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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 안에서/연구와 번역

오에 겐자부로 미래를 향해 왕복서간 2002년 3월 12일

by DoorsNwalls 2024. 9. 19.

 

오에겐자부로(大江健三郎)로부터 에드워드.W.사이드에(미래를 향해 왕복서간)

*아사히신문 2002년 3월 12일 석간

 

중국 산동성(山東省) 농촌에서 태어난 작가 모옌(莫言)을 찾아갔습니다. 모옌은 소년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환상을 통해 농민 현실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작가입니다. 지금은 지방관료의 부패를 라틴 아메리카 문학과는 다른 방식의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포착한―정치적인 간섭에 대항하는 농민적인 지혜가 만들어낸 기법이라고조차 느껴지지만―신작을 완성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그를 소개하려고 위성방송의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4일에 걸친 작업을 마치고, 구정을 조용히 맞이하면서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일본인에게 세계의 다양한 장소의 구체적인 '인간'에 관한, 역사에 입각한 인식이 얼마나 빈약한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지금 반-테러리즘이 합창되고 있는 가운데, 일원화 되고 있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는 더더욱……

 

경애하는 사이드 씨, 여행을 하면서도 제가 《전쟁과 프로파간다(戦争とプロパガンダ)》(미스즈서방)과 함께 했던 것을 알아주시겠죠.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번역된 한 부분, "미국인의 사고에는, 남아프리카 해방전쟁과 팔레스티나의 유추(類推),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의 참혹한 운명과 팔레스티나의 유추는 단호하게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유비(類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우리들은 우선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인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라는 부분 말입니다.

 

귀국하여 접한 미디어는 변함없이 "팔레스티나인의 테러와 이스라엘 군사정보"를 단순하게 연결하는 보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과격파 하마스가 새롭게 개발한 로켓발사대를 이스라엘군이 압수한 기사에는 그들이 로켓공격을 해온다면, 전면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샤론수상의 '경고'가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이 인물이 레바논과 예루살렘의 팔레스티나인 살해에 책임을 갖은 장군이며, 지금은 '핵 보유국'의 수상인 것에 생각이 미친다면, 팔레스티나 자폭공격과―당신은 그것에 반대해 왔습니다―이스라엘 보도(報道)를 같은 예로 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보도는, 미국이 영국과 함께, 마치 반-테러리즘의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미임계(未臨界) 핵실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품어왔던 영국의 모든 핵보유국에 앞선 핵폐기에 대한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향해, 클린턴과 블레어가 번갈아 발표한 힘찬 사명감이 담긴 선언에, 당신의 동지이며 저도 경의를 품고 있는 노암 촘스키는 "불량국가(rogue-state)'는 어디를 가리키게 될 것인지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지금이야 부시와 블레어 노선에 같은 우려를 안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일본을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일본경제의 지나치게 느린 재건에 요망(要望)을 표시했지만, 이전부터 호전적이었던 핵전략에, 새롭게 일본의 동의와 협력을 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호전적인 자세로 다음 목표를 지명한, '악의 축'론에도, 유럽 각 국 지도자들이 각기 표명한 함축성 있는 반응과는 달리, 고이즈미(小泉) 수상은 국회에서 그것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악의 축'에 두 이스람 국가가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일본인에게 절실한 것으로, 또 하나의 국가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인은 북한의 선박으로 보이는 것이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총격전을 벌이고, 선박이 침몰한 것을 계기로 경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위기를 노골적으로 표시한 은행파탄 중의 하나가, 북한과 관계가 깊은 것이라는 것에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악의 축'으로 지정하여 배제할 것을 정면에서 선동하는 미디어도 있습니다. 그것에 편승하여 국민정서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정부가 억제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북한의 핵개발을 방향전환 하게 하기 위해서 경수로 제공으로 유도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일본은 거기에 참가한 것뿐입니다.

 

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당신의 말을 인용하자면―"비판적 이해"와, 그것에 뿌리를 둔, 항시 변하지 않는 화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식량원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북한에게 핵보유를 향한 폭주를 하도록 재촉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선택은 없습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저는 당신이 뉴욕타임즈에 감동적인 문장을 쓴,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mboin)의 바그너 일본공연 성공을 축하하는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스라엘 국적의 거장(maestro)과 팔레스티나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압에 항의를 지속해온 사이드) 사이의 강한 신뢰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두 사람의 협동에, 얼마나 희망을 안고 있는가, 그것을 말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인용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들"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대 받아온 정신을 고양하여, 현재의 비참한 상황 앞을 보여주는 비젼이다. 정말로 희구할 수 있는 확고한 태도를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면, 그러한 비젼은 결코 파탄하지 않는다."

 

일본의 오랜 경제불황은―저는 그것이 버블기에 이미 싹을 트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일본인의 또 다른 참모습을 드러내고도 있습니다. 정치가, 관료, 실업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직업에 있는 사람들의 자립했다는 긍지와 도덕성(morality)의 상실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근대화에 직면해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등이 강조하여, 큰 성과를 거뒀던 것입니다만.

 

저는 이것이 교육으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주체가 되는 것은 지방교육행정을 담당하는 기관, 교육위원회에 저항할 수 있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 자신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후기의 작업'은, 그러한 것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모 잡지에 게재했던 내용을 블로그에 맞게 편집한 것임을 밝혀둔다. 다만 최종 게재본이 아니라서 초벌 번역을 약간 손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