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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벽을 넘어/미국 및 유럽

뉴욕 맨하탄 생활 기록 01- 9/11 메모리얼 방문 기록

by DoorsNwalls 2024.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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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9/11 메모리얼을 방문하며 받은 인상은 강렬하고 무거웠다. 이제 9/11 사건이 벌어진 지 20년이 훌쩍 지나면서, 이곳은 단순한 기념공간을 넘어 뉴욕과 세계인들에게 깊은 슬픔과 회복을 상기시키는 장소가 되었다.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World Trade Center/9/11 Memorial 역에 내려 메모리얼까지 걷는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다. 메모리얼에 다가갈수록 주변 분위기는 차분해졌고, 방문객들은 대부분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엄숙한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메모리얼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개의 거대한 분수, ‘리플렉팅 앱센스’로, 이들은 9/11 테러 이전에 자리했던 세계 무역 센터 쌍둥이 빌딩의 자리에 세워졌다. 검은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깊은 수조는 거대한 공허감을 자아내며 희생된 이들의 부재를 물결치듯 떠올리게 한다.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어딘가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희망을 상징하는 듯했다.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국립 9·11 추모관 및 박물관은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테러로 희생된 2,977명과 1993년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6명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장소다. 여기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섬세하게 각인되어 있어 하나하나를 손으로 더듬으며 그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한국인 이름도 보였는데, ‘이명우’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이름 위에 놓인 장미와 국화가 조용히 바람에 흔들리며 희생자들의 흔적을 기렸다.
 
조금 찾아보니 이명우 씨는 1959년 생으로, 9.11 테러 당일평 소와 다름없이 북쪽 타워(1번 빌딩) 86층 사무실에서 업무(  뉴욕주 조세청의 소득세 감사역)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9.11테러로 희생된 한인 21명 중 한 명으로 1992년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뉴저지 주에 정착해서 살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테러 현장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에서

박물관 내부에는 당시 테러 현장의 잔해물과 사진, 영상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충격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되새길 수 있었다. 또한 구조대원들이 사용했던 장비와 남겨진 유품들이 조용히 전시되어 있어, 이 사건이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아픔임을 느끼게 했다. 9/11 당시의 충격과 공포가 사진과 영상으로 재현되어 있어, 비록 20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상처가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곳을 방문할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서로의 손을 잡고 서 있거나, 고개를 숙여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단순히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소일 뿐 아니라, 그날의 충격과 슬픔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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