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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연구와 번역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by DoorsNwalls 2024.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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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재미 코리안 작가인 이민진 원작의 『파친코Pachinko』를 다 읽었을 때도, 애플TV 시즌1(전체 8화)을 다 본 후에도 그랬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위화감의 근원은 기존의 재일조선인 서사와 결이 다른 작법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익숙해져 있던 재일조선인 작가(김달수, 김시종, 김석범, 양석일, 이양지 등)의 자기 서사에는 에스닉 집단 특유의 특수성이 내장돼 있다. 이는 같은 민족인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좀처럼 공감을 표하기 힘든 수난사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 특수성은 『파친코』의 모두(冒頭) 문장인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수렴되지 않는 “우리를 망쳐놓은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는 분단과 차별을 향한 준엄한 이의제기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기존의 재일조선인과 관련된 문학과 영화는 일상에 지치고 바빠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시청자에게는 기피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이에 비해 소설/드라마 『파친코』는 재일조선인의 수난사를 보편적인 디아스포라 서사 속에 융해시키며 인기를 끌고 있다. 탈(脫)장소성 또한 인기의 비결로 보인다. 작품에 등장하는 부산 영도,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오사카 내의 재일조선인 거주지)는 소설이나 드라마 모두 ‘불필요한’ 디테일을 생략한다.

당사자성을 지닌 기존의 재일조선인문학이 그곳에서 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과 장소성을 드러냈다고 한다면, 『파친코』는 그곳이 꼭 영도나 오사카가 아니어도 되는 선자 일가의 반세기에 걸친 가족사(성장 스토리)를 풀어낸다. 김시종 시인의 『이카이노시집』(1978)과 『파친코』에 등장하는 이카이노 묘사의 층위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김시종이 이카이노를 “없어도 있는 동네. / 그대로 고스란히 / 사라져 버린 동네. / 전차는 애써 먼발치서 달리고 / 화장터만은 잽싸게 / 눌러앉은 동네.”(「보이지 않는 동네」 『경계의 시』, 유숙자 옮김, 소화, 2008, 85쪽)로 표현할 때, 이는 대체될 수 없는 장소성을 짙게 품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이에 비해 이민진의 묘사 속 이카이노는 “일종의 잘못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판잣집들은 모두 똑같이 값싼 자재들로 엉성하게 지어.”(『파친코1』, 이미정 옮김, 문학사상, 2019, 160쪽)진 공간으로, 반드시 이카이노가 아니어도 되는 이민자들의 열악한 주거지로서의 보편성을 띤다.

전자가 분단/냉전/민족차별의 고통 속에서 풍화를 견뎌내는 조선인의 삶을 장소성에 담아냈다고 한다면, 후자는 선자 일가가 차별을 겪기는 하지만 정치 문제는 최대한 멀리하고 경제적 성취를 해나가는 공간이다. 『파친코』의 이카이노는 초기 미국 이민자들도,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도, 남미로 이주해 간 아시아인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파친코』가 인기를 끌고, 재일조선인의 삶과 현실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디아스포라 서사/콘텐츠가 인기를 끈다고 해서 기존의 재일조선인 관련 작품과 연구가 빛을 보리라는 보장은 없다. 2004년 한류가 일본에서 유행 했을 때, 한국/조선과 관련된 서사의 주체로 여겨졌던 재일조선인은 빛을 보기는커녕 뉴커머의 등장으로 뒤로 밀려났다.

물론 상황이 같지만은 않다. 2004년의 예와 달리, 재일조선인 이야기의 당사자성은 재미 코리안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독자/시청자를 상정하고 보편적 이야기와 극적인 연출을 1000억의 제작비에 담아낸 『파친코』의 인기가 그대로 기존의 재일조선인문학이나 영화를 향한 폭넓은 관심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이는 한인 디아스포라 창작자와 거대 자본의 투자가 성공적으로 만나 결실을 맺은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만들어낸 일시적 열기와 인기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한반도의 역사와 ‘지금 여기’의 문제가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파친코』의 보편적 서사에 공감한 독자/시청자가 김석범의 『화산도』, 김시종의 『이카이노 시집』,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등을 ‘우리’의 서사로 수용할 수 있을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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