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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벽을 넘어/국내 및 동아시아

삿포로 여행 기록-시계탑, 홋카이도대학, 개척촌

by DoorsNwalls 2024.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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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겨울 일본 근대문학 답사의 일환으로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을 횡단하고 왔다. 시간순으로 쓰면 좋겠지만 카테고리별로 정리한다.


삿포로역 주변에서 


신하코다테에서 삿포로로 향하는 여정은 새하얀 눈 덮인 풍경 속에서 시작됐다. 기차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며 여정을 즐기던 중, 차내 방송에서 일본어와 함께 아이누어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아이누어는 홋카이도와 그 주변 지역에 살던 원주민의 언어로, 현재는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이렇게 대중교통에서까지 언급되는 걸 보니 일본이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누 민족의 권리를 존중하려는 시도가 작은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듯했다.

신하코다테에서 삿포로로
삿포로로 가는 길 / 일본어와 아이누말로 방송이 나온다

삿포로에 도착한 후, 삿포로역 근처에 있는 산리오샵에 들러 딸아이에게 줄 선물을 샀다. 삿포로 산리오샵에는 다양한 캐릭터 상품이 가득해 딸이 좋아할 선물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알록달록 귀여운 물건들이 가득한 매장 속에서 아이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삿포로역 산리오샵

역에서 호텔로 향하는 길은 꽤 고생스러웠다. 눈이 계속해서 내려서 길 위에는 이미 하얀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워서 걷기가 쉽지 않았다. 눈 덮인 거리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찬 공기를 마시는 것도 겨울 삿포로의 매력 중 하나였지만, 예상보다 힘든 여정이었다. 그래도 끝내 호텔에 도착하니 하루가 잘 마무리된 기분이었다. 삿포로의 차가운 겨울 속에서 따뜻한 선물을 준비한 오늘 하루가 더욱 뜻깊게 느껴졌다.

눈 내리는 삿포로역. 호텔에 가는 길이 험난하다.

 삿포로 시계탑에서 


삿포로에서 유명한 관광 명소인 시계탑을 찾았다. 티켓을 구입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시계탑의 역사와 더불어 삿포로 농업학교 졸업생과 교사들의 작품을 전시한 박물관과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삿포로 시계탑
삿포로 시계탑
삿포로 시계탑

1층에는 삿포로 시계탑의 초기 모습과 설치 배경을 담은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시계탑이 걸어온 긴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삿포로 시계탑

이 시계는 1881년에 설치된 것으로, 미국 보스턴의 E. 하워드 워치 & 클락 컴퍼니에서 구매한 추시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계탑의 가장 독특한 점은 오직 중력만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두 개의 무게추가 하단에 매달려 있으며, 그중 50kg 무게추가 시계를 작동시키고, 150kg짜리 무게추는 종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 무게추가 바닥에 닿기 전, 약 4일에 한 번씩 크랭크 손잡이를 돌려 무게추를 다시 올려야 시계가 계속 돌아간다.

삿포로 시계탑

이 건물은 원래 삿포로 농업학교의 강당으로 사용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사 교육시설로 변모했고, 그 후 도서관 역할을 거쳐 현재는 작은 박물관과 갤러리를 갖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층은 주로 각종 발표회장과 행사장으로 쓰이며, 옛 강당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현대적 용도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홋카이도 도청 구 청사

시계탑 관람을 마친 후, 가까운 홋카이도 도청 구 청사를 지나갔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청사를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공사 중이라 내부 관람은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홋카이도 도청 구 청사

 
눈덮인 홋카이도대학에서 까마귀 합창 소리를 들으며 걷다


눈이 소복이 쌓인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로 들어서니, 그곳은 마치 하얀 설원 속에 걸어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 있어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어딘가 따뜻하고 차분한 고요함이 느껴졌다.

눈덮인 홋카이도대학으로 가는 길

 캠퍼스에 발을 디디자마자 어디선가 까마귀들이 무리 지어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눈 덮인 나무숲 사이를 메아리치며 이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어가다 보니 까마귀들의 합창이 설원 속에서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정경을 더해 주었다. 순간 현실을 잊고 잠시 멈춰서 그 소리와 눈 덮인 풍경을 바라보았다.

홋카이도대학에서

눈길을 따라 천천히 캠퍼스를 산책하다 보니, 여러 차례 미끄러질 뻔하기도 했지만 발걸음을 내딜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넓고 아름다운 캠퍼스가 피곤함도 잊게 해주었다. 이 눈 덮인 캠퍼스는 예상보다 훨씬 넓었고, 끝없이 이어진 듯한 설경에 푹 빠져 조금 고생하면서도 걷는 즐거움을 느꼈다.

한참을 걷던 중, 홋카이도 대학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인 클라크 박사의 동상이 보였다. 그 유명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을 남긴 분이다.

홋카이도대학에서

클라크 박사는 미국의 화학, 식물학, 동물학, 농학 교수로 홋카이도의 개척을 위해 초청된 선구자로,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근대적인 교육을 펼치며 홋카이도 대학의 기초를 다졌다. 그가 남긴 말은 이제 홋카이도 대학의 정신이 되었고, 일본 전체에까지 퍼져 나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고 한다. 박사가 걸어간 개척의 길과 그의 신념을 담고 있는 동상을 보니, 설원을 가득 메운 고요함 속에서도 그가 남긴 깊은 발자취와 정신이 캠퍼스 구석구석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홋카이도대학에서

하얀 눈으로 뒤덮인 넓고 고즈넉한 캠퍼스를 걸으며, 겨울의 고요한 평화로움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역사적인 공간을 직접 체험한 기분이었다. 눈길을 따라 이어진 발걸음 끝에서 마주한 클라크 박사의 정신은 이번 홋카이도 대학 여행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주었고,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홋카이도대학에서
홋카이도대학에서

 
 부아이소 (일식 내장 냄비 요리 전문점) 에서 점심 


홋카이도 대학 바로 앞에 위치한 부아이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곳은 일식 내장 냄비 요리 전문점으로, 마치 오래된 별장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외관이 정겨운 느낌을 주어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대가 커졌다.

부아이소에서 먹은 점심
부아이소에서 먹은 점심


부아이소는 모쯔나베 전문점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점심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워서 런치 정식을 선택했다. 1650엔이라는 가격에 제공되는 정식은 가격에 비해 정말 훌륭한 맛이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위에는 다양한 반찬과 함께 메인 요리가 나왔고, 각각의 요리에서 전해지는 신선한 재료의 맛이 감동적이었다. 특히, 국물의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고, 식사를 하면서도 이곳의 정성이 느껴졌다.

부아이소에서 먹은 점심
부아이소에서 먹은 점심
부아이소에서 먹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온 후, 커피까지 제공되니 가성비가 정말 뛰어난 것 같았다. 식사 중간에 커피 향이 코를 간지럽히면서 따뜻한 기분이 들었고, 후식으로 마시는 커피는 점심의 여운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학교 앞 식당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과 분위기 모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나오는 길, 부아이소의 독특한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났다.

식후에 먹은 커피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  


부아이소에서 점심을 먹고 홋카이도 개척촌으로 향했다.

이곳은 1868년부터 1920년대까지, 즉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까지 세워졌던 홋카이도의 역사적 건축물들을 복원한 야외 박물관으로, 과거의 홋카이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입장료는 1000엔으로, 이 가격에 이렇게 많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에서 먹은 간식

개척촌은 시가지군, 농촌군, 산촌군, 어촌군의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각 지역의 특색을 잘 살리고 있다. 각 구역을 돌아다니며 당시의 거리 모습을 재현한 건축물들을 보고, 그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당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도 개최되고 있어, 관람객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의 활자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곳은 일본 근대문학자 아리시마 다케오가 살았던 집이었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1878년에 도쿄에서 대장성 관료로 근무한 후, 구 사츠마에서 농학자가 되기 위해 홋카이도 농학교에 진학했다. 그의 삶과 사상이 홋카이도의 발전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1922년에는 자신의 농장을 소작인과 함께 운영하며, 토지 공유를 통해 사회적인 실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 아리시마 다케오 주택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 아리시마 다케오 주택
홋카이도 개척촌北海道 開拓村 아리시마 다케오 주택

아리시마 다케오의 집을 둘러보며, 그의 사상과 실생활이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가 지향했던 삶의 방식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느꼈다.
전체적으로 홋카이도 개척촌은 과거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공간으로, 아리시마 다케오의 집을 통해 그의 철학과 꿈을 엿볼 수 있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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