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일성 지음, 정기문 옮김 (보고사, 2020)
Ⅰ
‘재일조선인(在日朝鮮人)’은 최근 학술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분단과 오랜 냉전의 후유증으로 ‘조선’이 들어간 이 용어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 또한 대두되고 있다. 재일교포, 재일동포 등을 차치하고서도 재일한국인, 재일한국·조선인, 재일코리언, 재일디아스포라는 각각 다른 함의를 지니고 있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용어처럼 회피되지는 않는다. 최근 조선, 한국, 코리언 등을 제외하고 ‘在日’을 일본식으로 읽은 ‘자이니치(ざいにち)’로만 약칭하는 것도 ‘조선인’을 둘러싼 미묘한 회피 감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고유명사가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재일한국·조선인 등으로 나뉘는 것은 남북분단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는 타 지역의 ‘동포’를 부르는 명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경우에는 재미교포로 통칭되고, 미국 사회에서도 코리언아메리칸(Korean American)이라는 공식적인 고유명사가 존재한다. 유독 일본에서만 용어가 이처럼 난립하는 것은 일본 내 재일교포들이 동서냉전의 심화 속에서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은 일본 내 조선인들의 사상적 대립과 민족 집단의 분열을 불러왔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호칭이었던 ‘조선’이나 ‘조선인’이 한국 내에서 회피되기 시작한 시점은 분단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 조선총련(1955)의 ‘조선’이 북측을 상징하는 용어처럼 인식되면서 ‘조선’은 더 이상 한반도 전체를 아우를 수 없게 됐다. 이는 ‘조선’이라는 용어에만 그치지 않고 ‘조선인’, ‘조선어’에도 그대로 적용돼 NHK가 ‘한국어’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할 때 프로그램 명칭을 두고 극심한 대립을 불러왔다. 민족어의 대명사는 ‘조선어’이므로 프로그램 명칭을 ‘NHK 조선어 강좌’로 해야 한다는 조선총련의 주장에 민단과 한국 정부가 반대하며 ‘NHK 한국어 강좌’를 내세움으로써 NHK는 몇 차례 강좌 개설을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1984년 NHK는 결국 조선어도 한국어도 강좌 명칭에 쓰지 못 하고 “안녕하십니까. 한글 강좌”를 열었다. 남북분단과 냉전의 심화가 불러온 웃지 못 할 사건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지만, 분단과 냉전이 민족을 둘러싼 명칭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
나카무라 일성이 쓴 <<사상으로서의 조선적>>은 재일조선인의 국적문제를 6명의 실존 인물을 인터뷰해 재구성한 르포르타주이다. 사실상 무국적인 조선적을 재일조선인 작가인 고사명, 정인, 김석범, 그리고 교육자와 연구자와 활동가인 박종명, 박정혜, 이실근이 일생을 걸고 바꾸지 않은 이유를 이 책은 핍진하게 그려낸다. 이 짧은 리뷰에서는 조선적이 왜 사상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재일조선인 작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
<<사상으로서의 조선적>> 은 해방 직후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고 일방적으로 부여받은 ‘조선적’을 지금까지도 바꾸지 않은 6명의 일대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다. ‘조선적’은 일본이 패전한 이후 구 일본국적자인 조선인을 ‘외국인등록령’(1947년 5월 2일 공포 및 시행)을 시행해 외국인으로 분류하면서 편의상 부여한 ‘국적’이다. 1947년 당시 한반도는 미군정하에 있어서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기에, 조선적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국적이었을 뿐으로 어떠한 권리도 인정받을 수 없는 사실상 ‘무국적’ 상태의 적(籍)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조선적’에는 항상 오해가 따른다.
그 하나는, 이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국적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일부의 정치가와 미디어는 그 오해를 확산시켜 조선적자에 대한 공포심을 부추긴다. (중략) 그러나 ‘조선적’에서 ‘조선’은 ‘지역의 총칭’이지 특정 국가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적자 중에 DPRK 국적자가 전무하다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국적이란 ‘개인과 국적국과의 관계’이고, 개인이 자신이 귀속할 나라로 특정 국가를 선택, 해당 국가가 그것을 인정하면 원칙적으로 ‘국적’은 발생한다. (12-13쪽)
저자인 나카무라 일성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적=DPRK의 국적은 아니지만, 조선적을 가진 재일조선인 중에는 DPRK 국적자가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조선적 중에서 DPRK 국적자를 ‘국교 부재’의 이유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현재 약 3만 정도(2019년 통계)로 추산되는 ‘조선적’을 지닌 재일조선인을 이해하는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고사명, 박종명, 정인, 박정혜, 이실근, 김석범은 해방 후 일본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운동가로서 일가를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이들은 ‘조선적’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남과 북 어느 체제의 편도 들지 않고 통일된 조국을 꿈꾸는 ‘사상’으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조선’이나 ‘조선적’은 모두 동일한 실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해방 직후 청년 시기를 맞이한 이들 중에는 조선에서 가본 적이 없거나, 조선어를 못 하는 등의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작가 고사명은 ‘조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과는 연결되지 않아요. 조선이라고 말하면 아버지와 연립주택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포함해 그 전부가 조선인지만 조국이라고 하면 관념적으로 생각되어서 어긋나버려요. 본래 있어야 하는 것의 이미지가 조선이지만 북조선과 한국의 이미지에서는 어긋남이 생겨버려요……. (67쪽)
고사명이 말하고 있는 어긋난 감각은 재일조선인 2세에게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공통의 감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인이지만 생활의 기반은 일본이었기에 조선과의 어긋남은 필연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일본어를 자명한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재일조선인의 곤란한 위치를 잘 말해준다. 조선어를 배운 적이 없었던 정인에게 조선어는 ‘외국어’처럼 낯선 말이었고, 그렇기에 작품 활동은 신체화된 일본어로밖에 할 수 없었다.
폭력으로 위협받으며 강요당했던 언어가 일본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2세에게는 모어mother tongue였다. 그리고 그들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한 모어는 조선인을 멸시하는 언어를 다수 내포한 일본어이기도 했다. 애증이 뒤섞인 ‘모어’를 파고들어서 자이니치 2세인 자신의 실존을 자아내간다. 그것이 정인의 창작이며 자기해방이었다.(138쪽)
모어로서의 일본어를 둘러싼 재일조선인 작가의 고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것이었다. 조선인이니 조선어로 창작을 하라는 조선총련의 압박이 1955년 이후 점차 거세지면서, 일본어로밖에 창작을 할 수 없었던 정인과 같은 작가들의 고뇌는 더욱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조선어와 일본어 양쪽을 다 할 수 있는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조선어보다는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고, 조선어로 글을 써서는 소수의 독자밖에는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대작 <화산도>의 작가인 김석범은 국적, 국경을 간단히 뛰어넘어 사유하는 가벼운 사유에 제동을 거는 존재다.
“국경 따위는 상관없다.” “국적은 기호에 불과하다.” 누차 들은 말이지만, 이것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대부분 스스로가 ‘국민’인 근거를 물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명한 ‘국민’이다. 지금 존재하는 장소에 있을 자유도, 국경을 넘어 이동할 자유도, 국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식민지시대가 청산되지 않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재편에서 일본의 ‘전후’가 시작된 결과로서 생겨난, 사실상 무국적으로 취급된 ‘조선적자’이다. (사상으로서의 조선적 157쪽)
나카무라는 조선적이라는 이유로 수차례 한국 입국을 거부당했던 김석범을 축으로 “자명한 ‘국민’”들의 안온한 사유를 근본에서부터 비판한다. 조선적이 사상일 수밖에 없음은 조선적을 지녔다는 이유로 여전히 억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억압의 대상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적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놓을 수 없는 마지노선”(11쪽), 즉 사상이기 때문이다.
Ⅲ
해방 이후 일본 사회에서 조선적을 유지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곤란한 일이었다. 이는 수십만에 이르던 조선적 유지자가 최근 3만 명까지 줄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재일조선인이 조선적을 유지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김석범의 조선적을 둘러싼 사유는 사상으로서의 조선적의 정점을 보여준다.
‘사상으로서의 조선적’이 희구하는 것은 통일 조국, 그 비전은 “지배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와 그 전제가 되는 주체로서의 평등이다. (중략) “나는 어디까지나 통일 조국을 요구합니다. 실현되면 그곳의 국적을 취득하고 국민이 될 것입니다. 단지 그때, 나는 이미 민족주의자가 아닙니다.”(290쪽)
큰따옴표 부분은 김석범이 인터뷰에서 직접한 말을 기록한 것이다. 김석범이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95살이 넘어서까지 조선적을 유지한 것은 국적 변경이 남북의 분단을 추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임을 인용문은 말해준다. 다시 말하자면 조선적은 분단을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에 도래해야 할 ‘통일 조국’을 향한 김석범의 초인적인 의지였던 셈이다. 김석범의 통일 조국을 향한 의지는 조선적이 사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사상으로서의 조선적’의 가장 높은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나카무라 일성의 <<사상으로서의 조선적>>은 조선적을 둘러싼 오해를 불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선적인 사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일본 사회의 재일조선인을 향한 차별만이 아니라 남북분단과 냉전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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