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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까페, 극장, 오락실, 헛간

J리그 백년구상과 지역스포츠

by DoorsNwalls 202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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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다케히코伊東武彦
-1961년 4월, 도쿄 출생, 이 글을 썼을 무렵에는 주간 사커매거진 편집장.
 

 

#일본어 번역을 시작하던 무렵에 했던 작업이라 문장이 다소 매끄럽지 않을듯 하지만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듯 하여 예전에 번역한 그대로 헛간에 넣어둔다. 이제 축구와의 연은 거의 끊어졌지만, 옛 정을 생각하면 한국 축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J리그 백년구상은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축구를 처음으로 월드컵으로 이끈 오카다다케시 감독이 얼굴과는 다르게 [신념가]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않다. 축구계 제일의 환경론자인 오카다씨는, 월드컵 예선이라는 격렬한 싸움터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서독일에서 휴일에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가족은 거리의 클럽(스포츠)으로 나가고,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부모는 다른 운동을 하고 있으며, 조부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클럽의 술집에서 맥주한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지요. 그곳에는 소비의 사상은 없습니다. 그것을 긴 안목으로 본다면 환경보호로 연결되어 갑니다. 지금의 일본은 어떤가? 유원지, 파티 전부 가족끼리 외출을 한다고 해도 휴일을 지내는 것이 소비형입니다. 그러한 사회를 바꾸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감독으로서의 저를 지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카다 감독의 말은 결코 허튼 소리는 아니다. 1955년 오사카에서 출생한 우등생(천왕사고등학교에서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이, 일본대표를 거쳐 은퇴 후, 서독일에서 [코치유학] 경험을 살려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성실하기 그지 없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오카다 감독의 머리에 있었던 계획도는 J리그의 번창 -> 새로운 지역스포츠의 탄생 -> 탈소비형사회로의 이행 -> 지구환경보호의 결실>, 최후의 2가지를 제외하고, J리그의 이상론과 맞닿아있다. [어른이라는 사람이 지나치게 이상적이지 않나]라는 식의 이상주의라는 한계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할지 모르나, 1993년에 발족한 정식명칭 일본프로축구리그가 당초 갖고 있던 분위기를, 오카다감독의 발언은 공유하고 있다.

더구나 오카다의 고투가 희망사항으로 실패한 그 과정에서도, 1세기라는 장대한 계획을 세웠던 J리그와 지역사회의 낙차(落差)가 숨겨져있다.



J리그의 백년계획이 발표되었던 것은 J리그 발족으로부터 3년후인 1996년 2월이었다. 오카다감독의 입버릇에 광고대리점적인 맛이 더해진 [걸작]이다. 당초 발표하려고 했던 카피는 연고제 재선언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어째서 J리그는, 사커(SOCCER)의 맨 앞자를 딴 S리그가 아닌겁니까? 그 이유는 우리들이 J리그를 출범시키면서 세웠던 이념 [연고제 확립(직역시, 홈타운 만들기—역자 주)]에 있습니다. 클럽 팀은, 연고지의 누구나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지역에 사는 아이들 혹은 젊은 이들이 참가가능한 팀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프로축구리그. 그것만이 J리그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풍부한 인간성이 구현되는 팀이 되는 것. 그러한 사회를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그리고 [일본]이라는 필드 전체에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J리그.


이것도 대충하는 말이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너무 장대한 구상이 죠크로 밖에 들리지 않는 냉소의 시대에는심혈을 기울인 이러한 구상이 웃음거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리그를 둘러싼 제문제가 표면화되면 될수록 백 년이라는 장대한 시간이, 거대한 담론화로 가는 것에 이 말의 단점이 있는 것도 같다. 98년 10월 일어난 [요코하마합병사건]조차도, [100년간의 작은 에피소드]로 거대한 시야속에 정리해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실제 100년이라는 말은 장대한 시간의 신화적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매력또한 가지고 있다.

하찮은 일들이 쌓여나가야만 100년이라는 시간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하고, J리그의 지금을 볼 때면, 우리들은 백년구상이라는 네 글자가, 하루 하루가 쌓여가면서 반복되어진다는 사실을, 우선 인식할 필요가 있다.

프로스포츠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항상 승리를 향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는 최선의 자세에 있다. 또한 그것에는 이라는 장대한 시간적 발상이 필요하지 않을 터이기도 하다.

오카다의 일본태표팀이 프랑스에서 굴하여 패전에 이르기까지의 프로세스에는 확실히 보여진 일상적인 견고함, 그리고 지금에야 뚜렷한 스포츠용어가된 주의에 대한 악의없는 신뢰 그 자체가, 100년이라는 시간보다 더 신변적인 단위로서 구체적 목표설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언자가 이미 죽은 자가 되어 100년 후의 책임은 –나쁘게 말하면 양심 – 어디에서 청산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막연한 이미지로 흐릿한 갈 길을 보여줄 뿐이다.

J리그의 백년후를 향한 이념을 확립한 뒷면에는, 탈기업 스포츠화를 향해 가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사정이 있다. 발족한 해에는 사회현상이 되었던 J리그도, 2년째를 피크로 관객감소현상을 맞게 된다. 버블경제의 뒷물을 빨아먹는 시대도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지역연고제도]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 리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했다.

J리그가 처음부터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에 대해 주창해왔던 것은 아니다. 모체인 일본리그의 [프로화]를 계획하는 것으로 일본축구의 경기력을 향상하는 것이, 당초의 주안점이었다. 리그발족이 검토되었던 당초부터 개막까지의 수년간은, 프로야구에 대해 점차 식상해가는 기업 -> 광고대리점 -> 대중의 요구가 새로운 스포츠로 향해지는 프로세스였다고 보면 될 듯 하다.

92년 당시에는 [지역연고제]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고, 기업의 영업권을 의미하는 [프랜차이즈]라는 말이 당당하게 가이드북에도 사용되었다. 현재의 제프이치하라(JR동일본)가 동북지역 전체를 [준프렌차이즈지역]으로 포함시킨 것등이, 이제 와서는 웃기는 일화로 남아있다.

91년 당시의 프로리그 검토위원장이었던 가와부치사부로(川淵三郎) 회장은, 90년 [사커매거진]과의 인터뷰에, 프로리그설립의 목적을 [일본축구 레벨업입니다. 그것 뿐입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스포츠의 발전은, 강화와 보급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말할수 있지만, J리그 발족의 노림수는 [강화]로 일관되어 있었고, 당초의 지역사회에 대한 요소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간부가 [지역과의 결속력]을 강조한다고 해도, 그것은 각지역의 경기장을 이용하기 위한, [선심성 멘트]에 지나지 않았고, J리그는 말하자면, 지역의 손님정도의 감각으로 지역에 배당된 것이다.

그러한 감각과 함께 [프랜차이즈]를 버림과 함께 [지역연고]를 설정해서, 지역스포츠의 리더로서 스스로 자각한 결과로서의 선언이,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커다란 축이 되는 것이, 종합스포츠클럽에의 발전적 성장이었다.

축구가 사회적 중심 화제가 되기 힘든 일본에서는 종합 스포츠 클럽이라는 말은 듣기에도 좋다. 즉, 여러 개의 클럽의 지역 클럽으로서의 의식을 공유하고, 더욱이 가까운 지역의 주민들이나 시민들 사이에서 연대감을 만들어내서, 그것을 축구클럽이라는 정점에서 강화해나간다는 것이다. 그것에 있어서 종합 스포츠클럽은 지역의 살롱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100년 이라는 시간은 그러한 세대간 교류라는 기초를 만들기위한 목표치이다라고 관계자라면 말할 것이다.

이상을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도 있다. 96년 이후, 각 클럽은 [지역스포츠 진흥을 위한 지원활동]을 시작했다. 행정적 후원과 협력을 얻어 풋살, 배구, 농구등의 타경기대회나 강습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이다. 그 가운데서도 본격적인 것이, J리그 챔피언인 가시마앤틀러스가 시행한 미니농구 클리닉이다.

97년 10월부터 반년간에 걸쳐서 지역의 지도자육성을 포함한 농구보급을 겨냥한 클리닉코스를 개시한 것이다. 반년이라는 기간동안 꾸준히 시행된 가시마의 예는 두드러진다.

한편 각 클럽의 운영자들의 장래를 향한 비전은 막연한 것이다. 96년 [사커 매거진]이 각 클럽 경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이트에서 장래의 종합스포츠클럽 구상에 대해서 물었다.

운영자들은 [친회사의 경영방침과의 조정, 행정적 지원, 협력은 불가피하다.](요코하마 마리노스)라는 조건적 구상을 밝히는 한편으로, [일본의 종합스포츠 클럽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서는, 지금 다시 한번 심각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우라와 레즈)라는 냉정한 의견도 표출되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모기업으로부터 보내져 법인의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진심이, 경영안정에 대한 초조감속에서, 리그의 전체에 대한 이념(종합스포츠 클럽이라는 이상-역자 주)에 대한 어떤 종류의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카다의 휘하에서 월드컵 첫 출전을 결정하고, 20세 이하 선수로 구성된 청소년 대표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일본축구의 경기력 향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 첫 월드컵에서는, 8강 진출도 꿈만은 아니라는 말도 들려온다. (결과적으로 베스트 16 진출에서 끝났지만 – 역자 주) J리그 발족 전에 협회장이 말했던 [일본 축구의 레벨업]은 순조로운 것처럼 보이나, 진정한 목표는 보다 먼 곳에 있다고, 은 선언하고 있다.

특히 매스컴에서 선전하는 월드컵 8강 진출에 관련해서는, 별로 신용이 가지 않는다. 기술의 향상과 경험의 축적은 스포츠 발전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팀에 반영되리라고는 보기 힘들다. 스포츠가 진정한 의미로 번성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국제경기력에 연결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말로 얄궂기는 하지만, 내구성있는 사상(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표출가능한 기반과 사상의 융합 정도 – 역자 주)과 100년에 걸친 시간의 축적이지 않겠는가.

지하철 차내의,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버릴 정도의, 강인함이라는 개념과는 정반대에 있는 일본의 젊은 세대의 유약성을 간파한 필립 트루시에는, 강인함을 테마로 일본 유스팀을 전에는 없었던 레벨로 이끌었다. 스파르타식 훈련의 교사라는 미디어의 합창에 의해 마이너스 이미지가 강하게 박힌 트루시에의 정보와 경험에 뒷받침된 흔들리지 않는 의사작용과 훈련 과정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라는 면은, 예전 일본대표 첫 프로감독으로서 적 존재가 된 네덜란드인 한스 오프트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러한 것을 크게 신경 쓰게 된 것에는, 오카다감독이 이끄는 프랑스월드컵 대표가 3전 3패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프로세스(과정)이 한 몫을 했다. 지휘관에게 다소의 혼란이 있다고 하더라도 첫 월드컵을 앞에 두고 팀내에는, 고집과 몰이해 그리고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란 점은 팀 전략에 따라는 집단적 강인함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강함을 아우르면서도 불굴의 집단을 기대하는 것이, 프로 스포츠의 숙명이라는 점은 의심이 여지가 없으나, 철저하게 선발된 일본대표조차, 모티베이션 부족으로 인해 패배의 길로 들어서 버린다는 것 ----. 그러한 일본인이, 쉽게 강철 같은 강인함을 몸에 지니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이라는 장대한 시야보다는, 오히려 북극의 사람들의 숙명인 제설작업, 끊임없이 낙엽을 긁어모으는 작업등과 같은 것이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념이라기 보다는 일상의 축적이라는 의미에 있어서 프로스포츠의 강화와 지역 스포츠에 있어서 환경 만들기가 같은 지평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지역사회의 스포츠 환경의 확립에 요구되는 것도 이념으로부터 멀어진 농사꾼의 감각에 있다. 필드 오브 드림즈(field of dreams)는 아니지만, 논밭을 필드로 설정해서 지역의 이상을 많게 펼칠수록 좋다. J리그가 주창하는 종합스포츠 클럽의 일본적 실태. 그것은 살롱적인 감각을 갖지 못한 일본인에 있어서는, 그러한 피부에 다가오는 집합적인 것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곳에 필요한 것은 역시 지역기업의 제공이다. 혹은 각 클럽의 사람들이 각자의 정원에서 길러낸 잔디를 가져다 심을 수 있는 토지의 공여라는 발상이다. 스포츠 문화의 는 농경을 의미한다는 사실이상으로, 지금 필요한 것은 문화라기보다는, 환경만들기이다. 그것은 지역에 있어서 생활환경의 충실한 설립을 그 자체로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해도 국도를 따라서 들어서 있는 파칭코가 즐비한 지방의 풍경을 앞에 두고 볼 때 종합스포츠 클럽이 파칭코와 병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편의점 앞의 지면위에 쭈구리고 않아서 주말 밤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투기성 높은 오락에서 강인함이라는 감각을 잃어가는 시대에 스포츠가 맡고 있는 임무는 반대급부로 커다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시 모티베이션을 말하기 이전에 하루 하루의 일과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현지에서 전파할 수 있는 스포츠 리더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새싹이나 젊은이 모두 국도를 따라 늘어선 파칭코에 드나들게 될 뿐이다. 그것을 구하는 것은 J리그의 백년구상이 아니라, 단적으로 말하자면 개개인의 5년 정도의 생활 구상일 것이다. 종합 스포츠 클럽이라고 하기보다는 기업이 일상의 수준에서 지원하는 단체적 꿈일 것이다. J리그 팀에 대한 스폰서라기보다는 기업이 물심양면으로 일상을 지원을 해나갈 수 있다면 100년이 걸리지 않아도 꿈은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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