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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벽을 넘어/미국 및 유럽

나 홀로 카프카뮤지엄, 카프카묘지 투어 / 프라하

by DoorsNwalls 2024. 10. 3.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에 도착해 삼일째 되는 날, 하루 종일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프라하에서 만난 일행들이 있었지만 일만 함께 하고 나 홀로 다니기 시작했다. 답사 등에서 많은 이들을 인솔해서 다녀봤지만 기동력 있게 움직이려면 나 홀로 투어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함께 다니며 즐거운 일도 많지만 꼭 한 두 명씩은 음식과 장소에 관해 불평을 늘어놓기도 해서 가끔은 나 홀로 다니고 싶어진다. 오스트리아, 체코는 나 또한 처음 와보는 곳인지라 인솔할 능력도 안 되고 일행 대부분은 체코에 여러 번 와봤어서 그런지 목적지가 겹치지 않았던 것도 '나 홀로'의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홀가분하게 나 홀로 카프카 투어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카프카뮤지엄'이다. 순서는 카프카뮤지엄 --▶ 카프카 묘지 --▶ 움직이는 카프카 조각상 순이다.
 
 
 카프카뮤지엄으로
 


호텔에서 카프카뮤지엄까지 가는 길이 조금 복잡해서 우버를 불러서 탔다. 하루 안에 여러 곳을 다녀야 했기에 기동력 있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입장료는 300체코코루나다. 한화로 하면 약 1.6만원 정도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자신의 뿌리인 이디시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창작을 하면서 마이너리티문학의 효시와 같은 존재가 됐다. 또한 이방인으로서 경계에 서서 도시와 인간을, 근대의 시간과 인간 소외, 부조리를 응시하는 그의 문학적 자세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당도할 현대문학을 수 십 년 일찍 선취한 것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카프카의 작품을 읽으며 그의 문학세계에 푹빠져서 외국에 갈 때마다 까페에서 이름을 물어보면 본명이 아니라 "이니셜 K"로 이름을 말하고 다닌다. 실제로 내 성의 이니셜은 K이기도 하다. 그냥 K라고 말하면 여자 이름인 KAY로 알아듣기 때문에 이니셜 K로 말한다. 카프카문학의 영향이다.
 

카프카뮤지엄에서

 
카프카뮤지엄의 전시는 "카프카 속 프라하: 존재적 공간"과 "프라하 속 카프카: 상상적 지형"이라는 컨셉트로 이뤄져 있다. 전자는 프라하가 카프카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의 삶에 남긴 흔적과 그가 받은 변화의 힘을 살펴보는 것이다.

카프카는 그의 작품에서 장소를 거의 명시하지 않으며, 예외적인 경우에만 특정 장소를 지목하고 있다. <심판>에 등장하는 익명의 성당이 프라하성의 성 비투스 대성당이고, 요제프 K가 걸었던 길은 카를교라는 해석 등도 있다. 프라하의 지형은 카프카의 작품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어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후자는 카프카의 장소는 초현실적이라는 뜻이다. 프라하는 상상적 지형으로 변형돼 등장한다. 그렇기에 특정 장소는 은유적으로 기능한다. (위 해석은 카프카뮤지엄 전시 설명을 참조해서 재구성했음)

 

카프카 뮤지엄에 정면

 

카프카뮤지엄 정문에도 이니셜 K가 커다랗게 조형돼 있다. 내 성의 알파벳을 고를 때 G가 아닌 K를 고른 것은 카프카문학을 좋아하는 의식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형제의 성은 알파벳으로 G와 K로 분단됐다. 아래는 카프카 문학과 관련된 전시물들이다.

카프카뮤지엄에서

 

카프카뮤지엄에서

 
 
 
 

카프카뮤지엄에서

 
카프카뮤지엄을 다 보고 묘지로 가는 길에 무하 뮤지엄에도 잠시 들렀다. 알퐁스 무하는 이름과 아르누보 양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뮤지엄을 보고 그의 예술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서 언급만 하고 넘어간다.

무하 뮤지엄

 
♣ 카프카무덤-신 유대인 공동묘지


무하뮤지엄 근처에서 트램을 타고 20분 쯤 걸려 카프카의 무덤이 있는 신 유대인 공동묘지에 도착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1890년경에 개장된 이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프라하에는 구 유대인 공동묘지도 있어서 목표를 그쪽으로 설정하고 가면 카프카 묘역에는 갈 수 없다. 예전에 일본에서 무사시대학에 갈 때 무사시노로 갈뻔 했던 경험이 있는데 예전에 누군가는 구 유대인공동묘지로 가서 카프카 묘지를 찾았을 것 같다. 구글맵이 없던 시절에는 더 하지 않았을까. 프랑스에 갔을 때 짐 모리슨이 묻혀 있는 페르라셰즈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구글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못 갔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카프카무덤-신 유대인 공동묘지

 

카프카무덤-신 유대인 공동묘지


설명을 보니 카프카의 무덤을 찾으려면, 표지판이 있는 동쪽으로 메인 도로를 따라가다가 21번 열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된다고 나와 있다. 카프카의 무덤은 그 그역 끝 부분에 있다. 이정표를 보고 따라간다. Dr. 프란츠 카프카의 무덤이 250미터 앞으로 다가왔다.

카프카무덤-신 유대인 공동묘지
카프카무덤-신 유대인 공동묘지

수 많은 무덤을 지나 카프카 무덤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 이제 100미터 앞이다.

카프카무덤-신 유대인 공동묘지

마침내 카프카 무덤에 도착했다. 누군가가 장미 꽃과 개나리 꽃 같은 것을 무덤 앞에 놓아두었다.
카프카의 팬들은 그의 사망 기일인 6월 3일에 이곳으로 순례를 온다고 하는데, 학기중이라 그 순례에 동참하는 것은 어려울듯 하다. 나중에 은퇴 후에는 가능하겠지만 아직 먼 일이다.

카프카무덤-신 유대인 공동묘지
카프카무덤-신 유대인 공동묘지

공동묘지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카프카무덤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프라하를 방문하며 카프카의 <성>과 <심판>을 다시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이곳이 더 각별히 느껴졌다. 
 
1시간 넘게 공동묘지를 돌아보다 전차를 타고 프라하 명물인 움직이는 카프카 두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프라하 지하철 Prague metro

 
 움직이는 카프카 두상은 프라하 콰다리오 쇼핑센터 입구에 설치돼 있다.

 
움직이는 카프카두상은 2014년에 체코 예술가인 다비드 체르니가 만든 것으로 높이 10.6m, 39톤의 강철 조각상이다. 42개의 회전하는 층과 내부에 약 1km의 케이블이 있으며,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한 시간에 15분마다 회전한다. 회전하며 카프카의 얼굴이 되는 모습이 무척 신기해서 30분 정도 넋을 놓고 움직이는 카프카두상을 지켜봤다.


카프카뮤지엄을 보고 무하뮤지엄을 잠시 방문한 후, 트램을 타고 신 유대인 공동묘지에 있는 카프카의 묘로 향했다. 이정표를 따라 그의 무덤을 찾아가니, 팬들이 남긴 꽃들이 놓여 있었다. 프라하에서 카프카의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해 묘지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프라하의 유명한 움직이는 카프카 두상을 보러 갔고, 회전하는 강철 조각상이 카프카의 얼굴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프라하 곳곳에서 만난 카프카의 흔적들은 그의 문학처럼 낯설고도 익숙한 공간들로 다가왔다. 카프카 묘지 앞에서는 그가 남긴 문학의 깊이를 다시금 느꼈고, 움직이는 두상 앞에서 그의 고뇌와 아이러니가 예술적으로 재현된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도시 프라하에서, 카프카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