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요시 에이키
소설가로서의 원풍경
제 문학은 반경 2km의 세계를 통해 아시아를 그리고 있습니다.
제 문학세계는 제가 태어나 자란 집(오키나와 나하시[那覇市] 우라소에[浦添])으로부터 반경 2km내에 응축돼 있습니다. 저는 우라소에성, 즉 요도레(류큐왕국의 왕릉) 부근에서 전후 직후에 피난민들이 이룬 텐트 집락(集落)에서 태어났습니다. 1947년 7월이었습니다. 그래도 비가 새지 않는 튼튼한 텐트였던 모양인데, 그 안은 마치 목욕탕처럼 더워서 갓난아기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미군에게 오키나와인들의 삶이 짓밟힌 것 같으면서도, 위대한 선조의 보호를 받은 것 같은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이 텐트촌에서 펼쳐진 오키나와 연극이나 민요 대회는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저도 빠짐없이 참석했고 무대 설치를 돕기도 했습니다. 이 텐트 집락에 대해서는 「텐트취락기담(テント集落奇談)」에 썼습니다. 제 작품의 무대가 된 배경을 간단히 정리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오키나와는 1952년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조약)으로 미국의 시정권 하에 놓이며 이때부터 급속하게 기지건설이 시작됩니다. 이때, 일본 본토 건설업체가 대거 오키나와로 넘어왔습니다. 제 집 근처에는 캠프 킨저(Camp Kinser)라고 하는 동양 최대 보급기지가 있습니다(약도 아래 부분). 작은 연필부터 큰 미사일까지 무엇이든 전장으로 보급하는 기지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방 하나를 미군의 허니(honey)에게 또 하나는 군고용원(군작업)에게 빌려줬습니다. 당시에 아파트는 거의 없었습니다. 젊은 미군 병사가 주에 한두 번 허니를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PX에서 종이봉투 가득 오렌지나 프라이드치킨, 파이 등 진귀한 음식을 가져와, 제게도 나눠줬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1966년에 베트남전쟁의 광기가 미군 병사들을 덮쳤습니다. 그 때 전신주에 매달려서 기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미군 병사나, 대낮에 만취해서 길바닥에서 누워 자는 미군 병사들을 자주 봤습니다.
저는 이러한 풍경의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자라 여행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오키나와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작가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서 작가가 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오키나와의 역사가 응축된 공간인 우라소에에서 계속해서 살았기 때문에 작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태어나 자란 오키나와가 전후 놓여 진 상황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반경 2km’의 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와 「긴네무 집」에 대해
약도를 보시면 ‘A사인바’가 보이실 겁니다.
이곳 주변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입니다(물론, 「창문에 검은 벌레가」도 이 주변을 배경으로 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집 근처에서 미군 병사와 오키나와 여성의 러브신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오키나와 여성을 사이에 놓고 오키나와 청년과 미군 병사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도 흔했습니다.
저는 미군 병사 대부분은 본래부터 범죄자나 광폭한 사람이 아닌 보통의 청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군 병사들은 전쟁이 가까워오면 안색이 험악해 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화를 내고 울부짖고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전쟁 시기에 오키나와에서는 민가에서 판자나 봉을 가지고 나와서 미군들이 길바닥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습니다.
백인 병사와 흑인 병사가 패싸움을 하거나 오키나와 청년들과 미군이 싸우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미군 병사 개인의 시점으로 본 베트남 전쟁과 오키나와를 상대화해서 그렸습니다. 전전에서부터 계속 오키나와 문학에 흐르고 있던 ‘피해자 의식’을 전복시켰다고 하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피해자 의식’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는 전후만이 아니라 전전을 대상으로도 했습니다. 바로 「긴네무 집」이 그 작품입니다.
「긴네무 집」은 약도에서 보면 긴네무 숲 부근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우라소에의 지리적 환경과 관련이 깊습니다. 우라소에는 류큐왕국 발양지이며, 류큐왕국을 만든 에이소(英祖)와 마지막 왕 쇼네이(ショウネイ)왕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은 제가 1950년대 초반에 뛰어놀던 장소였습니다.
요도레는 종유동굴이며 오키나와전 격전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참호를 탐험하고, 철모, 약협(藥莢), 불발탄, 인골(人骨) 등을 발견했습니다. 근 학교의 수업 시간에는 ‘유골수집 시간’도 있어서, 학생들은 봉투를 손에 들고 이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요도레 절벽 아래로 긴네무 나무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또한, 시청 서쪽 언덕은 예부터 유령이 출몰한다고 들었습니다. 언덕 곁 오목한 땅에 긴네무에 둘러싸인 이상한 느낌의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이 집에는 유령이 나온다고 믿어서 저도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우라소에에는 미국인, 필리핀인, 대만인, 남양인 등 다양한 인종이 살았습니다. 실제로 조선인이 이 집에서 살았는지 그것은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자란 우라소에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접목시킨 것이 이 소설입니다.
세계 최첨단의 컬처(미국문화)와 소박한 농촌이 뒤섞인 세상이었기에, 외국인(이인)에 대한 상상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 작품 또한 앞서 말씀드린 오키나와인의 ‘피해자 의식’이라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믿는 오키나와인들이 집단적인 ‘망상’(조선인이 우치난추 여자를 강간했다는)을 만들어 ‘조선인’을 자살로 몰아넣습니다. 전전의 오키나와인에 의한 조선인 차별(주로 조선인 군부)이라는 역사를 통해, 전후 오키나와인의 피해의식을 다룬 것입니다.
일본문학적 전통의 지양과 아시아문학을 향한 지향: 두 가지 넘어서기
저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피해자 의식을 다른 식으로 넘어서고 싶습니다. 커다란 힘에 의해서 머리가 눌려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는 피해의식입니다. 오키나와 사람은 피해자다라는 의식은 메이지시대부터 오키나와문학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1609년 사쓰마(薩摩)의 무력 침략과 그 이후 류규왕국(琉球王国)은 사쓰마번의 실질적인 식민지 지배,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무력을 통한 류큐처분(琉球処分), 1945년 오키나와전, 1952년 대일강화조약에 따른 미군의 군사적 지배에 이르면서, 이러한 피해자의식은 더욱더 고착됐습니다.
이러한 단순화는 복잡한 현실을 대변할 수 없으며, 소설은 이러한 복잡한 양상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아니면 악인이 선인이 되고, 선인이 악인이 되는 그러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에서는 오키나와인의 시점이 아니라 시점인물이 백인병사 조지입니다. 여기서는 미군 병사가 단순한 가해자로 나오지 않습니다. 연약하고 내향적인 조지는 이 소설에서 흑인 병사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합니다. 그런 조지가 미국의 불발탄을 줍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모순된 현실을 사는 오키나와 노인을 거의 정신착란 상태에서 죽이게 됩니다. 폭력은 가장 밑바닥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인을 죽이는 조지는 누구인가? 그는 미국의 군사조직에 의해 정신이 파괴된 나이브한 미국 청년입니다. 이러한 조지를 통해 미국의 군사 조직의 위험성의 일단도 드러나게 됩니다.
저는 ‘전통적’인 일본문학이 갖는 협소성을 넘어서고 싶습니다.
저는 일본적이지 않은, 또한 오키나와 적이지도 않은 아시아적인 작품을 항상 염두에 두고 글을 써왔습니다. 본토의 일본문학(야마토[ヤマト]의 문학)은 사소설이라고 하는 작은 세계를 그려냅니다. 그러한 세계는 상자 안에 만든 모형 정원처럼 자신의 심경과 주변 사람들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소설은 그 배경이 ‘반경 2km의 세계’지만 아시아로 그리고 세계로 열려있는 소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가 살고 있는 오키나와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아시아로 열려있는 소설입니다.
제 소설은 오키나와를 특권화 하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오키나와 방언의 사용은 최소한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이 갖는 보편성에 대한 제 믿음 때문입니다. 저는 아시아의 모든 것이 오키나와에 응축돼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류큐왕국(琉球王国)이 아시아와 활발히 교류를 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키나와의 풍습이나 습관에는 아시아의 문화가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작품은 오키나와 문학인 동시에 아시아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여기에 작가로부터 받은 자료를 첨가해 간략하게 정리한 글이다.
■ 마타요시 에이키
전후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상 제114회 수상 작가. 1947년 오끼나와 남부 우라소에에서 태어나 류큐대학 법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우라소에 시청에서 근무하던 중 폐결핵으로 병원에 1년간 입원하게 되면서 소설 습작을 시작했다. 1975년 「바다는 푸르고」라는 작품이 제1회 신오키나와 문학상에 가작으로 뽑히면서 정식 등단한 후 오키나와의 현실을 그린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1976년 「카니발 소싸움 대회」로 제4회 류큐신보 단편소설상을, 1978년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로 제8회 규슈문학상 최우수상을, 1980년 「긴네무 집」으로 제4회 스바루 문학상을, 1996년 「돼지의 보복」으로 제114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주요 출간작으로 『긴네무 집』(1981) 『낙하산 병사의 선물』(1988) 『돼지의 보복』(1996) 『인과응보는 바다에서』(2000)『인골전시관』(2002) 등이 있다. 현재 고향인 우라소에에서 거주하고 있다.
-------------------------------
'도시의 문 안에서 > 연구와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자의 사유로 읽은 김시종 (0) | 2024.09.11 |
---|---|
내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0) | 2024.09.10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일본-시민 주체성의 변화를 중심으로 (0) | 2024.09.09 |
최승희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0) | 2024.09.09 |
오무라 마스오 문학앨범을 읽고 (0) | 202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