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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벽을 넘어/국내 및 동아시아

일본 오사카와 나라 여행기-오사카성, 호류지, 도다이지 etc

by DoorsNwalls 202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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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사카성은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존재이다. 이 성의 건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려는 목표로 시작되었다. 히데요시는 1583년에 오사카성을 축성하기 시작했고, 성은 그의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오사카성에서
오사카성에서

그가 사망한 후, 일본의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갔다. 도쿠가와는 도요토미 가문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도요토미 가문을 완전히 몰아내게 된다. 

오사카성에서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도쿠가와의 권력 상승에 큰 장애물이 되었다. 히데요리가 자결하게 된 사건은 일본 역사에서 큰 비극 중 하나로, 1615년 오사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군대에 의해 패배한 후 히데요리와 그의 가족은 처형당했다. 

오사카성에서

당시 히데요리가 자결한 장소에는 비석이 세워져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리고 있다.

오사카성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시대 말기에 등장한 중요한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가로,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다. 히데요시는 1537년 출생으로, 원래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도요토미 가문의 초석을 쌓았다. 오다 노부나가의 휘하에서 출세하고, 노부나가의 죽음 후 일본을 통일했다. 1583년 오사카성을 중심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이후 서일본을 지배하며 전국적인 지배를 확립했다.

오사카성에서

히데요시는 조선과의 관계에서 악명 높은 인물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여 명나라와의 교역을 차단하고, 중국 대륙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그러나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의 저항에 의해 일본군은 결국 철수했다. 히데요시의 죽음 후 일본은 다시 혼란을 겪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으며, 도요토미 가문은 소멸했다. 히데요시의 시대는 일본 역사에서 통일을 이끈 중요한 시기로 평가된다.

오사카성에서


나라 호류지(法隆寺)

나라에 위치한 호류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그 역사와 문화적 가치는 매우 높다. 호류지는 607년에 세운 사원으로, 백제의 승려 자장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 호류지(法隆寺)
나라 호류지(法隆寺)

이 사원에는 오중탑(五重塔)과 백제관음당(百済観音堂)이 있으며, 특히 오중탑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으로, 그 고전적인 건축미와 역사적 가치로 유명하다. 

나라 호류지(法隆寺)
나라 호류지(法隆寺)
나라 호류지(法隆寺)

백제관음당은 백제에서 가져온 불상으로, 일본 불교의 초기 전파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호류지는 일본 불교의 시작과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찰로, 일본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나라 호류지(法隆寺)
나라 호류지(法隆寺)에서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도다이지는 일본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찰이다. 도다이지는 원래 728년에 쇼무 천황의 황태자 모토이신노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긴쇼산지에서 시작되었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이후 이 사찰은 741년에 국분사로 승격되었고, 743년부터 노사나 대불(大仏) 조성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불은 749년에 완성되었으며, 752년에는 그 대불의 개안법회가 열리며 일본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후 도다이지는 여러 차례의 화재와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1180년대 후반부터 복원 작업이 시작되어 1195년에 대불전이 재건되었다. 에도 시대에 다시 복원이 이루어졌고, 1692년과 1709년에 대불 개안공양회와 대불전 개원법회가 거행되었다. 이처럼 도다이지는 일본 불교의 중심 사찰 중 하나로, 매년 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슴은 일본의 문화와 자연을 상징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도다이지 근처에 위치한 나라 공원(奈良公園)은 이 사슴들의 서식지로, 이 공원에서 자주 사슴을 볼 수 있다. 이 사슴들은 특별히 신의 사슴으로 간주되며, 신토의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다. 전설에 따르면, 신토의 신인 타케미카즈치노카미가 흰 사슴을 타고 나라에 도달했다고 전해지며, 이로 인해 사슴은 신의 메신저로 신성시되었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도다이지 주변에서 사슴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많은 관광객들이 사슴과의 교감을 즐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일부 관광객들은 사슴에게 전통적인 간식인 사슴용 과자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슴을 함부로 다루거나 먹이를 지나치게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도다이지와 나라 공원에서 사슴들은 일본의 문화유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존재로, 일본의 신토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동물로 여겨진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도다이지(東大寺)의 거대한 불상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불상 중 하나로, 노사나 대불(盧舎那大仏)이라고도 불린다. 이 불상은 석가모니 부처를 형상화한 것으로, 도다이지의 상징이자 일본 불교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대불은 749년에 완성되어, 대불전(大仏殿)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일본의 불교 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이 불상은 높이 약 15미터, 무게 약 500톤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불상의 얼굴은 평화롭고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며, 손은 평화의 상징인 왼손은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다. 대불은 일본의 불교를 대표하는 법(法)을 전파하는 존재로, 신앙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노사나 대불은 천황 쇼무의 명령으로 만들어졌으며, 당시 천황은 나라 시대(710-794) 일본의 통일을 기원하고, 불교의 교리를 통해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려 했다. 불상의 건립은 불교의 교리와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불상은 당초 금속과 나무로 제작되었고, 여러 차례 화재와 재해를 겪으며 복원 작업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도다이지의 대불은 그 크기와 장엄함으로 인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거대한 불상은 일본의 불교 예술과 종교적 신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으로, 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하여 그 위엄을 감상하고 기도한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도다이지 나반존자(나반존자)
도다이지에는 나반존자라는 불교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 나반존자는 원래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 중 하나로, 십육나한 중 제1존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리며, 일본에서는 빈즈루(Binzuru)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빈즈루는 치유와 자비를 상징하는 인물로, 일본 불교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과 치유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빈즈루의 동상은 주로 노인 모습으로 묘사되며, 지팡이와 구걸 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빈즈루의 동상을 쓰다듬으면 그의 치유력을 전해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전통은 도다이지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참배객들은 빈즈루 동상을 만지며 자신의 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한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도다이지는 이러한 신앙과 함께 일본 불교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치유와 평안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일본 나라 지역을 돌아보며 백제와 깊은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백제는 6세기 초 일본에 불교와 중국 문화를 전파했고, 특히 백제의 왕인과 승려들이 일본에 불교 경전과 한자를 전달했다. 백제는 일본에 군사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일본은 백제의 멸망 후 유민들을 받아들여 불교와 문화를 계승했다. 나라 지역의 호류지(法隆寺)는 백제의 불교 건축과 미술을 계승한 대표적인 예로, 백제의 문화가 일본 불교와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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