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쯤 전에 처음으로 뉴욕 맨하탄을 방문했다. 그 이후 이곳에서 2년 가까이 살게 됐는데, 이제야 여유가 새겨서 당시의 사진을 중심으로 여행과 생활을 몇 개의 포스팅으로 정리해 보려 한다. 사진을 많이 찍어둬야 하는 이유는 나중에 기억을 되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다시 깨달았다. 처음에는 전혀 기억에 없다가도 사진을 계속 보다 보면 그때의 느낌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계절도 떠올라서 낙엽이 다 진 그 무렵, 그곳의 냄새도 생생하다.
♣ 뉴욕 시내, 타임즈스퀘어에서 록펠러센터 로어플라자 아이스링크까지
처음 뉴욕 맨해튼에 발을 디딘 순간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타임스퀘어는 뉴욕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로, 그 화려함은 압도적이었다. 타임스퀘어는 수많은 디지털 광고판과 사람들로 가득 찬 대형 광장으로, 낮이든 밤이든 뉴욕의 활기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밤이 되면 더욱더 밝게 빛나는 네온사인과 광고판들이 어우러져 그곳은 말 그대로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서 발걸음을 내딛고 한참을 걸어가면 로어플라자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 아이스링크에 도착할 수 있다.
겨울이 되면 록펠러 센터는 스케이트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이스링크는 유명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겨울철 뉴욕의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어, 현지인들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필수 코스였다. 특히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엔 이곳만한 곳이 없었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캐럴 소리와 함께, 타임스퀘어에서 이어진 여정이 마치 뉴욕의 겨울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한편, 록펠러 센터를 거닐며 그곳의 역사와 건축 양식에도 매료되었다. 록펠러 플라자는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예술적 감각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주변의 화려한 장식들과 조각상들은 뉴욕의 고유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 캐슬 클린턴 국가기념물
맨하탄 여행 중에 많은 곳에 갔지만 캐슬 클린턴(Castle Clinton) 국가기념물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배터리 파크에 위치한 이 유서 깊은 성채는 맨해튼의 시작점과 같은 느낌이었다. 뉴욕의 다채로운 역사와 근대화의 출발점이 담긴 이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낡은 석조 벽과 주변 풍경이 주는 분위기가 신선했다.
캐슬 클린턴은 원래 군사 요새로 건설되어 영국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로 사용되었지만, 이후 이민자들의 입국 시설로, 또 극장으로 변화해왔다. 그만큼 뉴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성채의 두터운 벽과 당시의 건축 양식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19세기의 뉴욕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또한 이곳은 현재 자유의 여신상으로 향하는 페리 터미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상징으로 떠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성채 내부에는 전시된 자료들이 있어, 캐슬 클린턴의 여러 역사적 변천사에 대한 안내를 볼 수 있었다. 그때 당시의 사진과 유물들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뉴욕이 이민자들과 함께 어떻게 변모했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바다 냄새가 살짝 섞인 공기를 맡으며 뉴욕 항구의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이곳에서 느낀 평화로움과 역사의 무게는 참 특별했다. 캐슬 클린턴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뉴욕의 시작과 변화를 보여주는 곳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 컬럼비아대학교
컬럼비아대학에 처음 방문한 날, 캠퍼스에 발을 디디자마자 느껴진 학문의 분위기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맨해튼 북쪽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eights)에 자리 잡은 이곳은 도심 속에서도 한결 차분하고 독립적인 공간으로, 붐비는 도시와는 다른 평온함이 있었다.
캠퍼스 중앙에는 러너드 도서관(Low Library)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앞에 있는 대형 계단은 학생들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공부하는 풍경으로 가득했다. 이 도서관은 본래 학교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던 만큼 컬럼비아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러너드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하나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주어, 학문과 역사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학교 주변에는 다양한 학문 연구 시설과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곳곳에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어 캠퍼스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생각났던 것은 컬럼비아의 상징이기도 한 ‘알마 마터’ 동상이었다. 여유로이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그 눈빛에는 지혜와 권위가 담겨 있어 캠퍼스를 방문한 모든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컬럼비아대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느꼈던 점은, 그곳이 단순한 교육의 공간을 넘어 진정한 학문과 토론의 장이라는 것이다.
컬럼비아대학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다시 한 번 올리려 한다.
♣ 제네럴 그랜트 내셔널 메모리얼
제네럴 그랜트 내셔널 메모리얼(General Grant National Memorial)은 맨해튼에서 가장 독특하고 인상 깊은 장소 중 하나였다. 흔히 '그랜트의 묘(Grant's Tomb)'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미국의 18대 대통령인 율리시스 S. 그랜트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맨해튼 북부 리버사이드 파크에 자리한 이 웅장한 기념물은 미시시피강 동쪽에서 가장 큰 영묘라는 점에서 그랜트의 영향력과 존경을 실감하게 한다.
기념비에 다가갈 때, 웅장하게 솟은 대리석과 그리스 신전처럼 우뚝 선 돔이 눈에 들어왔다. 고요하고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기념물 안으로 들어가면 그랜트와 그의 아내 줄리아 덴트 그랜트가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깔끔하게 유지된 내부는 묘지를 넘어 일종의 성역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방문객들로 하여금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랜트의 업적을 되새기게 했다.
기념비 주변에는 그랜트를 기념하는 다양한 안내판과 정보들이 있어, 그가 남긴 유산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그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북군의 사령관으로서 한 역할과, 대통령 재임 중 남북 통합을 위해 애쓴 점들이 강조되어 있었다. 기념비 주변의 리버사이드 파크는 한적하게 흐르는 허드슨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뉴욕의 북부와 허드슨 강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참 인상적이었다.
제네럴 그랜트 내셔널 메모리얼은 뉴욕 속에서도 이채로운 역사적 명소로, 화려한 도시와 대비되는 묵직한 평화로움을 선사했다. 뉴욕에서의 바쁜 일상 중에 이곳을 방문한 날, 그랜트의 삶과 그가 남긴 흔적을 돌아보며 한층 더 깊은 역사를 경험한 기분이 들었다.
♣ 아폴로, 프린스턴대학을 방문 후 맨하탄에 들러 귀국
뉴욕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기념하기 위해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교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사촌 형이 차를 끌고 직접 데리러 와 줘서 오랜만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뉴저지로 가는 길은 뉴욕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조금은 여유롭고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프린스턴 대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캠퍼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미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묻어나는 건축물들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한적한 캠퍼스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유서 깊은 프린스턴에서 학생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찬 느낌을 받았다.
캠퍼스를 둘러본 후, 사촌 형이 특별히 뉴저지 독도횟집에서 유명한 활어회를 먹자며 우리를 안내해 줬다. 신선한 활어회가 넉넉하게 차려진 테이블을 앞에 두고, 3명이서 회를 나누어 먹으며 근황도 나누고 추억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팁까지 포함해 400달러가 넘는 금액이 나온 걸 보고 잠시 놀랐지만, 뉴욕과 프린스턴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한 자리라 더욱 뜻깊었다.
프린스턴 대학교를 방문한 후,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특별한 경험을 위해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 들렀다. 이 극장은 뉴욕의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로, 특히 흑인 아메리칸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253번지 서 125번가에 자리한 이 극장은, TV 프로그램 '쇼타임 앳 더 아폴로'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1,500석 규모의 네오클래식 양식 극장으로 뉴욕시 지정 랜드마크이자 국가 역사 유적지로 등재된 곳이다. 처음에는 백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버레스크 공연장으로 시작했으나, 1934년부터는 흑인 공연자들이 무대에 서며 큰 변화를 겪었다. 현재 아폴로 극장 재단이 관리하며, 다양한 공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오는 길, 뉴욕에서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프린스턴과 뉴욕에서의 이 추억들이 긴 여정의 마지막을 풍성하게 채워주었고, 그 모든 순간들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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