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종 지음, 손지연 옮김 (소명출판, 2019)
Ⅰ
최근 한국 학계에서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2010년대 이후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는 오키나와 관련 서적의 번역과 인적 교류, 그리고 오키나와 관련 학회 및 연구센터가 속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키나와와 관련된 서적의 집필 및 번역은 비단 관광만이 아니라, 인문학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특히 오키나와문학 번역 작업은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한국에서 학문으로서의 ‘오키나와’가 이처럼 뒤늦게 발견되고 탐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많은 지역 중에서 오키나와라는 한 지역이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논의되는 이유는 근대 이후 한반도와 오키나와가 겪은 역사적 경험을 떠나서는 설명될 수 없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차별과 동화 정책
(2)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동원
(3) 동아시아 전후/냉전 체제 속의 군사 기지
(1)은 다소 시차는 있으나 일본이 류큐왕국을 없애고 오키나와현을 설치한 폐번치현(1879)과 조선의 식민지화(1910)로 대표된다. 그 과정에서 오키나와와 조선은 차별과 동화 정책에 의해 우치난츄(오키나와인)로서의 혹은 조선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위협받고 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으로서의 삶을 강요당했다. (2)는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수행한 전쟁에 병사로서나 군부 등으로 우치난츄와 조선인이 참전하거나 동원됨으로써 일어난 여러 문제와 관련된다. 물론 오키나와는 징병령(1898)이 실시됐기에 조선보다는 일본이 수행하는 전쟁에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했고, 오키나와전쟁 당시에는 오키나와에 동원된 조선인 군부나 ‘위안부’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했다. (3)은 일본이 패전한 이후 동아시아 냉전 체제가 심화돼 가는 가운데 오키나와와 한반도가 공유한 미군기지 문제 등을 말한다.
일본과 한국에서 거의 동시에 출판된 오세종(류큐대학 류큐아시아문화학과 교수)의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는 (2)와 (3)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키나와에 존재했지만 잊힌 조선인을 오키나와의 역사와 일본 제국과의 관련 속에서 다시 역사의 수면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식민주의에 대한 협력과 저항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오세종은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내셔널리즘으로 수렴시키거나, 제국주의 폭력을 당대의 보편적인 세계사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의 한계를 명확히 하며, 그 안에 위치한 마이너리티의 자리를 현재화 하고 비판적으로 독해해 이항대립적 협력과 저항 논리에 틈을 벌리고 있다.
Ⅱ
오세종의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는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오키나와전쟁에 동원됐지만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불가시화된 조선인 군부와 ‘위안부’를 일본-오키나와-조선의 관계 속에서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2장은 일본이 패전 한 이후에도 오키나와에 남아 있던 조선인의 국적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후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복귀하는 1972년 5월 15일까지 미국에게 점령돼 있었기에 일제 말 일본국적을 보유하고 있던 오키나와에 남은/남겨진 조선인은 무국적자가 된다. 3장은 전후 직후 냉전체제 속에서 오키나와와 한국이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4장과 5장은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1-3장이 역사적 전개를 다루었다고 한다면, 4-5장은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예리하게 포착해 오키나와의 조선인을 오키나와의 탈식민화 과정과 연동해 읽어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나가며’에서는 오키나와의 조선인 관련 비석과 탑을 소개하고 있다.
오세종이 오키나와에서 불가시화된 조선인을 다시 역사의 수면위로 끌어 올리려는 시도를 역자인 손지연은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이들 ‘오키나와의 조선인’은, 저자의 말을 빌자면, 식민지 역사 속에서, 오키나와전쟁 속에서, 그리고 미군 점령하에서 불가시화되고, 때에 따라서는 희미하게 가시화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이고 불확정적인 존재들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1972년 ‘복귀’ 이전까지는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었기 때문에(일본의 잠재주권은 인정되었지만) ‘오키나와의 조선인’은 재在‘일日’ 조선인도 아니려니와, ‘불가시화된 자들’, ‘귀속처가 불분명한 자들’, ‘그 틈새에 끼인 자들’이라는 저자의 비판적 자리매김은 상당히 큰 울림을 준다. (4쪽)
손지연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1972년 ‘복귀’ 이전까지는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었”기에 오키나와에 남은/남겨진 조선인은 철저히 불가시화된 존재였다. 이는 비단 “오키나와가 일본이 아니었”기 때문에 벌어졌다기보다는 식민지 조선이 해방 이후에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냉전체제의 최전선으로 변화한 상황과도 깊이 연관돼 있다. 일본 본토의 재일조선인은 해방된 이후 남은/남겨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남과 북이 분단되는 과정 속에서 일본으로 망명한 사람들로도 구성돼 있음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런 상황에서 한반도로부터 일본 본토보다 더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의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쉬이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념적 대립과 냉전의 심화는 이산된 조선인들에게 더욱 짙은 그림자와 비극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오세종은 가해자로서의 오키나와만이 아니라,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며 역사를 청산하려 했던 오키나와 또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우선 가해자로서의 오키나와를 살펴보자. 오세종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오키나와인들은 ‘보호받는 자’ / ‘보호 받지 못하는 자’라는 경계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 여성에 대한 호칭이나 실제 폭력행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경계를 그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군이 ‘위안소’를 설치하면서 그어놓은 경계선을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보강해간 것에 다름 아니다.(78쪽)
일본군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우치난츄는 내면화하고 적용해 조선인에게 적용함으로써 자신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조선인을 다뤘다. 이는 오세종의 비유처럼 조선인을 ‘동물’로 취급한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그것은 ‘군대=가해자’이고 ‘오키나와 주민=피해자’라는 도식 자체의 파열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식해 조선인과의 연대를 추구하려 했던 전후 오키나와의 모습 또한 오세종은 포착하고 있다.
제3세계에 자신들을 열어 보이고, 자신들의 가해성에 물음을 던진 복귀운동은, 결과적으로 오키나와 내부의 타자를 부상하게 하는 토양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오키나와’ 자체를 대상화하는 것, 즉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밖으로부터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되비추는 일은 주민들 입장에서 오키나와전쟁을 기록하는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를 통해 오키나와 내부의 조선인들을 발견해 가게 된다.(180쪽)
복귀운동 과정에서 오키나와는 국제연대를 밖으로 추구해 내부의 마이너리티와의 연대는 등한시 했으나, 그 과정에서 오키나와 내부의 조선인이 발견됐다. 1960년대 말 불가시화됐던 오키나와의 조선인들이 출현하게 됐던 것은 이러한 오키나와의 자기성찰과 외부와의 연대를 추구하던 움직임 속에서였다. 오세종이 밝히고 있듯이 그것은 오키나와전쟁을 구술하고 채록하는 과정에서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의 존재로 등장했다. 이처럼 이 책은 전전과 전후 오키나와에 존재한 조선인의 존재를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내 현재와의 관련 속에서 우리의 눈앞에 드러내고 있다.
Ⅲ
이 책은 오키나와의 조선인을 둘러싼 역사와 담론을 다뤄서 불가시화된 존재를 다시 역사의 수면위로 끌어올려 현재화하고 있다. 다만 이 책의 빛나는 점은 잊힌 오키나와의 조선인의 가시화에만 있지는 않다. 또한 조선인을 차별하고 가해한 오키나와를 고발하는데 있지 않다. 이 책의 빛나는 지점은 “가해의 위치”를 고발하고 처단하는 시점이 아니라, 가해에 이르는 구조를 밝혀내고 그것을 “망각하지 않고 분명히”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은 오키나와의 조선인의 “가시화와 불가시화가 길항하는 사이에 자리”(286쪽) 잡아 갔던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가해와 피해의 구조를 파고 들어가 그 구조에 저항하기 위함이다. 오세종은 오키나와를 다루고 있지만 오키나와를 둘러싼 전전의 일본 제국과 전후의 미국과 일본의 위치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문제를 오키나와라는 장에만 맡겨버리면, 오키나와의 조선인에 대한 전체상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반복해서 언급한 담론공간을 단순히 증언이 등장하는 장이 아닌, 탈식민지화를 가능케 하는 장으로 삼기 위해서는 오키나와인들과 오키나와의 타자 간에 서로 겹쳐지는 역사를 공유하고, 그럼으로써 가해에 서게 하는 것에 저항해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사이에 끼인 오키나와의 조선인도 가시화되고, 그 전체상이 오키나와인들의 삶과 역사까지 포괄하여 땅 아래에서 위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180쪽)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분석중의 한 구절이다. 이는 비단 오키나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키나와를 한국으로 바꾸었을 때, 혹은 제주로 바꾸었을 때 똑같은 문제가 한반도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1장에서 전술했던 것처럼 1), 2), 3)에 이르는 유사성을 한반도와 오키나와가 공유하고 있기에 치환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오세종은 오키나와의 조선인을 가시화시키는 것에서 “오키나와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식민주의를 넘어서려는 가능성” (287쪽)을 발견해낸다. 오세종의 시도는 주어를 바꾸면 “한국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식민주의”와도 이어진다. 과거를 과거로만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연관 속에서, 그리고 현재를 문제시하는 방법론으로 길어올린 오세종의 이 책은 오키나와라는 범주를 넘어 동아시아에서 전개됐던 근대 이후의 비극적인 식민주의와 고통을 수반한 탈식민화 과정을 다시 읽어내고 현재화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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