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기>>는 가난, 곡성, 고통, 울음, 설움,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한 시집이다. “건져올린 몸에는 혀가 없”(「저수지」 69쪽)고 “빈 들에/산 것들의/수의가 덮” ( 「회복기2」 29쪽)이며 화자는 그 고통을 체현하고 말한다. 제목처럼 시집은 고통과 죽음을 회복하는 기록일까? 그런 물음을 품고 시집을 읽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회복되기 힘든 고통과 죽음을 시집에서 확인할 뿐이었다.
이 시집은 확실히 “겪지 않은 것에 대한 시쓰기”이지만 시 한 편 한 편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광의의 당사자성을 시인이 체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극/사건의 장소에 시인이 살고 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를 시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뜻에 더 가깝다. 시는 쓰이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는 김시종이 「시론」(<<지평선>> 2018)에서 밝혔던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대중의 한 사람”으로 “타인의 삶을 나누어 가진 존재”임을 자각하여 “목구멍에 막혀서 나오지 않는 말”(189쪽)을 지닌 많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타인의 고통은/ 먼바다의 풍랑주의보/ 없었던 일이/ 없었던 일처럼 일어난다/ 비명과 외침이/ 귀먹은 땅으로 쫓겨난다 (72-73쪽)
시인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먼바다의 풍랑주의보” 정도로 치부하는 현실을 ‘지금 여기’의 문제로 끌어온다. 타인의 고통을 먼바다의 풍랑주의보 정도로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시인의 인식과 고뇌는 광주5·18, 세월호참사, 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씁쓸한 현실인식으로 이어진다.
“다녀올게, 인사하고/ 다녀-떨어집니다 다녀-부서집니다 다녀-무너집니다 다/ 녀-끼이고 다녀-깔리고 다녀-치이고 다녀-눌립니다 다녀-/ 갇히고 다녀-잠깁니다 다녀-그을립니다 다녀-묻힙니다/ 돌아옵니다 피동태로/ 다녀옵니다 구조되지 못한 죽음으로” (「합동 분향소」 109쪽)
귀가하지 못 한 사람들은 “다녀-떨어”지고 “다녀-부서”지고 “다녀=잠”기고 “구조되지 못한 죽음”을 맞이한다.
시인에게 이제 봄은 꽃이 피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 아니다. 시인은 “남의 무덤에라도/ 엎드리고 싶은/ 봄날” (「회복기-연고」 119쪽)이라고 쓰면서 제주4·3의 비극을 지나간 과거로 그저 ‘단정히’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범벅으로 여전히 계속되는 고통을 웅숭깊이 받아들인다.
증언은 그저 과거의 것으로 박제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쉿, 산엣것들 귀를 세운다. 숲속 눈동자 멈추어 선다. 온/ 다. 그것이 오고 있다. 발바닥을 통과하는 검은 땅의 떨림./ 온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곶자왈 하늘로 새들, 일제히/ 날아오른다. 숲을 흔드는 포성. 다시 터진다. 인간이란 얼/ 마나 시끄러운 존재인가. 에무원. 제무시. 그들. 그들이다/ (중략) 그건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그러나 더러 아는. / 불타는, 사람들. 수십개의 다리. 그을린 몸들. 여기에 있니. 너. 뒤엉킨 몸들을 들추며 나는 너를 불렀지. 가 가 가 가, / 검은 새들이 하늘 위를 빙빙 돌며. 가 가 (「순례자」 90-91쪽)
제주 조천흡 선흘리 4·3사건 피해자 김상효의 증언은 시가 되어 독자를 그날의 숲속으로 이끈다. 그곳에는 토벌대에 의해 살육당한 사람들의 “뒤엉킨 몸”이 가득하고 시체 위로는 까마귀가 날아올라 “가 가 가” 운다. 시인은 토벌대를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꼬리도 없는. 거/ 짓을 감추기 위해 꼬리마저 지운 족속들은 / 인간. 동족을 사냥하는 생물. 제 종족을 살육하는 종” (「순례자」 92쪽)이라고 쓰며 연민과 증오 모두를 담아낸다. 「순례자」는 “제 종족을 살육하는 종”인 토벌대에게 산에서 쫓겨 살해당한 숲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 비극이 그저 먼 옛날의 끝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음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비극은 여전히 명확한 의미가 될 수 없는 의성어로 흘러나온다.
잘린 나무의 울음을 보았습니다 / 그 나무에서 피가 솟아 / 나에게로 흘러옵니다/ (중략) 우 어 으어 우우우 어으 우 워// 이제 무엇을 보았느냐 너희가/ 스― 스흐― 새― 스― 쇠― 하― 사하― 스― 쉬― ㅅ/ (중략) 왜 새들은 노래를 멈추고 노래는 더이상 춤추지 않습니/ 까 해 돋는 첫 마을들 제 땅에서 추방당한 사람들 뜯긴 앞/ 섶입니다 (「Kommos: 바람 타는 섬」 83-84쪽)
비탄과 애도의 노래인 ‘Kommos’에는 살해당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우 어 으어 우우우 어으 우 워”, 불타는 숲이 내는 소리 “스― 스흐― 새― 스― 쇠― 하― 사하― 스― 쉬― ㅅ”, 그리고 “여허 어허 어허이야 아에 어허양 어허 러허”(85쪽), “나 나이히이나어 어어 헤으 나히”(85쪽) 등과 같은 의미를 온전히 특정하기 힘든 의성어가 가득하다. 고통으로 시작된 의성어는 울음을 거쳐 치유의 소리인 “에 헤 헤이야 너허 니히 나히라 러 러히러”(86쪽), 그리고 평온한 안식을 안겨주는 자장가 소리인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자랑 자랑 웡이 자랑/ 아 하 아아아양 어허양 어허요”(86쪽)에 이른다. 고통의 소리를 내며 죽어간 많은 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그들을 호명한 후 안식의 자장가로 평온을 빌어주는 듯 하지만 “아하 아아아양 어허양 어허요”가 나오며 설움을 가득 드러낸다. 시인이 “설움에게 잘도 얻어먹고 다녔구나 / 울음의 연대라고 생각했던 것/ 실은 당신 것으로 연명해온 일” (「설움이 나를 먹인다」 117쪽)이라고 쓰고 있는 것처럼, 설움은 <<회복기>>를 관통하는 비극에 공감할 수 있는 인간다움의 정수이다.
# 이 서평은 잡지에 실린 글을 블로그 용으로 대폭 축약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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