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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까페, 극장, 오락실, 헛간

서기원 축구캐스터 특강 및 인터뷰

by DoorsNwalls 202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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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 축구와 연을 맺던 시절에 했던 인터뷰다.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듯 하여 예전 글을 약간 손 봐 헛간에 넣어둔다. 이제 축구와의 연은 거의 끊어졌지만, 옛 정을 생각하면 한국 축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너무나 평복한 차림으로, 평소 티비에서나 보았던 서기원 캐스터가 강의실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내가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앉아서 강의를 할게요.” 서기원 캐스터는 몸살에 걸린 듯 했다. 목소리는 좁은 강의실 안이라 그런지 깊이와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나이에 비해 너무나 좋은 소리였다. 한 가지 놀란 점은 다른 강사들은 모두 손에 자료를 들고 들어오는데, 서기원 캐스터는 빈손으로 와서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방송하실 때도 자료를 거의 들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미 머릿속에 입력해놓으신게다. 다른 캐스터들과는 확실히 다른 연륜이 느껴진다 - 너무나 편한 자세로 강의를 시작했다.
 
[특강 내용 발췌]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스포츠 마케팅에 대해서도 모르고 또 축구선수 출신도 아니어서 축구에 대한 전술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욕을 얻어먹겠지요. 다만, 내가 여러분들한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축구의 역사와 정신에 관한 이야기에요. 그런건 축구선수나 감독출신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요.

난 여러분들처럼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하고나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반은 접고 들어가지요. 
 
스포츠의 정치학적 폐해
 
과거 독재자에 의해 스포츠가 철저히 이용당한 경우가 많았어요. 아르헨티나 78년 월드컵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아르헨티나가 그당시 호르헤 비델라라는 독재자에 의해 경제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래서 국민들은 축구를 통해서 기쁨을 맛보고 싶어했고, 또 경제적으로 월드컵은 특수여서 아르헨티나에서 월드컵이 열리게 됐죠. 그런데, 프레스 센터에서 폭탄이 터진거에요. 그 사건 들어보셨죠? 정확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 당시 기자들이 월드컵에 대해서는 취재를 안하고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 취재를 하니까, 겁을 줄려고 그랬다는 거에요.

뭐.. 그렇게 해서 월드컵이 시작이 됐는데..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경기시작시간을 임의로 늦추기도 하고.. 예선 마지막 경기는 같은 시간에 열려야 하는데, 자국 경기는 늦게 치뤘다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결국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했어요.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스포츠가 정치에 이용될 경우 스포츠가 얼마나 추잡해질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거에요. 또 월드컵이 아르헨티나 독재정부의 기반을 다져준 결과를 가져온겁니다.
 
스포츠 정신에 대해
 
내가 스포츠에 대해 얘기할 때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허황되다고 웃을 수도 있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는, 스포츠를 통해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거에요.

두 번째는, 축구를 통한 사회 정의의 실현이에요. 축구라는 스포츠에 대해서 잘 들여다보면 왜 스포츠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스포츠의 룰은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또 팀플레이를 해야만 이길 수 있는 구조에요. 또, 상대편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밖으로 걷어차주고 다시 상대팀은 공을 밖으로 내보낸 팀에게 공을 줍니다. 그건 공정한 경쟁을 말하는 거지요. 오죽하면 축구경기할 때 페어플레이기가 국기보다 먼저 들어오겠어요. 그만큼 축구는 공정함을 강조하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구조적으로 이기기위한 학원 엘리트 스포츠를 육성한 결과, 상대를 이기려고만 했지 공정한 경쟁을 할 생각은 안합니다. 우스개소리로, 프로감독은 소형차를 타고 다니고 초등학교 축구감독은 대형차를 타고다닌다고 축구인들끼리는 얘기합니다.
 
제가 아는 예전 선수들중에는 축구선수가 축구룰도 제대로 모르는 선수를 봤어요. 무조건 어릴때부터 체력훈련만 시키는 거에요. 일부 축구감독들은 왜 애들에게 규칙과 기본기를 가르치냐고 제게 반문해옵니다. 그렇게 하면 우승을 할 수 없고, 자신의 목이 달아난 다는 거에요. 그렇게 얘기하는데 제가 할말이 없더군요. 제가 그 사람들 먹여살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선수들이 팔에만 맞으면 핸드링이라고 떼를 쓰는 것도 룰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결과입니다. 그건, 그만큼 스포츠에서조차도 스포츠 정신이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반문해주는 겁니다.
 
한국인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 축구에서 이기는 것만 좋아하지 축구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심지어는 조직위 사람들도 심심할 때 프로야구를 보고 프로축구장에 가본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프로축구가 황폐화되가는 것은 물론 언론의 책임이 크지만 앞서 얘기드린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내년이면 월드컵이 열린다고 합니다. 전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들어도 걱정, 안들어도 걱정인 사람이에요. 16강에 들어가면 기고만장해져서 고개 빳빳이 들고 축구 안할거 아닙니까. 16강에서 탈락하면 또 국민들이 등을 돌릴텐데, 참 딜레마라고 생각을 합니다.
 
본래의 스포츠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요즘 스포츠를 보고 있노라면 스포츠가 심신단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선수들의 몸도 마음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프로화 이후 선수들은 스타시스템에 의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없지요. 스포츠는 스포츠 자체여야 하는데 자꾸 다른 것들이 달라붙습니다. 1970년대 이후 피파는 74년 쥬앙 아벨란제가 취임하면서 급속한 내부 정비에 들어갑니다. 아벨란제가 취임한 이후 피파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과 손을 잡으면서 피파를 자산 1억 달러가 넘는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킵니다.

반변 피파를 사조직하고 뇌물, 개최지 선정 비리, 기업과의 결탁등 적지 않은 폐해를 낳았습니다. 오죽하면 아벨란제와 사마란치를 스포츠 세계의 마피아두목이라고 하겠습니까. 이젠 축구도 거대 스폰서의 눈치를 봐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스포츠가 아마추어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유효한겁니다.
 
[인터뷰]
 
(질문) 방송사에서 프로축구 중계권을 따놓고 거의 중계를 하지 않고, 중계를 한다고 해도 위성에서 해주는 것을 많이 봅니다. 또, 지상파에서 방송을 한다고 해도 결승전이면 경기가 끝난 후 우승 세레머니도 조금은 잡아줘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사의 내부에선 어떤 이유로 프로축구 중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 프로야구의 경우 방송사와 신문이 의도적으로 80년대 이후 키운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서기원 프로야구의 경우에는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의 기득권층이 프로축구보다는 프로야구를 좋아해서 항상 신문 1면은 프로야구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축구가 지상파에서 방송이 되지 않는 이유는 7시는 골든 타임인데, 프로축구가 인기가 없어서 입니다. 스포츠기획팀이 프로축구 방송중계를 편성에 넣어도 위에서 잘라 버리는 겁니다. 그 만큼 인기가 없고 광고가 붙지 않기 때문이지요. A 메치의 경우에 방송이 되는 건 드라마를 뛰어넘을 만큼의 시청율과 광고건이 붙기 때문입니다.
 
(질문)  국내 프로축구팀의 마인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90년대 당시 유치한 로고와 팀명등으로 도시 프랜차이즈를 외면하고 오히려 아동틱한 이미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도시 프렌차이즈와 차별화 전략이 프로축구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서기원 좋게 말해서 마인드지요. 전 국내 프로 10개 구단을 모두 좋게 보지않습니다. 대안은 시민구단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FC 서울 창단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도시 프랜차이즈를 하지 못하는건 프로구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인드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적 문제라고 하는게 맞습니다. 실무진들도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질문)  제가 느끼기에 국내에서 서포터 문화가 시작된 이래로 서포터의 내셔날리즘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상대를 패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축구 본연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한일전의 경우 과거의 앙갚음을 축구를 통해서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데, 그건 축구를 통해 상호 우호를 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족적인 편을 가르는게 아닌지요.
 
서기원 제가 대전 서포터와 수원 서포터간의 충돌이 일어난 경기를 중계를 했었습니다. 남을 존중할 줄 아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내셔날리즘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건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겁니다. 진보적이어야 할 서포터문화가 내셔날리즘으로 간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한일전의 경우 민족감정으로 계속해서 흐른다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가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거겠지요. 다만, 전.. 우리나라 서포터는 유럽에 비해서는 너무 조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붉은 악마의 경우 축구협회 건물에 입주해 있는데 전 그건 잘못됐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서포터가 축구협회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그렇다는 뜻 같네요 --) 다만 조직이 커지면서 코카콜라나 나이키등의 협찬을 받는 건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 지난 해 타계하신 서기원 캐스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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