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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연구와 번역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시노자키 교수 / 일본 측 추천문

by DoorsNwalls 2024. 9. 30.

 

'흔들림'으로부터 배운다 

시노자키 미오코篠崎美生子 / 게이센여자학원대학 교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910년대부터 20년대에 걸쳐서 활약한 단편소설 작가지만, 살아 있을 당시에도 아시아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어 실력이 출중한 독자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 그 정도로 많았던 것은 당시 일본이 식민지를 만든 결과라 하겠습니다. 다만 아쿠타가와가 1927년에 자살했을 때, 그 형이상학적인 죽음을 흉내 낸 청년은 일본 만이 아니라 조선에서도 있었습니다. 당시 아쿠타가와가 그 정도로 강력한 언설 생산력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 그가 구사한 언어를 시대 속에 다시 놓고 진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일본의 독자, 연구자만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번에  『지나유기』한국어 번역본이 간행하게 된 것은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이 책을 읽은 한국어 독자 여러분과 이 책이 지닌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나유기』는 대단히 많은 노이즈를 품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아쿠타가와는 1921년 3월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阪毎日新聞의 특파원 자격으로 상해로 건너가 각지를 견학하고, 많은 사람들과 회담하며 북상해 북경에서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귀국하기까지 4개월 동안 여행을 했습니다. 『지나유기』(1925)는 그 때의 중국 체험에 대해 쓴 글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기행문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상해유기上海游記」에는 당시 일본에서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중국과 관련된 책의 내용과 중복되는 부분이 얼마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당시 많은 일본인이 지니고 있던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가져와서 구성된 부분이 이 텍스트에는 적지 않게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상해유기」나 「강남유기江南游記」가 신문에 연재된 것과도 관련된 것이겠지요. 당시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阪毎日新聞』의 지면을 보면, 대부분의 내용이 일본의 식민주의적 언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텍스트의 '나'(아쿠타가와 본인으로 여겨지는 화자)는 중국 공산당을 결당한 인물 중 한명인 이인걸李人傑에 대해서는 온몸으로 공감을 표했고, 경극에 대해서도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를 안내하는 것은 대체로 이중어bilingual(중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 고등교육 기관, '동문서원同文書院'의 졸업생입니다. 이들은 중국문화에 푹 빠져 있으며 중국에서 시민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아쿠타가와는 그들의 모습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필시 처음으로 만난 '중국'에 압도당해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만, '나'의 이러한 흔들림은 유럽인과 미국인을 접하고 문화충격을 받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본디 '나'는 중국 한시漢詩의 교양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도 그랬겠지만, 1920년 무렵 일본의 지식인은 어느 정도 한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근대 중국을 얕잡아 보는 기분과는 별개로 중국의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동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 중국에서는 자신이 상상했던 전통문화를 찾아볼 수 없고, 난잡한 거리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와서 초조해 합니다. 분명히 이러한 반응에는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어리광과도 같은 감정이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어리광어린 뺨을 후려치기라도 하듯이 항일운동의 그림자가 눈앞을 스쳐지나가자, 그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우리들 '일본인'이 이곳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에 대해 사유하고, 왜 그럴까라고 하는 어렴풋한 자의식과 같은 것이 '나'에게 움트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같은 아시아 사람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해서 안심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지나유기』의 '나'는 순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근대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는 상당히 깁니다만, 적어도 이 '흔들림'의 지점까지 역사의 톱니바퀴를 되돌려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함께 '흔들림'으로부터 배우기를 고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