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처음 방문한 것은 서른이 넘어서다.
어린 시절 통영은 부모님이 마을에서 여행으로 가는 곳이어서 그곳의 냄새만을 맡고 살았다. 데려가달라고 아무리 떼를 써도 마을의 부모님들은 마을의 아이들을 통영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건 우리집 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그랬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수도권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 비해 발전의 속도가 20년은 느린 곳이었던지라, 1980년대에 서울 아이들이 누렸던 것을 나는 거의 경험하지 못 하며 자랐다.
산에 둘러쌓인 작은 마을을 세계라고 믿고 자랐는데 그것이 서울로 대학을 가며 깨진 이후로는, 역마살이 들린 것처럼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던 것 같다.
걸신 들린 것처럼 해외를 누비며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아무 곳에도 데려가지 않았던 결핍을 에너지원으로 하고 있다.
통영의 아름다움을 처음 깨달은 것은 통영 출신의 모 선생님이 나를 ES리조트 정상에 데려간 이후부터다. 리조트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의 풍경은 평생 잊지 못 할 기억으로 뇌리에 자리잡았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도 통영을 싫어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마도 인간을
넘어서는 심미안이나 미학을 지닌 부류일 것이다.
배를 타고 한산도로 향했다.
이순신 장군의 "閑山島明月夜上戍樓(한산도명월야상수루):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오르다"는 한시가 탄생한 곳이다.
다시 통영으로 돌아와 충렬사에도 들렀다.
이순신 장군을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가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했을지를 가끔 생각한다.
그건 안중근 의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비루하고 비겁하여 그들처럼 될 엄두도 내지 못 하는 소시민이기 때문일까.
통영은 이순신 장군만이 아니라, 살아서 가난했고 고난을 겪은 화가 이중섭의 흔적도 품고 있다.
이중섭이 살았던 곳과, 그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에도 방문했다. 윤이상과 관련된 곳에도 들렀던 것 같은데 사진을 찾기가 힘들다.
이래서 기록과 정리는 자주 해야 하는 것 같다.
충무공의 고장인 만큼 근처에 거북선도 있다!
하나 빼먹었는데 통영은 시인 백석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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