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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연구와 번역48

타인의 고통을 살아가는 문학 >는 가난, 곡성, 고통, 울음, 설움,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한 시집이다. “건져올린 몸에는 혀가 없”(「저수지」 69쪽)고 “빈 들에/산 것들의/수의가 덮” ( 「회복기2」 29쪽)이며 화자는 그 고통을 체현하고 말한다. 제목처럼 시집은 고통과 죽음을 회복하는 기록일까? 그런 물음을 품고 시집을 읽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회복되기 힘든 고통과 죽음을 시집에서 확인할 뿐이었다.  이 시집은 확실히 “겪지 않은 것에 대한 시쓰기”이지만 시 한 편 한 편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광의의 당사자성을 시인이 체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극/사건의 장소에 시인이 살고 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를 시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뜻에 더 가깝다. 시는 쓰이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는 김시종이 「시론」(> 2018).. 2024. 8. 26.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위화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재미 코리안 작가인 이민진 원작의 『파친코Pachinko』를 다 읽었을 때도, 애플TV 시즌1(전체 8화)을 다 본 후에도 그랬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위화감의 근원은 기존의 재일조선인 서사와 결이 다른 작법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익숙해져 있던 재일조선인 작가(김달수, 김시종, 김석범, 양석일, 이양지 등)의 자기 서사에는 에스닉 집단 특유의 특수성이 내장돼 있다. 이는 같은 민족인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좀처럼 공감을 표하기 힘든 수난사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 특수성은 『파친코』의 모두(冒頭) 문장인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수렴되지 않는 “우리를 망쳐놓은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는 분단과 차별을 향한 준엄한 이의제기이기도 했다. 그렇.. 2024. 8. 26.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오세종 지음, 손지연 옮김 (소명출판, 2019) Ⅰ 최근 한국 학계에서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2010년대 이후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는 오키나와 관련 서적의 번역과 인적 교류, 그리고 오키나와 관련 학회 및 연구센터가 속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키나와와 관련된 서적의 집필 및 번역은 비단 관광만이 아니라, 인문학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특히 오키나와문학 번역 작업은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한국에서 학문으로서의 ‘오키나와’가 이처럼 뒤늦게 발견되고 탐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많은 지역 중에서 오키나와라는 한 지역이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논의되는 이유는 근대 이후 한반도와 오키나와가 겪은 역사적 경험을 떠나서는 설명될 수 없다. .. 2024. 8. 23.
사상으로서의 조선적 #나카무라 일성 지음, 정기문 옮김  (보고사, 2020) Ⅰ ‘재일조선인(在日朝鮮人)’은 최근 학술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분단과 오랜 냉전의 후유증으로 ‘조선’이 들어간 이 용어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 또한 대두되고 있다. 재일교포, 재일동포 등을 차치하고서도 재일한국인, 재일한국·조선인, 재일코리언, 재일디아스포라는 각각 다른 함의를 지니고 있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용어처럼 회피되지는 않는다. 최근 조선, 한국, 코리언 등을 제외하고 ‘在日’을 일본식으로 읽은 ‘자이니치(ざいにち)’로만 약칭하는 것도 ‘조선인’을 둘러싼 미묘한 회피 감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고유명사가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재일한국·조선인 등으로 나뉘는 것은 남북분단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는 타 지.. 2024. 8. 23.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된다 일본의 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는 1959년에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일본 전체가 된다”(「오키나와에서 부락까지」)고 썼다. 그는 전근대 시기 사쓰마(薩摩, 현재의 가고시마)-오키나와-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관계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일본-오키나와의 관계로 치환해서 바라본다. 지배와 피지배가 겹쳐지는 가운데 큰 세력(지배세력)의 모순이 집결되는 장소로 작은 세력(피지배 세력)을 포착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와 이해가 몇 겹으로 겹쳐진 피식민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국주의 국가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다케우치는 오키나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 전체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다케우치는 오키나와를 확대하면 일본 전체가 된.. 2024. 8. 21.
오구마 히데오, ‘변방’의 시어로 ‘중심’을 해체하다 『리토피아』50/2014년 여름/에 수록했던 글입니다. 전체를 다 올리면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니 일부만 올립니다. 전체를 다 읽고 싶으신 분은 리포피아 측홈피 링크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특집|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시오구마 히데오                                            오구마 히데오(小熊秀雄, 1901~1940). 그는 1931년 프롤레타리아작가 동맹 가입한 후, ‘자유’, ‘반역’, ‘인민 정신’의 활기를 시로 표현했다. 오구마 문학이 만개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프로문학 운동이 탄압을 받고 와해된 1934년 이후다.하지만 그는 이 시기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도쿄에 살면서 열아홉 차례나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장편 .. 2016. 7. 11.
구로다 기오의 시 사자와 기록을 향한 모놀로그 구로다 기오 지음 번역 도어즈앤월즈 아직 죽지 않은 자가 죽음을 향한 해방을 꿈꿀 때 떠오른 온갖 사념과 대극(対極)으로부터 열리는 시각이 있지 죽은 자만큼 죽은 것은 없어 (중략) 처음으로 이렇게 말할 순 있겠지 단절 위에 혹은 그 단절로 인해 희미하게 열리는 시각이 있어 그것이 죽은 자에겐 무상(無償)이라 하여도 만약 나 이외의 내가 있어 시인의 정신과 대립물(対立物)의 죽음에 대한 기록과 닮은 부정역부정(否定逆否定)의 극한까지 빠져 나가는 ‘죽은 자의 방법’을 갖을 수 있다면 그 때 무상한 것은 그 자체로서 소생할 것이라 - 黒田喜夫 「死者と記録へのモノローグ」 2015. 8. 1.
토마스 송 선생님(1929 - 2014)의 명복을 빌며.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드리려 하다가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구글에서 선생님 성함을 넣고 검색을 했더니 오비추어리가 떠있었다.) 토마스 송 선생님의 본명은 宋恩津으로 조선 에스페란토 학회 회원인 宋禹憲의 아드님이다. 선생님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봄 필라델피아 에서였다(하타노 세쓰코, 이정화 선생님 동행). 1시간 가량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후 몇차례 메일 교환을 하며 만주국 시기의 사진을 여러 장 받았고, 守隋一의 서고에서 살았던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토마스 송 선생님은 아버지 宋禹憲과 어머니(의사, 도쿄에서 유학)와 함께 만주국으로 이주해 살면서 1946년 다이렌에서 탈출하기 전까지 에스페란토어, 영어, 일본어를 배웠다. 다만, 조선어는 배우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이유에.. 2015. 8. 1.
황건의 만주국 시기 작품 <제화> 黃健(本名、黃載健)의 「祭火」 일본어역과 해설이 일본의 학술 잡지 (2015)에 실렸다.소설이 길어서 일단 반을 게재하고 나머지는 내년에 실린다. 번역은 쉽지 않았다.황건의 작가상이 포착되지 않는 상황, 그리고 함경남도 방언의 해독이안 되었기 때문이다. 1) "선생님 그러한 가지가지 음성들을 저는 어떻게하면 이즐수 잇는것일지요. 핏득 밤 어두운 거리를 지나다듯는 은은한 선률이며기실 잇는 것이 아니면서도 머-ㄴ들을 어느때가지고 울지나는 청 한 노래ㅅ소리며 호숫가 적은 물결이....."2) "기실 잇는 것이 아니면서도 머-ㄴ들을 어느때가지고 울지나는 청 한 노래ㅅ소리며"3) "아름다웁고 진실할려든 모든 성곽은 아ㅅ찔하여 갓다."등등.  수 십 번 이상을 다시 읽고 해결한 부분들도 많았는데, 그럴 땐 문맥이.. 2015. 8. 1.
재일조선인 여성의 일생을 다룬 다큐 <하루코> 모 공동연구모임에서 지난달 봤던 재일조선인 여성의일생을 다룬 .정병춘(하루코)의 아들은 조총련에서 선전영화를 만들면서 틈을 내 어머니를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1950년대 신주쿠 일대에서 먹고살기 위해 한 제주 출신 조선인 여인과 가족이 겪었던 수난사의 기록이다.그 남편은 도박 중독에 난봉꾼. 양석일의 에 등장하는 김준평보다 심하진 않지만, 부부 사이를 파탄으로 몰고 간다.다큐의 끝는 일가가 손녀의 결혼식에 모여 행복하게 과거를 돌아보는 해피엔딩이다.이 다큐는 아들의 원 영상에 후지티비의 기획이 덧 씌워져있다. 기본적으로 레이어가 두 개인 셈이고, 좀 더 들어가면 레이어는 세 네 까지도 된다.dvd로 구하던지 해서 몇 번 더 보고 싶은 다큐다.사진 출처:http://matome.naver.jp/m/oda.. 2015. 8. 1.
야마노구치 바쿠의 시집 한국어 번역본 오키나와 시인 야마노구치 바쿠: 일본에서 나온 책 표지에 딸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나와있다. 작년부터 야마노구치 바쿠의 시를 번역해왔는데, 번역본과 겹치는 시가 몇 편 있다.방법론적으로 어찌할지는 고민해 봐야 할듯 하다. 이 책에는 전전에 쓴 71편의 야마노구치 바쿠의 시가 번역돼 있다. 오키나와 문학 관련 책이 한 권 더 나왔다. 좋은 일이다. 2015. 8. 1.
오키나와 관련 다큐멘터리 정리 *3.1절 특집다큐멘터리 「오키나와」http://www.imbc.com/broad/tv/culture/spdocu/bodo/bodoinfo/1443221_4808.html 참여 정부 시절 만들어진 다큐로 구성은 아래와 같다."제1부 : 우치난쥬, 일본 속의 타인들" "제2부 : 평화를 꿈꾸는 섬"(1,2부 합쳐서 90분이 조금 안 되며 다시 보기로 볼 수 있다)한국에서 몇 안 되는 오키나와전과 관련된 다큐로 밀도가 꽤 높은 편이다.  이 다큐의 초점은 우치난츄의 아이덴티티, 오키나와 전 당시 주민 희생, 오키나와에서의 조선인 문제, 치바나 쇼이치 씨의 활동 (치비치리가마 등)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2013년에 방영된 전후사 증언프로젝트 오키나와 1,2부는 주민의 증언을 바탕으로 오키나와 전을 재구성하.. 201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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