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방문 사흘때 되는 날 레오폴드뮤지엄을 찾았다. 프라하를 일로 방문하며 빈을 경유지에 넣은 가장 큰 이유는 레오폴드뮤지엄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봐서 사흘째에 레오폴드뮤지엄 방문을 넣었는데 다행히 하늘이 맑다.
전날 트램을 타고 벨베데레를 방문해봐서 레오폴드뮤지엄 가는 길은 더욱 수월했다. 아래 지도의 동그라미로 친 곳이 바로 레오폴드뮤지엄이다. V표시가 벨베데레 궁전. 호텔에서 나와 20분 정도 걸려 꿈에 그리던(?) 레오폴드뮤지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그림 애호가들이 많은데, 나는 두 화가 다 좋아하지만 그림에서 느끼는 강렬한 인상은 클림트보다는 쉴레 쪽에서 더 받았다. 그래서 프라하에서 일행들과 만나기 전에 나 홀로 오스트리아 빈 여행을 기획했는데, 이 선택은 지금 뒤돌아보아도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레오폴드뮤지엄을 처음 본 느낌은 서울에 있는 여타의 뮤지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유물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평범한 네모 사각 건물은 크게 특별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뮤지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레오폴드뮤지엄에서 에곤 쉴레(1890-1918)의 전생애와 그가 남긴 미술품을 원없이 감상하고 나올 수 있었다. 관람객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스트레스 없이 말이다. 예전에 도쿄에서 초기 피카소 데생 전시에 갔다가 밀려 오는 인파에 떠밀려 내려갔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장료가 살짝 아까워지는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암기 위주로 서양 미술과 음악을 배워서 그 후유증으로 20대 시기에는 한동안 베토벤이고 뭉크고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은 시기도 있었다. 그 무렵 유럽 방문 때 찾아갔던 대영박물관, 루브르뮤지엄, 오르세뮤지엄등은 그런 이유로 그냥 스치듯 지나가버렸던 것 같다. 조금 후회되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에곤 쉴레 컬렉션 감상을 시작해 본다. 기념품 샵과 까페가 있는 1층을 우선 기억해두고, 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 하루 종일 있을 예정이기 때문에 1층의 까페도 중요하다. 잠시 쉬어가며 봐야 하기 때문이다.
3층 에곤 쉴레 컬렉션에 들어가기 전에 '풍경의 마법'이라는 기획 전시가 있어서 그것부터 보기 시작했다.
그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20여분 정도 본 후 바로 에곤 쉴레 컬렉션으로 이동했다.
에곤 쉴레 컬렉션은 레오폴드뮤지엄의 아이덴티티와 같아서 그와 관련된 설명도 적확하고 자세하다.
에곤 쉴레는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시대를 선도하는 작품들을 남겨, 빈 모더니즘의 가장 형성적이고 다채로운 인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뛰어났던 그림 실력은 그를 1906년 빈 아카데미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그는 크리스티안 그리펜케를이 이끄는 엄격한 수업을 받았으나, 그 체계적인 방식은 쉴레의 독창적인 생각과 맞지 않았습니다.쉴레의 예술적 관심의 중심에는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것이 있었으며, 이는 수많은 자화상뿐만 아니라 풍경화와 도시 경관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편지에서 예언자나 현자로 자신을 표현하며, 현실과 진리를 강렬하게 느끼는 매개체로 자신을 규정했습니다. 독특한 제스처와 표정을 통해, 쉴레는 육체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긴박함을 전달했고, 자기 성찰을 육체성과 성을 존재론적 질문과 융합하는 과정으로 제시했습니다.
레오폴드 미술관에는 에곤 쉴레가 그린 43점의 회화와 200점이 넘는 수채화, 드로잉, 판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글과 기타 문서들을 소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에곤 쉴레 컬렉션이니, 쉴레의 팬이라면 이곳을 건너 뛸 수 있는 옵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곤 쉴레의 그림이 벽면에 전시돼 있다. 살이 조금 찐 모습도 있어서 약간 낯설게 느껴진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자화상에는 항상 깡마른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3층 전시실을 보다 시차로 인해 졸음이 쏟아져서 커피를 마시려 1층 까페로 이동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옆 빈자리에 여자분이 한 명 앉았다. 자연스레 눈이 마주쳐서 헬로 하고 인사를 했다.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그녀 또한 에곤 쉴레의 팬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에 살지만 외곽에 살아서 레오폴드뮤지엄은 첫 방문이라고 했다. 에곤 쉴레를 오스트리아에서는 어떻게 발음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곤 쉴레"라고 말해줬다. 에곤이 아니라 '이고온'이라는 발음에 조금 낯설음을 느꼈다.
뮤지엄에서 처음 만난 그녀와 5분 정도의 대화를 마치고 각성해서 다시 3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카페인은 역시 위대하다.
전시의 주제는 self-abandonment and self-assertion. 자기 포기/방기와 자기 확립이라는 모순된 내용이다. 원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감과 질감을 음미하며 그림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고 조금 확대해서 사진을 찍었다. 에곤 쉴레의 원본 그림을 한적한 뮤지엄에서 원없이 볼 수 있는 것은 호사로운 일임이 분명하다.
에곤 쉴레는 주로 흰 색으로 사인과 그림을 그린 연도를 남겨두는데, 이 그림은 3번을 반복해 두었다. 무슨 이유일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래 그림들을 보면 검은색 사인도 있고, 파란색 사인도 있고 스타일도 각각 다르다. 그림에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파란색 사인이 이채롭다. 에곤 쉴레의 그림 중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그림은 특히 처절하고 슬픈 감정이 강하게 담겨 있어서 보는 이를 멈춰 세운다. 살아 있지만 시체와도 같은 어머니. 애정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과 고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뮤지엄에서는 1차 세계대전 시기와 관련된 기획전도 열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 있는 불안과 고독 또한 전쟁의 시대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터다. 그는 전쟁에 징집됐었고 전쟁이 끝나기 전에 스페인독감에 감염돼 세상을 떠났다.
위 아래 그림은 전쟁포로와 관련된 전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레오폴트뮤지엄에는 클림트와 관련된 컬렉션도 전시되고 있다. 그림을 실제로 보는 건 질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어서 비전공자라도 그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클림트 스튜디오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진속 스튜디어와 레오폴트뮤지엄에 보존중인 스튜디오인데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
전시실을 4시간 넘게 둘러보고 기념품 샵에서 클림트와 쉴레의 미니 화집과 아이에게 선물할 공룡 원숭이 등의 동물이 튀어나오는 팝업 책을 구매했다. 뮤지엄 밖으로 나오자 일기예보 그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빈 여행 사흘째, 드디어 레오폴드뮤지엄을 방문했다. 빈을 경유한 가장 큰 이유는 에곤 쉴레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는데, 기대했던 만큼 깊은 감동을 받았다. 3층에 전시된 에곤 쉴레 컬렉션은 그가 남긴 자화상과 풍경화를 통해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자기 포기와 자기 확립'이라는 주제를 다룬 전시가 인상 깊었다. 한적한 뮤지엄에서 쉴레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던 경험은 정말 값진 시간이었고, 마치 그의 예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 듯한 느낌이었다.
레오폴드뮤지엄 방문을 끝으로 빈 여행을 마무리 하고 평소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프라하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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