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겨울 일본 근대문학 답사의 일환으로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을 횡단하고 왔다. 시간순으로 쓰면 좋겠지만 카테고리별로 정리한다.
아키타는 평소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가나자와를 포기하고 일정에 넣었다. 가나자와에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제한된 일정인지라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모리오카에서 아키타로 향하는 길에도 눈이 계속 내렸다. 도호쿠로 들어온 이후로는 잠깐 멈추기도 했지만 눈과 계속 함께다. 날씨만 생각하면 시코쿠 쪽에 계속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 겨울 도호쿠와 홋카이도에서 설원을 지칠 때까지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아키타역에 내리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나마하게(なまはげ)였다. 나마하게는 아키타 지역의 전통적인 민속 신화 속 존재로, 두려움을 상징하는 얼굴에 큰 칼을 들고 있었다. 마치 나를 감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서 있었는데, 이곳의 전통적인 이야기가 떠오르며 오싹한 기분도 들었다. 나마하게는 매년 새해, 악령을 쫓고 게으른 사람들을 혼내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며 축복을 내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외모와는 달리 사실은 좋은 의도의 존재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 아키타문학자료관으로
아키타는 일본의 농촌 지역으로, 예로부터 노동 운동과 사회 변화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싹트고,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이런 역사적 맥락에 있었다.
자료관에 들어서자,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상징적인 문예지인 <<다네마쿠히토>>(種まく人)와 관련된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다네마쿠히토>>는 1921년에 창간된 잡지로, 일본의 사회주의 문학 운동을 이끌었던 중요한 매체다. 특히,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그들의 고통과 투쟁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이 잡지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자료관에서는 잡지의 원본을 비롯해 관련된 문서, 사진, 그리고 작가들의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키타는 농업이 중심인 지역이었고, 농민들의 어려운 삶과 노동 조건은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곳의 작가들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문학으로 대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그리고 사회 정의를 문학적 주제로 삼았으며, 그 결과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이 지역에서 크게 꽃피었다.
자료관의 전시물들을 통해 당시 농촌 사회가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그 속에서 태어난 저항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다네마쿠히토>>는 이러한 저항의 상징이었으며, 아키타의 문학자들은 이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추구했다.
♣ 인생 우동, 사토 요스케
아키타역 근처에서 만난 사토 요스케 우동집을 방문했다. 메뉴판을 보고 시킨 메뉴는 <比内地鶏ご飯セット <小鉢付き> 1,350円>이다. 우동과 토종닭 밥 세트.
이곳의 우동은 그야말로 인생 우동이었다. 1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전통과 명성을 그대로 우동 한 그릇에 담아내는 곳이다. 나는 간장 베이스의 시원한 국물이 있는 우동을 주문했는데, 첫 젓가락을 든 순간부터 그 맛이 잊히지 않았다. 국물은 깔끔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자랑했고, 우동 면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간장의 짭조름함과 감칠맛이 적절히 어우러져, 먹는 내내 그 맛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간단한 재료로 이런 깊이 있는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이곳의 우동은 가볍게 넘어가는 동시에 든든하게 채워주는 느낌을 줘서, 다시 한 번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키타역 앞 세이부 백화점 지하에 위치한 사토 요스케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전통과 정성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쇼핑을 마치고 방문했는데, 넓은 좌식과 편안한 테이블 좌석 덕분에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식당 내부에는 우동 관련 상품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집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 아키타현립미술관으로
아키타현립미술관을 방문한 날, 후지타 쓰구하루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 순간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미술관은 2012년에 새롭게 지어졌고, 후지타 쓰구하루의 작품을 중심으로 아키타 현민들에게 예술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해주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특히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미술관 건물의 삼각형 디자인은 원래 현립미술관의 삼각형 지붕을 모티브로 하여, 세련된 감각과 전통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관람요금은 310엔으로 저렴한 편이다.
미술관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커피를 마신 것이다. 우동을 먹은 후 식곤증이 밀려와서 미술관을 보려면 카페인을 충전해야 했는데, 커피잔과 맛 모두에서 취향 저격을 제대로 당했다.
이곳에서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후지타 쓰구하루의 시대를 앞서간 독창적인 작품들이었다. 후지타는 일본 출신이면서도 프랑스에서 활동한 화가로, 일본 전통 기법과 서양 회화의 감각을 독특하게 결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특히 '유백색'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화풍은 어떤 회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화의 깊이와 함께 동양적인 감성을 조화롭게 담아낸 그의 그림들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감각을 주었다.
전시된 작품 중에는 전쟁의 아픔과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것도 있었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담은 인물화도 있었다. 그의 그림은 단순히 미적 즐거움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시 사회적, 정치적 배경과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잘 녹아 있어 시대를 앞서간 예술적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닌, 예술을 통해 아키타의 사람들과 문화를 이어주는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후지타의 그림을 보며, 그는 단순한 화가가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읽고 표현한 선구자였음을 다시금 느꼈다.
♣ 아카렌가향토관으로 (아카렌가=붉은 벽돌)
아오모리로 떠나기 전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키타의 아카렌가향토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메이지 45년(1912년)에 건축된 붉은 벽돌 구조의 구 아키타 은행 본점을 활용한 건물로, 외관은 르네상스 양식, 내부는 바로크 스타일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다.
시간이 많지 않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전통 공예품과 판화가 가쓰히라 도쿠시의 기념관, 인간 국보인 단금가 세키야 시로의 기념실이 병설되어 있어 아키타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를 짧게나마 엿볼 수 있었다. 건물 자체가 역사의 숨결을 담고 있어 내부를 거닐며 과거와 마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 아오모리로
아오모리를 떠나며 역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다양한 나마하게 관련 상품을 구경하며 이 지역의 문화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작은 나마하게 인형을 하나 구입해 여행의 추억으로 삼았다. 그 인형을 손에 들고 나니, 이 도시의 전통과 역사가 내 손 안에 담긴 것 같았다.
아키타의 첫 인상은 나마하게만큼이나 강렬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 안에 깃든 따뜻한 환대와 전통이 가득한 도시였다.
아키타에서의 1박 2일,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일정을 뒤로 하고 이제 아오모리로 향한다. 아키타의 차분하고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느꼈던 여유로움과 따스한 환대가 마음을 채웠지만, 이제는 새로운 여정을 앞둔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기차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과 끝없이 펼쳐진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점점 더 북쪽으로 다가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오모리는 나에게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산실이라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 속에서 느꼈던 절망과 고독,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인간적인 희망과 투쟁이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을 생각하며 열차를 타고 아오모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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