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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연구와 번역

철학자의 사유로 읽은 김시종

by DoorsNwalls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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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 도서출판 b, 2019

 
이진경의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은 철학적 접근으로 재일조선인문학을 읽었을 때 어떤 사유가 가능할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기존의 김시종론이 재일조선인 문학 속에서, 혹은 역사 속에서 김시종과 그의 시어를 길어 올렸다고 한다면, 이진경은 보다 넓고 근원적인 ‘어긋남의 존재론’으로 김시종을 읽어낸다. ‘어긋남의 존재론’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철학적 존재론”의 실패와는 상반된, ‘존재’가 어긋난 지점과 틈새, 어둠과 심연과 이어진다(「제6장 얼룩이 되어, 화석이 되어」).

‘존재’가 어긋나 있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이는 합일이나 합치, 조화와는 대극에 서 있다. 이는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불화와 불일치의 고통을 넘어서 조화롭고 합치된 세계를 꿈꾸는 미적 이상에게 어긋남이나 불일치의 간극이란 벗어나고 ‘극복’해야 할 부정의 대상”(326쪽)으로 파악하는 서양의 철학적 존재론과도 어긋나 있다.
 
저자가 정의하는 ‘어긋남의 존재론’의 몇 구절을 들여다보자.
 
어긋남이란 빛이 비추는 세계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거절의 형태로든 배신의 형태로든 추락의 형태로든 침몰의 형태로든 어긋남에 말려들어가 그 어긋남을 살아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존재론은 거절당한 자들의 사유이다. 거절당했으나 떠날 수 없는 자들이, 그 거절과 떠날 수 없음의 간극과 곤혹 속에서, 그 곤혹을 견디며 존재해야 하는 곳에서 떠안게 되는 사유다. (중략) 따라서 벗어날 수 없는 어긋남의 공간이야말로 존재론의 장소다. (325쪽)
 
존재론적 어긋남은 “내가 사건의 거기에 있음에도 거기에 없다고 느끼는 당혹감을 담고 있다. 사건적인 어긋남은 거기로 나를 불러들이지만 존재론적 어긋남은 거기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한다. ---존재론적 어긋남은 내가 있던 거기에서 벗어나 어둠 속으로 추락하게 하는 힘을 불러내”(95쪽)는 근원이다. 이 책에서 반복돼 등장하는 ‘어긋남’과 ‘거절당함’, 그리고 ‘어둠’은 시인의 존재를 설명하는 용어로 등장한다.
 
하지만 시인의 삶과 시는 그렇게 어긋나고, 거절당하고, 어둠 속에 내던져진 ‘존재’를 끌어안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김시종의 현실은 ‘어둠’과 ‘어긋남’ 속에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서려는 태도는 ‘긍정’이며 더 나아가서는 차별에 맞서는 ‘유머’로 넘친다. 바로 이 지점이 김사량과 김시종, 김석범, 양석일 문학의 공통분모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이진경의 분석처럼 김시종의 시가 “어둠 속을 살고 또” 살며 “어둠 속에서 오고 또 오”지만, 삶과 인간에 대한 긍정을 내려놓지 않으며 “고통이나 설움이 아무리 커도 스스로를 약자로서 포지셔닝하지” 않는 것과 이어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김시종의 시적 언어에 적합한 비평의 언어, 철학의 언어가 마침내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김시종론’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언어의 질감을 지니고 있다. 부분 부분을 놓고 보면 이 책 자체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진경은 철학적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김시종의 삶과 문학이 그의 언어 속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에 안 그래도 난해한 김시종의 시를 더욱 난해하게 했다거나, 김시종을 역사의 속박에서 형이상학적으로 끌어올린 것이 아니냐는 등의 비판은 쉽게 논박될 수 있다.
 
김시종의 시를 둘러싼 난해함은 어쩌면 이 시대/사회에 짙게 낀 안개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도래하고 있는 혹은 도래한 김시종의 언어와 사유를 가리는 안개를 걷어낸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어긋남의 존재론’(근원적)을 ‘마이너문학’으로서의 재일조선인문학과의 관련 속에서 더 횡적으로 넓혀서 사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긋남의 존재론’은 김시종만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과도 어긋나 있는 존재/작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했을 때 ‘어긋난 존재’들과 그렇지 않은 존재들과의 충돌, 전쟁과 분단이 존재에 남긴 상흔과 극복의 구체상이 좀 더 명확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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