을 때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니가타 항구 주변
니가타 항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북한과의 관계 악화로 귀국사업 때 배가 오고갔던 선착장 출입 자체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 문구도 붙어 있다. 포켓몬고 유저 출입도 금지한다는 문구도 있다. 여기서 포켓몬이 잘 잡히는 모양인데 출입금지라니 아무튼 안타까운 일이다. 출입금지가 되기 전에 다녀와서 그나마 다행인 듯 하다.
근처의 버드나무 거리로 가봤다. 버드나무 거리는 1959년 12월 14일에 시작된 "북송사업・귀환사업・귀국사업" 당시 북한의 "지상의 낙원"이라는 달콤한 말을 믿고 약 93,340명의 재일조선인과 그 가족이 니가타항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일본인 아내 1,831명을 포함해 6,839명의 일본 국적 보유자도 있었다. 최근 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책도 나와 있다.
북한과 일본도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기념물 상태도 좋지 않다. 안내판의 글자도 지워져 가서 흐릿하다.
버드나무길을 보고 항구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보니 출입이 금지됐던 선착장과 바다가 시원하게 보인다. 니가타는 우라니혼(배면의 일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근대 들어서 개발이 지연/지체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의 배경으로 니가타를 고른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도쿄와 멀리 떨어져 근대가 지연된 곳으로 자시만의 유토피아를 구현하는데 제격이었을 것이다.
김시종 시인의 시집 <<니이가타>> 한국어판을 손에 들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니가타 항구는 그 시절 귀국선이 출발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시집 속에서 그려진 기억의 조각들이 항구의 풍경과 겹쳐지며,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이 흑백사진을 통해 전해지는 듯한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꿈꾸며 떠나갔던 곳이 이제는 잊혀진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항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김시종 시인의 시집 <<니이가타>> 일본어 원본과 한국어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일본어 원본은 현재 중고 서점 등에서 30-40만 엔 이상을 줘야 손에 넣을 수 있는 희귀본이다.
◈ 간기거리
전망대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기 위해 간기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기(雁木)는 겨울철 폭설 지역에서 눈을 피하고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집의 일부나 처마를 도로 쪽으로 확장한 구조물로, 이 지역 주민들의 지혜가 담긴 생활 방식이다. 다카다 지역에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긴 간기거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겨울철 눈 속에서도 주민들이 이동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거리의 전통적인 모습은 당시 생활 방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며, 시간 속에서 변화한 현대적인 모습과도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다음날에는 김시종 시인 관련 행사가 열리는 사구관砂丘館으로 향했다. 한자를 풀어보면 모래언덕. 멋진 이름이다.
◈ 사구관
다음날에는 행사가 열리는 사구관(砂丘館)으로 향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래언덕의 집'이라는 뜻인데, 이름부터 멋지고 시적인 느낌을 주었다. 사구관은 원래 일본은행 니가타 지점장의 사택을 포함하는 지점으로 1914년에 개설되었으며, 일본은행 중에서 10번째로 문을 연 곳이었다. 총 8대부터 37대까지 30명의 지점장이 이곳에서 거주하며, 1999년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니가타시가 이 건물을 매입하여 예술과 문화를 담은 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현재는 일반에 공개된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구관에서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꾸며진 '자주 기획전'을 중심으로 음악, 무용, 예능 등 다양한 '예술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또한 계절별로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생활 문화 행사'도 열려, 일본 전통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구관 내부를 둘러보던 중에 한 그림이 눈에 띄었다.
사슴과 동자승 세 명(?)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 해학이 넘치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전통적인 미의식 속에서 살짝 비틀어진 유머가 담겨 있는듯 하다.
이번 니가타 답사에서는 니가타항구, 버드나무길, 간기길, 그리고 사구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각 장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는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한데 어우러져, 니가타라는 도시의 깊이와 매력을 더해준다. 아직 계획은 없지만 다음에 니가타를 방문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답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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