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은 메도루마 슌에게 충격적인 해였다. 1995년 9월 4일, 미군 3명이 13살 밖에 되지 않은 오키나와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이 터졌다. 미군에 의한 범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범죄의 대상이 초등학교 여자아이였기에 섬의 분노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사건 이후 ‘섬 전체의 투쟁’이 전개됐다. 냉전의 해체를 목도하며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던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현실의 엄혹함을 몸서리칠 만큼 느끼게 했다. 평화와 변혁의 물결 속에서 오키나와만 홀로 뒤처져서 미군기지의 일상적인 폭력과 미일안보체제의 군사기지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이 오키나와를 엄습하고 있었다. 그런 엄혹한 현실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 바로 소녀 성폭행 사건이다.
『무지개 새』에 등장하는 무지개 새는 베트남전쟁 당시 얀바루에서 훈련하던 미군 특수부대에 떠도는 신화적인 이야기의 심볼이다.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무지개 새>> 를 읽을 때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오키나와는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을 폭격했던 B52폭격기가 베트남에서 이륙했던 후방 기지였다. 그뿐이 아니라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베트남 전쟁을 위해 싸우는 미군에 협력해서 군용 작업을 펼쳤다. 얀바루는 오키나와 북부의 높고 깊은 숲으로 북부 사람들의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소지만, 오키나와전쟁 이후에는 미군에 의해 훈련장으로 점유되면서 베트남전쟁의 모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얀바루 숲은 베트남전쟁에 파병되기 전 미군이 정글과 흡사한 환경에서 훈련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무지개 새>>에는 얀바루 숲에서 누군가 무지개 새를 본다면 그 사람은 전장에서 살아남지만 다른 부대원은 전멸한다는 전설이 강렬하게 나온다.
얀바루 숲에는 환상의 새가 있다. 비둘기 정도의 크기로 꼬리가 길어 신장이 1미터 가까이 되며 머리에는 장식용 깃이 자라 있다. 전신이 극채색인 날개로 뒤덮여 있어 미군은 그 새를 레인보우 버드, 즉 무지개 새라고 부른다. 만약 숲속에서 그 새를 발견한다면 아무리 격렬한 전쟁터에서 있더라도 반드시 살아 돌아올 수 있다. 군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155쪽)
소설 끝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가쓰야와 마유가 무지개 새를 찾아 얀바루 숲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유일한 희망으로 등장한다. 작은 섬에서 성노예 상태였던 마유가 자신을 억압하던 류세카이(야쿠자 조직)의 조직원들을 죽인 후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얀바루 숲으로의 도피행은 가쓰야에게는 현실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결말은 가쓰야를 구원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마유를 절망의 심연에서 구해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일본에서 독해되고 있듯이 비겁한 오키나와인 남성 가쓰야가 치유되는 내용이라기보다 그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마유를 구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이야기 구조상 가쓰야는 마유를 버리고 자신의 집(군용지료 등으로 넉넉한 가정환경)으로 돌아가더라도 일상의 삶을 보낼 수 있지만, 마유는 히가와 마쓰도를 살해한 것 때문에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편 『무지개 새』는 각 등장인물의 위치를 미국-일본-오키나와의 관계로 환원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시로 다쓰히로의 「칵테일 파티(カクテル・パーティー)」(1967)의 주제의식과 겹쳐진다. 하지만 히가-가쓰야(시점인물)-마유를 그대로 미국-일본-오키나와 관계로 환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상징적인 인물, 히가의 뒤에는 류세카이라는 야쿠자 조직이 존재하며, 가쓰야와 히가의 관계는 류세카이-히가-마쓰다-가쓰야 식으로 폭력의 구조는 보다 계층화돼 있다. 또한 미군기지 문제와 소녀폭행사건을 둘러싼 현민궐기대회에 대한 묘사는 소설 전반에 걸쳐서 몇 번이고 등장한다. 히가-가쓰야는 공범 관계지만, 마유가 “돈을 낳는 기계”(비인간)로 설정돼 있는 만큼 마유를 오키나와로 환원시키는 것도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
이 소설에 류세카이-히가-가쓰야에 이르는 폭력의 위계(hierarchy)를 미국과 일본의 오키나와 지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읽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는 없으며, 작가는 그것을 독자가 추론할 수 있게 흔적만을 남겨 놓았다. 이는 메도루마가 「희망」 이후 미국-일본-오키나와의 지배구조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쓰기보다, 상상력을 발휘해 읽어낼 수 있는 알레고리로서 드러내는 글쓰기를 시도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 소설을 오키나와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폭력적 수단인 테러를 권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독해이다. 『무지개 새』는 다양한 관계망 가운데 작동하는 절대적 폭력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것을 지양하고, 폭력이 횡행하는 구조 속에 있으면서,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조차 결여되어 있는 오키나와 사회 내부의 모순을 철저히 파헤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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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새』에서 히가 일당과 미군 소녀를 죽인 것이 “등 뒤에 일그러진 무지개 새 문신”을 하고 있는 마유라는 점은 젠더화된 신체로부터의 이탈 혹은 연쇄된 폭력의 끝에 위치한 약자의 항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성폭력과 범죄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미군에 의한 소녀 성폭행 사건’에 대한 분노로 들불처럼 일어난 현민 총궐기대회는 마유와 같은 여성을 전혀 구해내지 못 한다.
마유는 이성이 사라진 극한의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히가를 죽이고 가쓰야의 도움을 받아 북부의 얀바루 숲으로 향하던 중에 미군 아이를 죽인다. 이는 내용 그대로 그런 폭력을 정당화하는 내용이라기보다 “가장 저열한 방법”(서경식)으로 오키나와 문제 혹은 자기 부정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무지개 새>>는 오키나와 대 미국/일본이라는 단순한 구도의 폭력만을 비판한 소설이라기보다는 폭력의 연쇄 속에서 오키나와 내부에서 벌어지는 폭력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1995년 사건의 피해자 소녀와 같은 ‘순수한’ 인물이 아니라, 오키나와 사회의 암부에서 그 존재조차 인지되지 못 하는 성노예 상태에 빠진 미성년자 마유를 내세우고 있음도 이를 잘 보여준다. 더구나 마유가 한때 반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활기찬 소녀였다는 사실은 오키나와인 누구나가 단 ‘한순간’의 차이로 삶의 나락을 경험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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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통일로문학상 기자회견(2023.9.11.)에서 메도루마는 “기지문제나 역사문제에 그 어떤 것도 저는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도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살아있고 존재하는 한 그 구조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그는 헤노코(辺野古) 신기지 반대 운동을 위해 ‘압살의 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해상 저지 운동을 쉼 없이 해오고 있다.
메도루마는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담아 <<무지개 새>>를 썼고, 작품은 오키나와 안의 권력 구조 안에 갇혀 있는 작은 존재들의 외침소리를 담아냈다. 그렇기에 『무지개 새』가 겨누는 창 끝은 오키나와를 억압하는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의 모순 및 “치유의 섬”, “평화의 섬”이라는 이미지(스테레오타입)에 안주하는 섬 내부로도 향해 있다. 메도루마는 『무지개 새』, 「희망」, 『기억의 숲』에서 미군기지 문제를 자신의 작품 세계 깊숙이 끌어들여서 폭력이 연쇄적으로 발생되고 있음에도 전쟁의 기억이 단절돼 가는 오키나와의 상황에 경종을 울렸다. 그렇기에 『무지개 새』는 누가 오키나와에 폭력을 가하고 있는가를 궁구한 내용이라기보다 견고한 폭력의 구조를 제의적으로 파괴한 수작이다.
오키나와 공동체로의 귀속을 그 데뷔작 「어군기」에서부터 거부한 메도루마는 미군관련 삼부작에 이르러 극한의 문학적 상상력으로써 “오키나와 문제의 궁극적인 지점”을 오키나와인은 물론이고 일본어 독자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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