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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벽을 넘어/국내 및 동아시아

장춘에서 구 만주국 답사-야마토호텔, 만주국황거, 문화광장

by DoorsNwalls 202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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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주철도 답사의 일환으로 장춘을 방문했다. 인천공항에서 단동으로 간 후, 그후 대련을 본 후 장춘, 그리고 장춘에서 심양으로 가서 귀국하는 루트이다. 장춘은 구 만주국의 수도로 한때 신경新京으로 불렸던 곳이다.

 

만주사변 이후 일본 제국은 만주지역을 점령하고, 1932년 3월 마지막 청 황제 푸이(溥儀, 1906~1967)를 내세워 만주국을 세웠다. 만주국의 수도가 바로 신경, 오늘날의 장춘이다. 중국에서는 만주국을 지칭할 때 꼭 거짓 위(僞)를 붙인 '위 만주국'이라 칭한다. 하나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장춘 답사는 일정이 1박 2일밖에 되지 않아서 많은 곳을 가지 못 했다. 루트는 대략 이하와 같다.


  • 장춘역 
  • 야마토호텔 
  • 만주국황거 
  • 문화광장

장춘으로 가는 길

대련에서 장춘에 도착해 놀란 것은 장춘역의 거대함이었다.  장춘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그 규모의 압도적인 크기였다. 대련에서 기차를 타고 온 후, 예상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웅장한 역 건물에 놀랐다. 장춘이 구 만주국의 수도였다는 역사적 중요성을 반영하듯, 역의 디자인은 현대적인 요소와 고전적인 중국식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역 주변은 사람들로 붐볐고, 번화한 도심과도 연결되어 있어 이곳이 만주의 중요한 교통 요충지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첫인상은 이 도시가 여전히 활기차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장춘역 안내
장춘역에서

장춘역에 내려서 1박 2일 숙박을 예약한 춘의빈관으로 향했다. 그렇다, 일본의 남만주철도에서 관리하던 그 유명한 구 야마토호텔이 바로 이곳이다.

 

춘의빈관春谊宾馆, 구 야마토호텔


춘의빈관, 과거 야마토호텔에 도착했을 때 첫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샹들리에였다. 로비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샹들리에는 이곳이 한때 일본 남만주철도에 의해 관리되던 호텔임을 증명하듯, 그 시대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건물 전체에서 느껴지는 일본 제국의 건축 양식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곡선이 강조된 기둥들과 섬세한 장식들, 그리고 곳곳에 남아 있는 만주국 시절의 흔적들은 마치 그 시대에 직접 들어와 있는 듯한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신경(현 장춘)의 구 야마토호텔. 현재의 춘의빈관.
신경(현 장춘)의 구 야마토호텔. 현재의 춘의빈관.
신경(현 장춘)의 구 야마토호텔. 현재의 춘의빈관.
신경(현 장춘)의 구 야마토호텔. 현재의 춘의빈관.

이곳에서의 숙박은 단순한 하루의 쉼이 아니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잠시나마 만주국 시대의 삶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시대는 바뀌었지만, 야마토호텔이 지닌 고풍스러움과 그 안에 스며든 역사의 중압감은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있어,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신경(현 장춘)의 구 야마토호텔. 현재의 춘의빈관.

 

신경(현 장춘)의 구 야마토호텔. 현재의 춘의빈관.
신경(현 장춘)의 구 야마토호텔. 현재의 춘의빈관.

만주국 황제, 푸이가 살던 궁전에 가다. 


 야마토호텔을 나와 방문한 곳은 중국 명칭으로는 '위 만주국황거'이다. 이 안에는 '위만황궁박물원伪满皇宫博物院'도 있어서 만주국 시기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만주국 시기의 건물이나 가구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서 만주국의 실체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꼭 들러봐야 하는 곳이다. 내부에 볼 곳이 많기 때문에 최소 2시간에서 3시간 정도는 있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 설명을 하나하나 다 읽는다면 아마 하루 종일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입장료는 70위안이다.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푸이가 살았던 이 궁전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이었다. 입구부터 만주국 시절의 건물과 가구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마치 그 시대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궁전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일만의정서가 조인된 장소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만주국의 설립이 어떻게 관동군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당시의 책상과 의자, 그리고 의정서가 조인된 회의실의 모습은 당시 일본 제국의 영향력과 푸이의 허울뿐인 황제라는 위치를 상기시켜 준다.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곳곳에 전시된 자료들과 설명들을 통해 만주국의 역사적 실체를 하나하나 되짚어볼 수 있었고,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은 과거의 중압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라기보다는, 일본 제국이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무대였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내부에는 푸이가 사용했던 개인 소지품들과 생활용품들까지 전시되어 있어, 이곳에서의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히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푸이의 삶은 철저히 일본에 의해 통제된 삶이었음을 상기하게 되었다. 궁전의 곳곳을 걸어 다니며, 그 시절의 역사적 사건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 황거를 방문한 날, 마침 푸이와 관련된 특별 기획전이 열리고 있어 그의 삶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푸이는 청나라 황실의 마지막 왕자로 태어나 황제가 되었지만, 나라가 멸망한 후 일본의 지원을 받아 만주국의 황제로 다시 등극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리 영광스럽지 않았다. 일본의 허수아비로 존재했던 만주국 황제 시절부터, 전쟁 후에는 전범으로 죄수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없이 삶의 궤적이 바뀌어 갔다. 기획전은 그의 일생을 철저히 분석하며, 그가 처한 상황과 선택들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었다.

'위 만주국황거'에서
'위 만주국황거'에서

특히 전시를 보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고, 직접 등장인물로도 출연했던 이 영화는 푸이의 인생을 서사적으로 그려내며, 역사 속에서 흔적처럼 떠돌던 황제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전시된 자료들을 통해, 영화에서 그려진 그의 복잡한 감정선과 인생의 굴곡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푸이는 단순히 권좌에서 내려온 황제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지 못한 채 외세의 틀 속에서 휘둘리며 살아갔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 만주국황거'에서

기획전은 그의 사치스러운 궁정 생활뿐만 아니라, 전범 재판을 거친 후 죄수로서 보낸 비참한 삶,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일반인으로서 평범하게 살았던 말년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가 지닌 황제의 권위는 결국 바람처럼 사라졌지만, 그 파란만장한 인생은 오늘날까지도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아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고 있다. 

 

푸이와 관련된 기획전을 보고 이곳을 나왔다. 3시간 반 넘는 시간이 지났고 어느새 오후 4시 쯤이었다. 내일 아침에 심양으로 떠나야 했기에 해가 지기 전에 만주국의 구 관청을 볼 수 있는 문화광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위 만주국황거'에서

 장춘 문화광장에서


문화광장 중앙에 도착해서 무척 당황했다. 왜냐하면 1-2시간 후면 해가 완전히 지는데 광장 중앙에서 만주국 시기의 건물들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다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주국 답사를 촉박하게 1박 2일로 잡은 것부터가 오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최소한 3박 4일의 일정을 잡고 천천히 돌아봐야 진면모를 알 수 있을 듯 것 같았다.

 

시간은 촉박하고 '위 만주국황거'에서 이미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배도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화광장에서 만주국 육군군관학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졸업한 곳),  남만주철도주식회사, 팔대부 건물(군사부 사법부 경제부 교통부 흥농부 문교부 외교부 민생부)을 최대한 가까이 가서 보는 정도로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장춘 문화광장에서

 

장춘 문화광장에서
장춘 문화광장에서

답사의 여정이 길어지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위 만주국 황거와 문화광장을 둘러본 후, 해가 지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고,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그리고 팔대부 건물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였고, 배까지 고파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피로를 달래기 위해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심했다.


장춘 문화광장 주변 상점가
장춘 문화광장 주변 상점가

식당을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고 주변이 낯선 상황에서 선택한 곳은 소박한 현지 식당이었다. 중국식 간판이 내걸린 작은 가게였지만, 외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왠지 정겨워 보였다.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따뜻한 공기와 음식 냄새가 지친 몸에 위로를 주었다. 메뉴를 고를 때 현지 음식을 맛보겠다는 생각으로 볶음면과 만두 등을 골고루 주문해서 먹었다. 한 그릇에 원화로 2000-3000원 정도밖에 하지 않아서 메뉴를 1인당 3개씩은 먹은 것 같다.

 

이번 답사는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 탓에 모든 것을 깊이 있게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만주국과 남만주철도에 대한 역사적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시대의 흔적을 따라가는 값진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 지역에 대해 더 많은 자료를 공부하고 다시 한번 깊이 있는 답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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