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는 1959년에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일본 전체가 된다”(「오키나와에서 부락까지」)고 썼다. 그는 전근대 시기 사쓰마(薩摩, 현재의 가고시마)-오키나와-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관계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일본-오키나와의 관계로 치환해서 바라본다.
지배와 피지배가 겹쳐지는 가운데 큰 세력(지배세력)의 모순이 집결되는 장소로 작은 세력(피지배 세력)을 포착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와 이해가 몇 겹으로 겹쳐진
피식민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국주의 국가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다케우치는 오키나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 전체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다케우치는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일본 전체가 된다고 썼다.
하지만 오키나와 문제는 일본 전체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으로 시계(視界)를 넓힐 때 비로소 더 선명히 보인다. 왜냐하면 식민주의나 군사기지 문제는 동아시아가 아프게 통과한 근현대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의 어떤 지점을 확대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되는 것일까?
오키나와문학은 오키나와 민족(우치난츄)의 역사적 기억과 현재를 담아낸 것으로 일본 ‘본토문학’과는 겹쳐지지만 변별된다. 여기서 오키나와의 전근대 역사와 근대 이후 일본의 식민지로서의 위치, 그리고 미군 점령기와 일본 '복귀'까지의 역사를 전부 개괄할 수는 없으나, 오키나와문학은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본토와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현재에 이르렀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오키나와문학은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는 본토에 동화돼 근대적 자아를 이루려는 원망(願望)과 그로부터 비롯된 상흔을, 미군 점령기에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가해자(일본 제국의 일원)로서의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전개됐으며, 일본 '복귀'(1972) 이후부터는 일본 본토 및 미군과의 관련, 그리고 오키나와의 민속, 자연 등 표현의 범위가 점차 넓어져갔다.
최근 10년 사이 한국 학계의 오키나와를 향한 관심과 이해는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어졌다. 이는 최근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 학계의 오키나와 관련 서적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식민주의, 자기비판, 냉전, 전쟁, 군사기지 등은 오키나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이후 동아시아 전체가 겪은 상흔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된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오키나와를 확대해도 동아시아 전체가 되지 않는 날, 지배와 피지배, 종속과 독립을 둘러싼 파열음이 잦아들고, 오키나와가 오키나와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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