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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벽을 넘어/국내 및 동아시아

백두산 천지에 서다

by DoorsNwalls 2024. 10. 9.

 
몇 년 전 중국 단동에서 단체 답사를 하던 중 백두산을 방문한 기억이 생생하다. 단체로 움직이는 답사였기에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백두산의 역사와 자연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백두산 천지는 그동안 교과서에서만 접해왔던 장소였는데, 실제로 그 광경을 볼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백두산 가는 길

함께 간 일행들 중에는 백두산을 여러 번 다녀온 분도 계셨는데, 그분들이 해준 말로는 백두산 천지는 날씨에 따라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고 했다. 심지어 날이 맑더라도 천지 위에 먹구름이 자욱하면 입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백두산에 가는 길은 날씨가 좋을수록 기대감이 커졌고, 우리 모두가 천지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백두산 가는 길
백두산 정상 가는 길, 중국 측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른다
백두산에 오르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중
버스 정류장까지 145미터 남았다

차창 밖으로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이는 곧 천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이어졌다. 매표소에 도착해 티켓을 구입했는데, 가격은 한화로 약 4만 원 정도였다. 버스를 타고 백두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길은 꽤 험난했다.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한 후에는 더 이상 차량이 올라갈 수 없었고, 남은 약 1KM의 거리는 걸어서 가야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버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이 마지막 구간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주차장에서 천지까지는 계단으로 연결된 길이었고, 계단 수가 많아 올라가는 내내 숨이 찼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일행 중 한 분이 더 이상 걷기 힘들다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인력거꾼 같은 복장의 중국인 두 명이 나타나서, 200위안을 내면 천지까지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다고 권유했다. 결국 그분은 돈을 지불하고 인력거를 타고 천지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백두산 정상의 절경

우리는 계속 걸어 천지로 향했지만, 계단을 오를수록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그토록 기대하고 왔는데, 먹구름이 잔뜩 끼기 시작하면 천지를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천지에 도착하자마자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 앞에 드러냈다. 그 순간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백두산 정상의 절경
백두산 정상의 절경
백두산 정상의 절경

 백두산 천지에 서서 그 장엄한 경관을 눈앞에 두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경외심이 밀려왔다. 천지를 본다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라고 하던데, 우리는 운이 좋았다. 마치 삼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말이 현실이 된 듯했다.

백두산 정상.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 여기서 나뉜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을 나타내는 비석
북한 측 비문도 보인다
백두산 천지연

백두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천지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하지만 천지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리면서, 정상에 서 있던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표시하는 그 비석인데 남북 분단으로 북쪽으로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내려가는 길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 백두산에서의 기억은 이미 어렴풋이 아련해지기 시작했다. 천지의 아름다움을 본 감동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국경에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이 뒤엉키면서 쉽게 풀리지 않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세는 여전히 장엄했지만, 마음속에는 묘한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버스는 천천히 산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고,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백두산의 풍경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차가 산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웅장한 모습도 점점 사라졌지만, 정상에서 느꼈던 감정들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 그 경계선을 넘어설 수 없는 현실, 그리고 그 앞에서 느꼈던 무력함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버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과 함께 떠나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묘하게 긴 듯 느껴졌고, 천천히 사라져가는 백두산을 뒤로 하면서 여운이 깊이 남는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