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
화려한 무대를 꿈꾸며 미래의 무용가를 지망하여 열여섯 최승희가 고향인 조선을 뒤로 하고 떠난 것은 다이쇼(大正) 15(1926)년 꽃이 필 무렵이었습니다.
상행열차 발차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는 경성역 식당 한편의 식탁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당시 유럽 여행에서 돌아와 우리 신 무용계에 일약 군림한 이시이 바쿠(石井獏) 씨와 가련한 소녀 최승희와 그녀의 오빠 최승일 군이었습니다.
"지겹도록 말하는 것 같으나 제 구실을 하는 무용가가 되기까지 어지간한 고생이 아니랍니다. 무엇보다 최 양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으니까……"
바쿠 씨는 다소 맘을 더듬듯이 하며 독특한 위엄 있는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네, 잘 알고 있어요.“
최승희는 커피 스푼을 조용히 놓으면서 똑똑히 대답했습니다. 옆에서 오빠인 승일 군도 말을 거들며,
"이시이 선생님, 그 점은 아무쪼록 안심하시고 마음껏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하튼 승희의 열정은 정말로 목숨을 걸 정도로 뜨겁습니다."
그와 같이 그녀의 일념은 모든 장벽을 돌파해 지금 여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머리가 좋고, 조선에서는 소학교 4학년부터 여학교에 진학하게 돼 있으나, 그녀는 3학년부터 여학교 입학 승인을 받을 정도로 수재였습니다. 그리고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로 내지로 치면 죠시가쿠슈인(女子學習院)이라고 할 수 있는 숙명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집안은 상당한 지주였으나 그녀가 소학교에서 여학교로 진학할 무렵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기에, 양친은 막내 딸인 그녀를 사범학교에 넣어서 장래에 여교사로 독립생활이 가능하게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카나리아의 누이동생'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목소리가 좋고,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때 이시이 바쿠 씨가 문하생을 이끌고 경성에 나타났습니다. 그 예술성이 풍부한 무대를 본 그녀는 훌륭한 선(線)으로 구성된 율동과 반주 음악에 완전히 매료돼버렸습니다.
음악과 무용―그렇지. 무용을 하면 좋아하는 음악 공부도 할 수 있어― 그녀는 그날 밤, 오빠 승일 군에게 불타오르는 희망을 털어놓고 상담했습니다. 니혼대학(日本大學)을 졸업하고 막 돌아온 오빠는 새로운 예술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팔 걷고 도와주마."
하고 오빠는 전부터 알고 있던 <경성일보>의 테라다(寺田) 편집장을 거쳐 바쿠 씨에게 부탁해 보았더니, 바쿠 씨도 그녀의 열의에 움직여서 입문을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제2의 난관은 양친의 허락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조선에서는 무용이라 하면 하천한 것, 기생 등의 춤으로 여겨지고 있어서, 양친은 그녀의 소망을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라 눈을 똥그랗게 떴습니다.
그녀의 오빠가 가세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설득하고, 예술에 대해 설득하다 이시이 바쿠 씨가 일본에서 얼마나 저명한 지위에 있는지 인격이 어떠한지를 상찬하자, 마침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하는 정도까지 허락을 얻어냈습니다.
허락을 받은 그녀는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으로 바로 짐을 꾸려서 귀경하는 바쿠 씨를 따라가게 됐습니다.
슬픈 이별
"어머님은 배웅하러 오시지 않습니까?"
바쿠 씨는 시계를 내밀어 보더니 걱정되는 듯 물어봤습니다. 이제 발차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네 어머니는 오시지 않습니다. 선생님께 잘 부탁드리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이 나셨나요."
"아니요, 어머니는 슬피 우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오시지 않겠노라고……"
오빠인 승일 군이 그 뒤를 받아서,
"무엇보다 선생님, 우리 어머님은 막내딸이 어여쁘고 또 어여뻐서, 어젯밤까지 잠자리에서 끌어안고 잘 정도였으니까요. 오늘은 아침부터 눈물바다로, 도저히 배웅하러 올 기력이 없습니다. 부디 어머니의 쓸쓸한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랬군요. 흐음, 최 군. 그렇다면 최 양은 전심으로 노력해서 하루라도 빨리 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릴 의무가 있겠습니다.“
"네, 선생님. 그럴 생각이에요. 부디 잘 부탁드려요."
그 때, 바삐 발차 준비 벨이 울려서 셋은 식당을 나와서 플랫폼으로 서둘러 가서 바쿠 씨와 승희는 열차에 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허둥지둥 뛰어오는 조선옷을 입은 여자 셋이 선두에 서서 기차 창문에 달라붙었는데, 그것은 배웅하러 오지 았겠노라 말했던 최 양의 어머니가 아니겠습니까.
"승희야, 승희야."
어머니는 숨을 할근거리며 부르고 있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는 미신을 믿는지라 자신이 나온 후에 점이라도 보고 나서 갑자기 출발을 제지하러 온 것이라 승희는 생각했으나, 어머니 뒤에 있는 부인 두 명을 알아보고서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나, 선생님!"
둘은 그녀의 모교 숙명여학교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승희 씨, 우리는 학교를 대표해서 왔습니다. 숙명여학교에서 무희를 배출했다는 것이 퍼지면 학교로서는 불명예입니다. 부디 출발을 멈추기 바랍니다."
"승희야,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서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왔단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어서 내려오렴."
"…………"
"자, 어서!" "승희 씨!"
"…………"
바로 그때 차장의 오른 손을 들어 올려 신호가 청색으로 바뀌고, 기적이 한 번 올리자 열차는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승희야, 안 돼, 안 돼."
"어머니! 용서해 주셔요."
기차 창문으로 뛰어가서 그녀는 울부짖었습니다.
"울어 버리렴, 성에 찰 때까지……“
열여섯 소녀의 떨리는 어깨에 손을 얹고 바쿠 씨는 가만히 눈물을 닦았습니다.
고투
그 후 그녀는 기차에 탈 때마다 창밖에서 "안 돼 안 돼." 하고 손을 흔들고 있는 슬퍼 보이는 어머니 얼굴이 가물거려서 울어버리고는 합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상경한 후부터 달을 보고서는, 꽃을 보고서는 눈물 어린 편지를 써서 보내 왔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집안 형편을 위해 딸내미를 기생으로 팔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된 바에는 훌륭한 사람이 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보기 좋게 되받아쳐주렴." 하고 써 보냈습니다.
열여섯 최승희. 그녀는 필사적으로 춤을 익혀서, 이시이 바쿠 씨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오늘 가르친 것을 내일은 더욱 새롭게 궁리해서 살려내서 왔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안무에는 조선의 민족적 정서가 스며 나와서 사람을 끌어 당기 당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상경한 후 불과 반 년, 이시이 바쿠가 주최하는 제3회 발표회에서 그녀는 벌써 <금붕어(金魚)>라는 솔로 무용을 해서 관중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상경 당시 1미터 45밖에 되지 않았던 신장이 1년 후 1미터 56까지 자랐습니다. 얼마나 격렬히 춤을 익혔는지를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다음 해 봄, 은사인 바쿠 씨는 다시 초청을 받고 조선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일행 중에 최승희의 이름이 커다랗게 내걸린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경성에서 열린 향토 방문 첫 공연은 굉장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녀의 솔로 <세네나데(小夜曲)>는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고향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무대의 소녀는 과거 자신을 멸시하고 조롱했던 사람들에게 무언으로 항의하는 마음이 불타올라서 필사적으로 춤을 피력했습니다.
보라 ー 공연 이튿날부터 커다랗게 무대에 장식된 화환 하나 ー 거기에는 '숙명여학교 교직원 학생 일동'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교장 이정숙 선생을 시작으로 일 년 전에 그녀가 출발하는 것을 제지하려 했던 선생들까지 가세해서, 융숭한 환영연을 열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한발 한발 견실히 향상해가는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3년이라는 시간은 빨리도 흘러가 쇼와(昭和) 4년(1929) 여름이 됐습니다.
그 당시는 우리 무용계에 저속 부박한 레뷰(revue, 무용과 춤 중심의 연극)의 영향이 바닷물처럼 깊이 들어와 있던 시대였습니다. 오랜 세월 순수 예술무용에 틀어박혀서 고민해 왔던 이시이 씨도 무용단 유지 경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지조를 꺾고 때로는 리뷰 출연을 승낙해야만 했습니다. 젊은, 예술열에 불타는 제주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습니다. 여동생 이시이 고나미(石井小浪)의 탈퇴, 연이은 최승희의 귀향. 그것은 당시 무용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이전에 자애로운 어머니, 모교의 은사들의 말을 뿌리치고 눈물을 흘리며 떠났던 최승희는 이제 다시 과거 4년 동안 손을 잡고 감화시켜 자신을 훌륭하게 만들어준 은사에게 활을 겨눠야만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 용서해 주셔요."
마음속으로 용서를 구하며 그녀는 다만 하나, 예술의 사도로서 기꺼이 가시나무 길을 구했던 것이었습니다.
단신으로 경성으로 돌아온 그녀는, 무용 연구를 위해서 러시아로 가려 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작은 연구소를 만들어서 열 명 정도의 제자를 모아서 조선에서 신무용을 개척하는데 열중했습니다. 그것이 열아홉이 된 여름의 일입니다.
승리
쇼와 5년(1930)부터 7년까지 합산해서 3년 동안 그녀는 조선에서 다섯 번의 신작 발표회를 열었는데, 좋은 제자를 양성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하여, 게다가 민중은 아직 예술적 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젊은 그녀는 오빠인 승일 군의 격려를 받으면서 분투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 조선은 그런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싸움에서 완패한 그녀는 무용계에서 물러나려고까지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또 시끄러운 것이 사람에 대한 소문입니다. "그것 봐, 무용이니 예술이니 하고 우쭐대도 글쎄 부잣집 첩이나 될 것이 뻔해."
사실 또한 그녀의 미모와 예술에 눈독을 들여서, 후원자(patron)가 되겠노라, 후원하겠노라 하며 다가오는 남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신변의 위험을 느끼는 동시에 모든 소문에 항의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가난한 청년을 골라서 결혼했습니다.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인 안막 군으로 형의 친우였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그녀는 무용계에서 은퇴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려고 가정 안에 들어앉을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안막 군은 오빠인 승일 군과 함께 그녀의 천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 해서든 다시 한 번 아내를 동경의 무대에 세우고 싶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침 쇼와 7년 가을, 운명의 신도 그녀에게 자애의 힘을 빌려준 것인지 그 문에 등을 돌리고 떠난 지 4년 동안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던 은사 이시이 바쿠 씨가 오랜만에 경성에 왔던 것입니다.
오빠와 남편의 열성적인 추천에 힘이 생긴 그녀는 은사 앞에 손을 뻗어서 갱생을 향한 구원을 갈구했습니다. 그녀의 강한 예술적 열의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은사를 뛰어넘을 사람은 없습니다. 바쿠 씨는 과거에 대한 것을 모두 잊고 온화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상경한 최승희는 조선에서 고투했던 시기에 연구한 향토색이 풍부한 예술풍을 한층 더 연마해서, 정진하고 또 정진해, 마침내 쇼와 9년 은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동경에서의 제1회 단독 발표회를 일본청년관에서 열게 됐습니다.
조선 고대 무용의 암시를 살린 <칼의 노래(劍の舞)> <에헤라 노아라(エヘラ・ノアラ)> 등을 시작으로 다수의 신작을 연마하고 연마한 예술과 균형 잡힌 아름다운 몸과 함께, 대담하게 게다가 정열적인 그 착상에 의해 일류 비평가로부터 절찬을 얻어냈습니다. "현재의 일본 여성이 지닌 최고의 육체와 다재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안무라는 재능에 의해 일본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무희이다"라고 어떤 평론가가 말했으며, 또한 다른 이는 "일본 제1의 서양 무용가"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고투한 지 10년, 그녀의 인종과 노력은 마침내 꽃을 피운 날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무용계의 여왕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겸손히 말합니다.
"이것도 모두 이시이 선생과 저를 처음부터 끝까지 격려해준 오라버니와, 그리고 어머니의 자애로움 덕분입니다."
그녀의 좋은 오빠인 최승일 씨는 현재 조선문단의 평론가로서 크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서로 격려하며, 격려 받으며, 예술에 정진하는 조선이 낳은 아름다운 남매에게 행복이 있기를!
- 1935.3 하나무라 테츠오(花村哲夫) 지음
# 이 글은 잡지에 번역해 게재했던 글을 블로그에 맞춰서 편집한 것이다.
덧. 2023년에 소명출판에서 최승희 자서전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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