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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연구와 번역

태양이 땅밑에서 뜬 날 / 일본에서 근대문학 답사

by DoorsNwalls 2024. 9. 17.

현해탄
새벽 6시 30분, 어슴푸레한 새벽 하늘아래 새하얀 색의 노조미3호를 타고, 하카타(薄多)로 출발했다. 하카타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안에서 김석범의 ‘땅밑의 태양’을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승지(南承之)가 자신을 돼지라고 자학하는 것에 다시 한 번 당혹감을 느꼈다.

4.3항쟁 때 붙잡힌 후 겨우 제주에서 밀항선에 타고 일본으로 도망쳐온 승지에게는 기쁨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승지의 그러한 심경은 꿈과 환상을 통해 작중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승지에게는 그 꿈과 환상이 바로 현실이다. 그러므로 승지에게는 오사카와 고베에서의 생활은 위선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일본은 승지 스스로가 자신의 행복을 용납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것은 제주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승지의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러므로 승지는 유원(有媛)과 함께 할 수 없다.

하카타행 신칸센

 
 나는 이처럼 승지가 철저하게 ‘제주’에 속해있음에 경의를 느낀다. 특히 최근의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과 승지를 비교할 때 그것은 더욱 극명해진다. 한국에서 지금 제주는 ‘죽음의 섬’이 아니며, ‘관광명소’가 되어있다. 신혼부부의 축복에 넘치는 여행지 제주는 승지가 살기 위해 이별을 고한 ‘제주’와 과연 같은 섬인가.

제주의 이러한 변모를 보고 나는 세계평화의 심볼이 된 히로시마를 떠올리게 된다. 청일전쟁 시기로부터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兵站基地)였던 히로시마는 과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히로시마평화공원에는 그러한 기억과는 관계없는 관계없는 피해자의 입장에 선 일본의 역사가 진공상태로 남아있다.
 
 노조미3호가 하카타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11시 37분. JR역내와 버스 안에서 많은 한국인 여행객을 보고,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들이 자유스럽게 규슈(九州)를 여행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그들의 표정에는 빈곤과 공포의 흔적을 찿아볼 수 없다.

1890년에서 2006까지를 구분해서 볼 때, 한반도의 사람들이 일본을 자유롭게 여행한 것은 최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외의 시기에(1950년까지), 일본에 쫓겨온 혹은 강제연행 되어온 사람들은 비참한 상황 하에 있었다. 일본의 탄광과 군수공장은 조선인 게토(ghetto)라고 해도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규슈산업대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나는 현해탄을 줄곧 생각했다.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현해탄은 단순히 고유명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승지는 현해탄이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님을 자신의 인생을 통해 호소하고 있다. 현해탄은 여느 바다와 같지 않은 남다른 감회를(조국을 떠나옴과 동시에 타국에 들어왔다는) 재일조선인에게 불러일으키는 상징이다.

나는 승지가 건너온 생과 사를 가르는 바다를 생각해봤다. 승지는 죽음의 섬, 제주도를 탈출해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자학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승지가 돼지가 된 것은 제주에서는 사실이었지만, 일본에서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승지에게 일본에서의 생활은 현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살아있으면서 죽어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승지가 제주에서 죽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죽음’조차도 허용되지 않았기에 고통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승지는 꿈을 꾼다. 그것이 승지에게 현실임은 말할 것도 없다.
 

김석범 <<땅밑의 태양>>

 
 나는 승지가 행자(幸子)가 아니라, 사랑하는 유원과 함께 하기를 바랐다. 승지는 이방근(李芳根)이 죽은 후 유원과 동경에서 만난다. 그러나 승지는 유원과 만난지 몇 시간 되지 않아 오사카로 돌아온다. 승지는 꿈에서 본 것을 유원에게 말하지 못했다. 두 개의 꿈이 하나가 될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승지는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지는 ‘동경에 나타나는 유원은 믿기 어려운 환상이며, 공포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유원과 승지의 꿈이 나뉘어진 것이, 분단된 한반도의 운명을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현대에 누구도 자신을 ‘돼지’라고 자학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인간이 벌레와 같은 존재로까지 떨어지지만, 그것 또한 승지가 자신을 ‘돼지’라고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승지는 스스로 저 주받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에게는 고문의 상처가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음은 그래서이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이므로.

그가 환상과 꿈을 계속해서 보는 것은 ‘신체’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승지는 프로메테우스보다 비참한 존재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구출되지만, 승지의 고통은 그 누구에게도 구원될 수 없다. 그렇다면 승지의 그러한 비극을 낳게 한 것은 누구인가? 김사량의 ‘토성랑’의 원삼노인(元三老人)과 ‘기자림’의 기초시(箕初試)의 비극의 연장선에 승지의 비극이 위치함은 주목해 봄직하다.
 
 오사카, 이카이노(猪飼野)
 
 오사카로 향했다.  오후 5시쯤에 김시종시인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들은 시인의 이야기에 이끌려 해방 후 제주로 되돌아갔다. 시인의 이야기는 5시간 계속됐지만, 한 많은 거의 80년에 가까운 인생을 5시간 동안 말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을 열고 제주4.3을 말하는 김시종 시인이 얼굴이 점점 승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승지는 나이를 먹었지만, 눈 하나만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김사량의 ‘천마’를 일본의 비평가들이 ‘지나치게 자학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승지를 보고 그들이 다시 그러한 평가를 내릴 지도 모르겠다. 현룡(玄龍)과 승지는 정말 자학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승지와 현룡의 괴로움에는 엄연한 역사적 배경에 있다.

만약에, 승지가 진정한 의미로 ‘돼지’라고 한다면, 또 현룡이 겐노가미류노스케(玄の上龍之介)라고 한다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이 비난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결코 승지를 동정할 수 없다. 또한‘재일조선인’은 일본인에게 동정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재일조선인’ 일본의 근대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숨쉬는 증거이므로.

김시종 시인과 만난 술집

 
시인을 만난 후 나는 김석범소설의 환상성이 환상이 아님을 실감했다. 그러므로, 작중에 나타나있는 환상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더욱 가열찬 현실이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해변의 카프카’에 등장하는 나타카 노인(中田老人)이 기억을 잃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나카타 노인은 기억을 상실했기에 과거와 단절될 수 있었다. 그러나 승지의 경우에는 그것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 점에서 기억을 상실 할 수 있는 나카타 노인은 ‘행복한’ 존재인 셈이다. 이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을 기점(基点)으로 갈려진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다.

나카타노인은 살육과 지배의 기억을 상실한 일본의 전전 세대(戦前世代)를 그리고 승지는 그러한 기억으로부터 결코 잊을 수 없는 한국의 해방 전세대(前世代)를 상징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1945년 이후 일본과 한국의 얄궂은 운명을 볼 때, 승지가 역사의 신을 의심하고, 회의를 품음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3을 체험한 선생님은 그것을 쓰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했던 김석범 선생이 그것을 작품화 한 것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일행이 시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인은 아니 승지는 그 질문에 대해, “사실이 너무나 가혹하면 말이 없어집니다. 말이 끊어집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는 4.3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체험한 자가 그 체험을 객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김석범 선생은 4.3을 계속해서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전쟁문학 중에서 1945년 8월의 패전을 그린 일련의 작품을 볼 때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메자키 하루오(梅崎春生)나 시마오 토시오(島尾敏雄)와 같은 작가는 전장(戰場)에서 체험한 것을 썼다. 그러한 체험이 그들에게 어느 정도 객관화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전후 작가들이 6.25를 어릴 때 체험한 것을 아버지 세대를 중심으로 써나가는 것과는 다른 방식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청년기에 직접 체험한 역사적 사실을 작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작품의 배경에 일본국민을 위로하기 위한 문학으로서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조차 불가능한 문학은 과연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 작가는 과거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쓰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인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시인은 ‘살아있는 것이 죄요, 살아 있는 동안에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라고 한국어로 매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는 승지가 자신을 ‘돼지’라고 정의하는 부분과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승지는 자신이 떠나온 후에도 ‘제주’에 남겨져 고통 받은 사람들 생각해 결코 일본에서 생활을 개척하려 하지 않는다. 승지의 반대측에 인간을 노예화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이 있음은 그래서이다. 승지는 어떤 의미에서 수도자의 자세를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어떠한 탐욕도 없으며 오히려 행복과는 반대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음날 우리는 이카이노(猪飼野)에 갔다. 나는 그곳에서 지금도 계속해서 고통받아가며 시장 주위를 걷고 있는 승지를 발견했다.
 
 하얀 태양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선생 부부의 오랜 노력으로 김사량이 1941년 4월에서부터 12월 8일까지 머물렀던 고메신테(米新亭)에서 그 당시 일곱 살이었던 이시야마 유리(石山由里) 씨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시야마 씨가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시야마 씨는 김사량이 고메신테에 머무르는 동안, 자신과 곧잘 놀아줬다고 말했다.

김사량이 ‘사상범예비구금법’에 의해 구금되던 12월 8일 미명, 이시야마 씨의 조모(祖母), 요시하라(吉原)씨는 헌병을 설득해서 김사량에게 아침밥을 먹여 보냈다고 한다. 이시야마 씨는 60년도 전에 있었던 김사량 체포 당일의 이야기를, 지금도 두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해주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는 이시야마 유리 씨

 
 체포된 김사량은 고메신테에서 가마쿠라경찰서(鎌倉警察署)에 연행될 때, 과연 어떤 태양을 보았을까? 추운 겨울 아침, 자신을 가족처럼 여겨줬던 고메신테에서 끌려나와, 추운 감옥에 투옥된 김사량에게 그날 아침의 태양은 지옥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김사량은 당시 28세였다.
 
 2월 12일, 일행이 동경까지 왔던 길을 거꾸로 거슬러서 하카타로 출발했다. 아침 6시, 나는 여행의 원점이었던 신칸센 개찰구에서 일행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분주한 군중 속으로 발을 옮겼을 때, 무언가 변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승지는… 승지는 내 ‘아버지’세대였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전세대(前世代)의 사람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흘린 피가 있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돼지가 되었다고 한다면 역사는 다시 반복되지 않겠는가. 이제 나는 더 이상 승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승지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태양이 땅밑에서 떠오른 날, 그것을 본 자가 행복해 질 리가 없으므로. 유원이 승지가 한 것과 같이 바로 동경으로 돌아 온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승지는 이미 ‘제주’에서 살해당했으므로.

신칸센

 
 아침 일곱 시, 야마노테선 전차는 검은 색 계통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무리들에 의해 점거된다. 그리고 전차의 밖에는 일장기와 같은 시뻘건 태양이 떠오른다. 그 시뻘건 태양이 내리쬐고 있는 지구의 역사는 지금 일직선으로 달리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속도에 타고 어디든지 갈 기세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구는 지구는 빙글빙글 돌고 있다. 태양계의 모든 행성은 궤도를 따라 돌며 태양의 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 지구에 하얀 태양이 떠올랐다는 것은 생명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는 역사는 그 궤도를 이탈한 것이리라. 나는 일직선으로 달리기 보다는, 궤도에 타고 승지가 그 궤도를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싶다.
 
# 10여년 전 일본어로 썼던 글로 일본 모 잡지에 실렸었다. 번역기를 돌린 후 손 봐서 올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