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만주철도 답사 때 단동을 기점으로 해서 대련을 방문해 여순감옥과 203고지를 방문한 후, 중산광장으로 향했다.
대련에 방문한 이유 중 하나가 일본과 러시아가 지은 근대 건축물을 찾아보는 것이었기에 그런 건물들이 원형으로 들어서 있는 중산광장은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중산광장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쯤있다. 오후 1시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약 2시간 정도 이 일대를 둘러봤다.
중산광장에 가니 안내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QR코드를 찍으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중산광장은 1898년에 건설되었으며, 원래는 러시아명 니콜라이광장으로 불렸다. 니콜라이는 당시 러시아 황제의 이름이다.
청일 전쟁과 삼국 간섭(1895) 이후, 러시아는 청나라로부터 대련과 여순을 조차한 후 이곳에 러시아식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이 러시아를 대신하여 대련의 새주인이 되었다. 일본은 다리니라는 러시아식 도시명을 대련大連으로 바꾸고 중산광장의 러시아식 이름도 오히로바(大広場, 대광장)라고 정했다.
현재의 이름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며 물러간 이후 붙여진 것이다. 광장에 서자 대련빈관이 가장 눈에 띄었다. 舊 야마토 호텔이다. (장춘에서도 야마토호텔을 방문하게 되는데, 다음 포스팅에서 다룰 예정이다.) 일본은 이 시기 지은 거점 도시에 야마토호텔을 하나씩 두고 그곳에서 귀빈들의 숙박을 해결했던 것 같다. 구 야마토호텔은 남만주철도 회사가 운영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과거 기준으로 남만주철도 본사건물(현재 중국 철도국에서 사용), 관동통신국(현재의 대련 우체국), 대련 경찰서 건물(현 씨티은행 대련지점), 조선은행 대련지점(현재의 중국공상은행 대련지점) 등이 중산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대련에서의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오후 1시, 중산광장에서의 답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에 쫓겨 다른 일정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본과 러시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축물을 둘러보며 대련의 역사적 깊이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구 야마토 호텔과 남만주철도 관련 건물들이 인상적이었으며, 이 지역이 일본 제국주의 시절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만주철도와 관련된 답사의 일환으로 대련을 방문했지만, 이곳은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밤이 되자 대련항구로 향해,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도시의 불빛들은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을 더없이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날은 장춘으로 떠나 구 만주국을 답사할 예정이기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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