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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기억과 장소

도쿄 묘지 기행-조시가야, 지겐지, 혼묘지 방문 기록

by DoorsNwalls 2024.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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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문인들의 묘지를 찾는 여정은 도시의 숨은 역사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이번 기행에서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도덴을 타고 도착한 조시가야 공원묘지(雑司ヶ谷霊園)였다. 도덴은 레트로하고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하여 가는 길 자체가 즐거웠다.

도덴을 타고 조시가야 공원묘지 가는 길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조시가야 공원묘지雑司ヶ谷霊園


조시가야 공원묘지에는 많은 문학가들이 잠들어 있어, 기일마다 이들을 추모하는 모임이 열리곤 한다. 특히 후타바테 시메이와 나쓰메 소세키의 묘를 찾았다. 묘지가 매우 넓기 때문에 입구에 있는 안내도에서 위치를 잘 확인하고 찾아가야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무덤은 한국에서 온 지인들에게도 몇 번 안내한 적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사진을 찾을 수 없다.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듯 하다.

조시가야 공원묘지雑司ヶ谷霊園
조시가야 공원묘지에서
조시가야 공원묘지에서
조시가야 공원묘지에서

 얼마 전 찍어둔 사진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지 못해, 이번엔 구글에서 찾은 사진으로 대체했다. 또한, 조시가야 공원묘지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 속에서 주인공이 깊은 죄책감으로 고뇌하며 친구의 무덤을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묘지 전체가 녹음이 우거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덕분에 우울한 분위기보다는 평온한 느낌을 준다.

조시가야 공원묘지에서, 후타바테 시메이 묘지 가는 길
조시가야 공원묘지에서. 후타바테의 묘지

조시가야 공원묘지는 1872년에 개설되어, 이후 공설 묘지로 전환되었다. 면적 약 10만㎡에 달하는 이곳은 녹음이 풍부하고 사계절마다 꽃이 피며, 가까운 이케부쿠로의 번잡함과는 대조적인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묘지에는 나쓰메 소세키, 고이즈미 야쿠모, 이즈미 교카, 나가이 카후 등 일본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조시가야 공원묘지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묘지 캡처.

지겐지慈眼寺와 혼묘지本妙寺에서


다음으로 찾은 곳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무덤이 있는 지겐사(慈眼寺)였다. 스가모 근처에 위치한 이 묘지는 일련종 사찰인 지겐사에 속해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묘는 그의 문학적 성향을 떠올리게 하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지겐지에서
지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무덤
지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무덤
지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무덤

특히 그의 묘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오동나무 문양이 장식된 좌석 쿠션이 상단에 그대로 디자인되어 있어 독특하다. 이 오동나무 문양은 원래 천황의 부문(副紋)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하사되었다가 에도 시대를 거쳐 무사와 서민에게도 널리 퍼졌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분묘

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무덤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그의 무덤 맞은편에 있는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분묘다. 생전에 두 사람은 '문학에 있어 미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논쟁을 벌였는데, 이 논쟁은 서로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한 신사적인 대화였다. 타니자키는 아쿠타가와가 사망한 후, 두 사람의 운명적인 관계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두 문인이 저세상에서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흥미롭게도 타니자키의 생일인 7월 24일은 아쿠타가와의 기일과 같아 묘한 인연을 느끼게 한다.

혼묘지 안내판
혼묘지에서

마지막으로 동행한 형과 함께 혼묘지(本妙寺)를 방문했다. 혼묘지에는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 치바 슈사쿠와 일본 최초의 통역가 모리야마 다키치로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혼묘지에서

도쿄의 묘지 기행은 역사와 문학의 흔적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잊혀진 이야기들을 되새기는 여정이었다. 조시가야 공원묘지에서 만난 나쓰메 소세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무덤은 그들이 남긴 문학적 깊이와 사상, 시대의 무게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녹음이 가득한 조시가야는 문인들이 남긴 작품 속 주인공들이 방황하고 고뇌하던 장소를 눈앞에 펼쳐놓은 듯, 소설 속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라 감회가 남달랐다.
 
도쿄의 묘지들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인물과 시간, 사연이 얽힌 장소로, 조용히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각각의 무덤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전하려 했던 메시지와 삶의 깊이를 음미하며 앞으로도 문학과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을 이어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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