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대담)유성호(한길사, 2021)
Ⅰ
이 책은 문학평론가 유성호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과의 대화를 풀어낸 것이다. 대담은 임헌영의 출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80여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데, 732쪽에 담긴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순탄한 삶의 궤적을 긴 글에 담았다면 대부분의 독자는 반도 채 읽지 않고 책장을 닫았겠지만, 임헌영의 삶은 5·16쿠테타 이후 두 차례의 투옥(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 1979년 ‘남민전 사건’)이 말해주듯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그의 삶이 좌절의 나날이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대장정이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남민전 사건 직후, 고통의 나날 속에서도 문학과 역사 방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며, 이는 현재의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담집에 등장하는 임헌영의 스승과 ‘벗’들은 문학계만이 아니라 사상계, 정치계, 종교계를 넘나든다. 백철, 김남주, 김상현, 리영희, 박원순, 서승, 신경림, 신동엽, 안수길, 오무라 마스오, 한승헌, 천상병, 하근찬, 함석헌, 함세웅, 이문열, 조정래 등. 이 책이 임헌영의 삶과 활동만이 아니라 그가 영위한 한국지성사의 한 궤적을 담고 있는 이유다. 임헌영은 자신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천학비재지만 저는 국립대학을 세 군데(서대문·광주·대구 교도소)나 다닌 데다 남들이 상아탑에서 연구비 나오는 논문 쓰느라고 바쁠 때 저는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현장을 떠돌며 두 문제연구소(역사문제연구소와 민족문제연구소)에 몸담아 ‘문제 전문가’로 스펙을 쌓았습니다.(8쪽)
임헌영은 스스로를 ‘문제 전문가’로 칭하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라 함은 자생적 근대화에 실패하고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은 한민족이 극복하지 못 하고 껴안고 있는 분단, 독재, 친일 등을 말한다. 이 대담집은 바로 이러한 ‘문제’와 평생 싸워온 임헌영의 삶의 궤적에 다름 아니다. 이 서평에서는 그 중에서도 1974년에 있었던 ‘문인간첩단 사건’과 그 이후의 행적,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민족문제연구소 활동과 ‘민족문학’의 확장과 관련된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Ⅱ
1974년은 이제 갓 서른을 넘은 임헌영이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해이다.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문인 61인 개헌지지성명’에 서명한 문인 5명(임헌영, 이호철, 김우종, 장병희, 정을병)에게 간첩죄를 적용했다. 문인간첩단 사건은 1971년 만들어진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에 이어 조작된 것으로 최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문인간첩단 사건은 그에 연루된 개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안겨줬지만 그 실상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혐의를 찾기 힘든 사건이었다. 임헌영은 그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사건을 회고한다.
그런 고문과 심문을 받으면서도 나는 대체 뭘 가지고 이러나 통박을 굴리기가 바빴어요.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면서 선명하게 초점이 떠올랐습니다. 재일동포 교양 월간지 <한양>(漢陽)지에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았으며, 여행 중 그 잡지의 발행인이나 편집인과 만나 대접을 받은 걸 엄청난 범법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얼핏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45쪽)
<한양>은 민단 계열에서 나온 잡지인데다 잡지에 실린 임헌영의 글은 ‘간첩죄’와는 무관한 한국문학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들의 억울한 간첩죄는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일으켜, 국제앰네스티에서 <한국의 다섯 솔제니친>이라는 책자가 나오는 등 전 세계적인 석방 운동으로 이어졌다. 8차에 걸친 심리 결과 임헌영은 1974년 6월에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그간 지녔던 사회적인 모든 직책과 활동을 깡그리 박탈”(317쪽)당하고 만다. 고문과 구속, 그리고 계속되는 심리는 일생에 한 번 겪어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고통스러운 과정인데, 임헌영은 1979년에 ‘남민전 사건’(1983년 8월 대통령 특사로 석방됨)으로 구속되며 전보다 더한 고초를 겪었다.
남민전 사건은 투옥중인 김남주를 단련시켜 “최대의 혁명시인”(459쪽)으로 만들어줬고,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가 프랑스 체류 중 망명을 하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임헌영 또한 5년 가끼이 옥고를 겪었지만, 고통 속에서도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 투혼의 꽃을 피운 시간이었다. 서승이 “19년 감옥살이 없었다면 난 별 볼 일 없었을 것”(한겨례신문2011.4.24.)이라고 말한 것은 고통의 시간이 지니는 역설을 표현한 것이다.
Ⅲ
남민전 사건 이후 임헌영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문학평론가였던 그가 1980년대 후반부터 역사문제연구소에 투신한 것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자면 다소 의아한 것이지만, 비역사학자들이 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던 것을 보자면 진정한 의미에서 학제간 연구가 당시 이뤄졌음에 놀라게 된다. 이 무렵 임헌영은 평론집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한길사, 1986), <문학과 이데올로기>(한길사, 1988), <변혁운동과 문학>(한길사, 1989)을 펴내는 등 ‘본업’인 문학 비평에도 전력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임헌영의 행적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이었다. 두 번의 투옥과 1980년대 후반 이후 역사문제연구소와 한길사에서 쌓은 경험의 축적이 완숙하게 꽃을 피운 시기일 것이다.
내 생애 중 가장 오래 투신한 곳이 민족문제연구소입니다. 2001년부터니까 얼추 연구소 역사의 3분의 2 정도 되는 세월이지요. 1991년 2월 27일(강화도조약 체결일)에 4명이 11평 사무실에서 개소한 연구소는 이제 상근자 40여 명에 1만 2,000여 후훤회원이 함께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597쪽)
이러한 기반 위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2000년대 이후 <친일인명사전>(2009)발간, 역사 다큐 <백년전쟁>(2012) 제작, 근현대사기념관(2016 개관) 위탁운영,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2018) 등의 굵직한 업적을 세웠다. 이러한 업적에 근대 이후 한반도 역사의 ‘문제 전문가’인 임헌영의 노고와 노력이 깃들어 있음은 물론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는 역사의 진보를 믿지만, 그렇다고 ‘민주 세력’을 덮어놓고 두둔하지도 않는다.
(전략前略) 6월항쟁의 피의 대가도 못 얻은 채 군부독재의 계승자인 노태우를 청와대에 앉히게 한 건 오로지 민주세력의 분파주의가 낳은 죄악의 결과지요. 이걸 반성하지 않았기에 그 뒤에도 우리 역사는 그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중략) 바른 당파성이 없는 지식인들의 자기 학식 자랑 경쟁이 빚은 결과입니다. (525쪽)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만 가지 않음을 리영희와의 대담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한길사, 2005)에서 체득한 인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대담집은 문학과 역사를 중심으로 서사가 이뤄져 있지만, 그것이 자연스레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와 이어짐을 보면, 정치가 얼마나 우리의 삶은 물론이고 문화와 맞닿아 있는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한편 이 시기 임헌영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청산’ 외에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인식의 지평의 넓히는 작업이었다.
임헌영 내가 일찍부터 이 문제에 애착을 가진 이유는 첫째 그들이야말로 분단 극복을 위해 앞장설 수 있는 위치라는 것, 둘째는 세계화 시대에 한반도에 갇힌 갑갑한 민족문학의 지평을 넓히자는 것이었습니다.(661쪽)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관심이 ‘역사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는 답변이다. 임헌영은 ‘해외동포문학’을 좁은 개념의 ‘민족어’에 가두지 말고 현지어로 쓰인 문학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이는 ‘디아스포라 문학’에 관한 오랜 세월의 깊은 혜안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1936년에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토마스 만이 “내 고향은 내가 행하는 저작 속에 있다. (중략) 그것이 독일어며, 독일의 사고형태이자, 내 나라와 우리 민족의 뛰어난 개성에 의해 발전시켜온 문화유산이다. 내가 있는 곳이 독일이다”(662쪽)라고 쓴 구절을 호출하며 “해외동포문학은 현지어”(662쪽)까지를 두루 포함해야 함을 강변한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세계문학의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펴낸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역사비평사, 2019)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대담집에서 아쉬운 점을 한 가지 적으며 짧은 서평을 끝내고자 한다. 이 책은 대담자인 유성호가 ‘후기’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한국 근현대 문학사를 활발히 가로지르고” 있는데, 특히 해방 이후 한국 근현대문학사나 역사 관련된 다양한 작품/서적이 수 백편 이상 나온다. 인물과 관련된 ‘찾아보기’는 충실히 수록돼 있지만, 작품/서적을 정리했다면 관련 연구자나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 대담집은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대담’을 뛰어 넘어 해방 이후 한국 문학과 역사의 다양한 ‘레퍼런스’를 웅숭깊게 품고 있는 화수분이다. 더불어 임헌영이 많은 사람들과 수 십 년에 걸쳐 뜻을 펼치고 큰 업적을 이뤄낸 것은, 카네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 곁에 모아둘 줄 아는 사람”(413쪽)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책 제목처럼 임헌영의 삶은 역사의 광장 속에서 뜨겁게 대중과 호흡하며 함께 걸어간 문학의 길에 다름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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