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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기억과 장소

삿포로에서 문학탐방-홋카이도문학관,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관

by DoorsNwalls 202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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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겨울 일본 근대문학 답사의 일환으로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을 횡단하고 왔다. 시간순으로 쓰면 좋겠지만 카테고리별로 정리한다.


 
삿포로에 도착해 사흘째 되는 날 문학 관련 답사를 다녔다. 눈덮인 나카지마공원을 지나 홋카이도 도립문학관에서 2시간 정도 전시를 보고, 공원 안에 있는 레너드 번스타인 기념비를 지나서, 삿포로천문대, 호헤이칸을 들렀다가,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관에 들렀다.

삿포로 나카지마공원 근처에서 문학 답사
나카지마공원에 들어가서 홋카이도 도립문학관으로 가는 길
나카지마공원 안의 어린이와 관련된 조형물

홋카이도 도립문학관


홋카이도 도립문학관을 방문하며, 일본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관람료는 500엔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상설 전시실은 1년 내내 공개되며, 특히 "홋카이도의 문학"이라는 테마 아래 아이누 민족 문학을 비롯해 소설, 비평, 시, 단가, 하이쿠, 동요, 아동 문학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홋카이도 도립문학관
홋카이도 도립문학관

문학관은 약 35만 점에 달하는 소장 자료 중에서 엄선한 직필 원고와 초판본, 서한, 단가를 감상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재일 조선인 작가인 이회성이 사할린을 배경으로 쓴 작품과 관련된 전시물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글을 통해 역사적 아픔과 그 속에서도 피어난 문학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고, 한반도와 일본 간의 역사적 교차가 문학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홋카이도 도립문학관
홋카이도 도립문학관

또한 삿포로 출신의 시인 시마키 겐사쿠의 직필 원고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의 시선과 손길이 깃든 원고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그의 생각과 문학 세계로 나를 초대하는 듯했다. 북쪽 땅 홋카이도에서 펼쳐진 문학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고, 또 다른 계절에 이곳을 다시 찾아 문학관 아카이브 코너에 새롭게 추가된 전시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홋카이도 도립문학관

 레너드 번스타인 기념상


삿포로의 나카지마 공원을 걷다가 레너드 번스타인 기념상을 마주했다. 이곳은 번스타인이 일본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을 기리며 세운 상으로, 삿포로가 클래식 음악과 예술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장소였다.

레너드 번스타인 기념상

번스타인은 미국의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도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삿포로에서 열린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을 공동 설립하며 이 도시의 음악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덕분에 삿포로는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레너드 번스타인 기념상

기념상 앞에 서서 잠시 그가 남긴 발자취를 되새겼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나카지마 공원 속에서 그의 존재가 살아 숨 쉬는 듯했고, 삿포로가 예술과 문화로 가득 찬 도시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1958년에 개관한 삿포로시 천문대 방문


나카지마공원을 찾았다가 삿포로시 천문대에도 들렀다. 이곳은 1958년에 개관한 일본의 몇 안 되는 공개 천문대 중 하나로, 맑은 하늘 아래 우주의 신비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천문대에는 구경 20cm의 굴절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도심 한가운데에서 별과 행성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삿포로 천문대

이날은 금요일이어서 야간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관람은 무료였다. 방문객은 많지 않아 여유롭게 망원경을 사용할 수 있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별자리부터 달과 행성들까지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도심의 불빛이 무색할 만큼 선명하게 보이는 별자리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한 감동을 주었고, 망원경 너머의 광활한 우주는 일상의 작은 고민들을 잠시 잊게 했다.

삿포로 천문대

도시 속에서 자연과 우주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곳을 다시 찾아 다른 별자리와 행성을 관찰하고 싶어졌다.

삿포로 천문대

1881년에 호텔로 개장했던 호헤이칸


천문대를 나와 근처에 있는 호헤이칸을 방문했다.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의 역사와 일본의 건축 기술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1881년 메이지 천황이 삿포로와 홋카이도를 시찰하기 위해 머물렀던 이 호텔은 메이지 정부 기관이 세운 유일한 호텔로, 당시 일본이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며 전통과 현대를 조화하려던 시기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1881년에 호텔로 개장했던 호헤이칸

 
호헤이칸은 일본 전통 목조 기술을 활용하여 지어진 서양풍 건축으로, 메이지 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목조 서양식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건물 외관은 흰색과 파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 시대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서양식 궁전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일본 전통 건축 특유의 섬세함이 깃들어 있어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881년에 호텔로 개장했던 호헤이칸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나무의 따뜻한 느낌이 전해지며, 곳곳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와 구조가 눈에 띄었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 서양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고유의 전통과 자부심을 놓지 않으려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단순히 관광을 넘어 그 시기의 역사적 배경과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881년에 호텔로 개장했던 호헤이칸

호헤이칸을 떠나며, 일본이 어떻게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뤄왔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옛 건물을 넘어선 역사의 유산이자 건축물로, 당시 일본의 시대적 변화를 담은 상징적 장소였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와타나베 준이치로 문학관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관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건물 앞에 서 있는 와타나베 준이치의 파란색 등신대였다. 그의 고유한 분위기를 잘 나타낸 듯한 이 조형물이 문학관의 인상적인 첫인상을 만들어 주었다. 입장권은 500엔으로, 홋카이도가 낳은 나오키상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시간치고는 꽤 합리적이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와타나베 준이치로 문학관

문학관은 삿포로의 나카지마 공원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 풍요로운 자연과 어우러진 고요한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이어서 단순히 문학적 감상뿐 아니라 건축적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와타나베 준이치의 친필 원고와 그의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전시 자료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그의 문학 세계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온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고, 작가로서의 와타나베 준이치와 인간적인 면모를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와타나베 준이치로 문학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와타나베 준이치로 문학관

지하에 마련된 콘서트홀도 인상적이었다. 와타나베 준이치가 “무겁지 않은 문학관을 만들고 싶다”라며 밝고 친근한 공간으로 구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문객이 자주 찾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작가의 바람이 그대로 전해졌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와타나베 준이치로 문학관에서 커피 한 잔

도서 전시실에는 와타나베 준이치의 전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즐겨 읽던 책들까지도 비치되어 있어, 그의 독서 취향과 취미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를 다 본 후에는 개방적인 카페 공간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잠시 쉬며 책을 읽었다. 따스한 커피 한 모금과 함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작품과 생각들을 천천히 되새겨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관람객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와타나베 준이치로 문학관

 
스스키노천연언천 도카쿄すすきの天然温泉 湯香郷


삿포로에서의 문학 투어를 마치고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스스키노 천연 온천 도카쿄(すすきの天然温泉 湯香郷)를 찾았다. 보통 요금은 2750엔이지만, 밤 9시 이후에 입장하면 심야 요금으로 할인이 되어 1980엔만 내면 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늦은 시간에 방문했다.

스스키노천연언천 도카쿄すすきの天然温泉 湯香郷 가는 길

온천은 지하 800미터에서 끌어올린 천연 온천수로 가득 차 있었고, 몸에 닿는 느낌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 온천수는 온종일 걸어 다니며 쌓였던 피로를 녹여내고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했다. 특히, 넓고 웅장한 실내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 속에 잠길 수 있었다. 실내탕의 규모는 매우 커서 어느 한 구석에 앉아도 주변의 소음 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했다.

스스키노천연언천 도카쿄すすきの天然温泉 湯香郷
스스키노천연언천 도카쿄すすきの天然温泉 湯香郷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은 하늘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노천탕, 바로 편백나무로 만들어진 노천탕이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삿포로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이 잊혀질 정도로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사방이 고요하고 하늘은 밤빛에 잔잔히 반짝이는 별들로 채워져 있어, 마치 자연 속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온천 속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며, 그날의 긴 여정을 조용히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삿포로에서의 한겨울 문학 기행을 마치고 떠나려니, 도시가 더욱 깊고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와 쌀쌀한 바람, 그리고 어둑해지는 저녁의 차분한 빛까지, 이 겨울의 삿포로는 책 속에 담긴 문학 작품들처럼 서정적이고 고요했다. 눈밭을 걸으며 만난 작가들의 흔적과 이야기는 이곳의 차가운 공기와 어울려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고, 문득 그들이 이 겨울 도시에서 느꼈을 풍경과 감정들이 어떤 것이었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삿포로를 떠나며

 
겨울의 삿포로는 단순히 차가운 도시가 아니라, 그 차가움 속에서도 따뜻한 이야기와 사람들의 흔적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삿포로를 떠나는 길에, 눈 덮인 도시의 풍경이 차창 너머로 점점 멀어지지만,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 내 안에 자리할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돌아와 이 겨울의 고요함과 차가운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문득 이 여운이 차가운 바람처럼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삿포로를 뒤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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