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겨울 일본 근대문학 답사의 일환으로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을 횡단하고 왔다. 시간순으로 쓰면 좋겠지만 카테고리별로 정리한다.
마쓰야마에서 2박을 하고 다카마쓰에서 하룻밤을 잔 후, 다음날 아침 아주 먼 여행길에 올랐다. 바로 다카마쓰에서 모리오카까지 7시간이 넘는 여정이다. 교통비만 3만엔이 넘는 여정이었지만 JR패쓰가 있어서 부담없이 열차로 이동할 수 있었다.
♣ 다카마쓰에서 모리오카로
다카마쓰에서 모리오카까지 철도로 떠난 그날 아침, 나는 창밖으로 펼쳐진 일본의 다양한 풍경을 보며 긴 여정을 시작했다. 다카마쓰를 떠나면서부터 점차 서서히 북쪽으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고, 겨울철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점점 더 느껴졌다. 약 7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지만, JR 패스를 이용했기에 교통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열차 안에서 처음엔 잠깐 풍경을 감상했지만, 이내 밀린 일들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 동안 답사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다시 확인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글 작업과 메모들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문학 답사 중에 느꼈던 감상들과 아이디어들을 차곡차곡 적어두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열차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집중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몰입해 작업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가끔씩 차창 밖을 내다보면, 다양한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산과 강, 그리고 도시와 농촌이 조화를 이루며 변화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이 넓은 나라를 횡단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일에 몰두하면서도 잠시 잠깐씩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졌고, 덕분에 7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다.
다카마쓰에서 모리오카까지 7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 끝난 후, 드디어 도착한 모리오카는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모리오카는 그동안 문학 답사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로 생각했던 곳이다. 특히 일본의 근대문학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미야자와 겐지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도착하자마자 첫날은 피곤했던 몸을 잠시 쉬게 하고,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문학 탐방을 시작했다.
모리오카역에 도착했을 때,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고,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낭만적인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잠시, 눈이 쌓여서 캐리어를 끌고 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길이 제때 치워지지 않아서 발이 푹푹 빠지고, 캐리어 바퀴가 눈 속에 계속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호텔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눈길을 헤치며 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바퀴에 눈이 엉겨 붙어 캐리어가 무거워지고, 걸을 때마다 미끄러질까 봐 신경 써야 했다. 주변 사람들도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기며 눈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는 손잡이를 꼭 잡고 캐리어를 들어올리다시피 하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온몸이 피곤해졌지만, 그만큼 눈 내리는 모리오카의 첫인상이 강렬하게 남았다.
♣ 모리오카냉면 전문점 뿅뿅샤
호텔에 짐을 풀고 허기를 달래고자 재일동포들이 도호쿠에서 정착하면서 만들어 먹었다는 모리오카 냉면을 먹으러 뿅뿅샤로 향했다.
'뿅뿅샤'에서 이 지역만의 독특한 냉면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의 냉면과 달리, 모리오카냉면은 메밀 대신 전분과 밀가루로 만들어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육수는 맑고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며, 매콤한 양념이 살짝 더해져 감칠맛을 극대화했다. 탱탱한 면발은 씹을수록 독특한 식감이 돋보였고, 차가운 국물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고명으로 올라간 삶은 계란, 오이, 잘 익은 김치도 한국 냉면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인 맛의 조화는 모리오카만의 독특한 매력을 담고 있었다. 특히 육수는 진하면서도 깔끔한 마무리가 인상 깊었고, 지역 특산 요리로서 충분히 그 명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고기를 구워서 냉면 위에 몇 개씩 올려가며 먹었는데 그 맛도 일품이었다.
모리오카 냉면을 먹은 후에는 근처 수제 맥주집에서 맥주를 한 잔 먹고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이날은 다카마쓰에서 모리오카로 이동하는데 모든 기운을 다 써서 휴식이 필요한 날이기도 했다.
♣ 시부타미 다쿠보쿠 기념관
다음날 나는 시부타미에 있는 이시카와 다쿠보쿠 기념관에 방문했다. 다니는 버스가 몇 대 없어서 시간을 잘 맞춰서 다녀야 했다. 시간을 잘 못 맞추면 1-2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내가 갔을 때도 10시 40분 쯤 기념관에 도착해 오후 1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지 않으면 다음 버스는 1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고향인 시부타미에 자리한 기념관에는 다쿠보쿠의 생애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그가 남긴 일기와 단카 원고들을 보면서, 짧은 생애 동안 그가 얼마나 핍진하게 살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글을 썼는지 느낄 수 있었다.
기념관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의 자전적 시들이었다. 그는 인간의 고독과 고통을 담아내는 동시에, 일상 속의 사소한 기쁨을 포착하는 데에도 능했다. 나는 그곳에서 다쿠보쿠가 살았던 시대의 풍경과 그의 문학적 세계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다쿠보쿠에 대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 이와테대학으로
겨울 늦은 밤, 이와테대학에 발을 들였을 때, 캠퍼스는 고요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가로등 불빛이 눈 내린 길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눈이 쌓인 건물들과 나무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캠퍼스 곳곳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발걸음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문득, 이곳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꿈을 키웠을 생각에 사색에 잠겼다. 한적한 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이와테대학의 고즈넉함은 이곳이 가진 깊이와 역사를 은은히 드러내는 듯했다.
♣ 도쿄로 향하며
이와테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여행의 순간들을 되새기며 차창 밖으로 펼쳐진 겨울 풍경을 바라보았다. 모리오카에서의 눈 덮인 거리, 차가운 밤 공기 속에 조용히 서 있던 이와테대학, 그리고 미야자와 겐지와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흔적을 따라 걸었던 시간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와테는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문학적 감동을 안겨주었다.
도쿄로 향하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이와테의 느린 시간에 적응해 있었다. 도쿄의 분주함에 섞인다는 생각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번 여행이 남긴 깊은 인상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머무를 것 같았다. 문학적 여운과 함께, 이와테의 겨울은 내게 특별한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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