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05 오키나와 탐방-가카즈다카다이 공원, 구타카섬 지난 10년간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1년에 2번 정도는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된 것은 단순히 연구와 관련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오키나와에 드나들며 몇 분의 작가 및 연구자와 깊은 인연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3박 4일 정도를 방문해도 거의 매일 그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오키나와는 다른 일본 도시들과 달리 전차나 트램 등이 촘촘히 연결돼 있지 않다. 나하 시내에 모노레일이 깔려 있기는 하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돼 있어서 공항에서 나하 시내를 갈 때 등을 빼고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번 오키나와를 방문하다 보면 모노레일보다는 역시 렌트카를 찾게 되는 이유다. 이번 방문에서도 나하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렌트카를 빌리러갔다. 보험까지 다 넣어서 3일에 1.2만엔 .. 2024. 10. 6.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여정-페트린타워와 성니콜라스성당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해서 체코 프라하로 이어진 이번 여행도 마지막 일정만이 남았다. 귀국일을 제외하고 딱 하루가 남은 상황에서 프라하에서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 페트린타워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는 분과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해서 오후 시간만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어디 멀리 갈 수는 없는 상황. 그래서 오후 시간에 페트린타워를 보고 저녁에는 성니콜라스 성당의 벨타워에 올랐다. 벨타워는 나치의 체코 지배에 항거하는 시위와 관련된 장소라서 꼭 한 번 가보려 했던 곳이기도 하다. ♣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로호텔에서 트램을 타고 10분쯤 이동해 내린 후, 걸어서 페트린타워까지 올라갔다.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니 그게 싫다면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나 홀로 여행인데다 시간도 넉넉히 있어서 걷기로 했다.걸어서 63.. 2024. 10. 5. 프라하 천문시계탑전망대 및 스메타나뮤지엄을 다녀와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로 온 후 이틀 동안 카를교 주변과 시내를 돌아보고,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서 여기저기를 계속 돌아다녔다. 카프카뮤지엄, 카프카묘역, 황금소로, 움직이는 카프카 두상 등. 귀국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모든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프라하 천문시계탑 전망대에 나 또한 가보기로 했다. 여기는 프라하를 잘 아는 분의 안내를 받고 올라가서 도시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니 그 분이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역시 자기 힘으로 체험하지 않은 경험은 기억에 각인되지 않고 휘발되어 버린다. :- ♣ 프라하 천문시계탑 전망대(구 시청사)으로 가는 길 프라하 천문시계탑을 보러 호텔에서 나와 트램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천문시계.. 2024. 10. 4. 나 홀로 카프카뮤지엄, 카프카묘지 투어 /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에 도착해 삼일째 되는 날, 하루 종일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프라하에서 만난 일행들이 있었지만 일만 함께 하고 나 홀로 다니기 시작했다. 답사 등에서 많은 이들을 인솔해서 다녀봤지만 기동력 있게 움직이려면 나 홀로 투어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함께 다니며 즐거운 일도 많지만 꼭 한 두 명씩은 음식과 장소에 관해 불평을 늘어놓기도 해서 가끔은 나 홀로 다니고 싶어진다. 오스트리아, 체코는 나 또한 처음 와보는 곳인지라 인솔할 능력도 안 되고 일행 대부분은 체코에 여러 번 와봤어서 그런지 목적지가 겹치지 않았던 것도 '나 홀로'의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홀가분하게 나 홀로 카프카 투어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카프카뮤지엄'이다. 순서는 카프카뮤지엄 -.. 2024. 10. 3. 카프카의 도시 프라하-카를교, 프라하성 산책 ♣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라하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나흘 동안의 여정을 마치고 프라하로 이동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하지 못 했던 약간의 헤프닝이 발생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오전 6시 20분 기차로 이동을 해야 하니, 6시까지는 기차역에 도착해야 하는데 트램을 잘못 타서 진땀을 흘렸다. 트램을 갈아타고 가야 하는데 잘못된 번호의 트램을 타는 바람에 우버를 타지 않는 한 기차를 놓치게 됐던 것이다. 잠이 덜 깨는 바람에 일어난 일인듯 하다. 그래서 트램에서 내려 우버를 불렀다. 시간이 촉박하니 우버 요금도 프리미엄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 25유로 쯤이 아니라 40유로 가까이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차를 놓치면 이후 여행 일정이 모두 꼬여버리니. 우버에 타서 기사님께 기차 시간을 알려.. 2024. 10. 3. 어느 일본 작가와 시인 김종한의 우정 일제의 패망이 점차 다가오고 있던 1944년 9월 말, 식민지 조선의 시인 김종한은 급성 폐렴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여기에 번역해 소개하는 글은 노리타케 카즈오(則武三雄, 1909-1990)가 그런 김종한의 죽음을 애도하며 『국민시인(國民詩人)』(朝鮮文人報國會詩部會 機關誌, 第四卷四號)에 발표한 것이다. 이 글을 번역 소개하면서 다음 두 가지에 주목해 봤다. 첫째, 『국민시인』이라는 매체의 존재와 김종한의 일본어 시 「광진」의 발견이다. 이 글을 보고 일제말 인문사(人文社)에서 발행한 『국민시인』이라는 잡지의 존재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이 잡지는 1945년에 발행된 것으로 일부 연구에서 다뤄져 왔으나, 이는 적어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서정주가 관여했다고 회자되고 있는 『국.. 2024. 10. 1. 나 홀로 레오폴드뮤지엄 방문기-에곤 쉴레와 클림트를 찾아 / 빈 오스트리아 빈 방문 사흘때 되는 날 레오폴드뮤지엄을 찾았다. 프라하를 일로 방문하며 빈을 경유지에 넣은 가장 큰 이유는 레오폴드뮤지엄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봐서 사흘째에 레오폴드뮤지엄 방문을 넣었는데 다행히 하늘이 맑다. 전날 트램을 타고 벨베데레를 방문해봐서 레오폴드뮤지엄 가는 길은 더욱 수월했다. 아래 지도의 동그라미로 친 곳이 바로 레오폴드뮤지엄이다. V표시가 벨베데레 궁전. 호텔에서 나와 20분 정도 걸려 꿈에 그리던(?) 레오폴드뮤지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그림 애호가들이 많은데, 나는 두 화가 다 좋아하지만 그림에서 느끼는 강렬한 인상은 클림트보다는 쉴레 쪽에서 더 받았다. 그래서 프라하에서 일행들과 만나기 전에 나 홀로 .. 2024. 10. 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세키구치 야스요시 교수 / 일본 측 추천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 기행문 한국어 번역을 기대하며 세키구치 야스요시関口安義 / 쓰루문과대학都留文科大学 명예교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기행문『지나유기支那游記』(『중국유기中国游記』)는 오늘날 일본과 중국에서 재평가 되고 있다. 1920년대 초, 검열이라는 국가의 탄압을 의식하면서 허용된 표현의 범위 안에서 아슬아슬 하게 줄타기하며 중국의 실태를 그린 이 작품이 현재 새로운 고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에서는 일본의 연구 상황을 흡수하면서 세 종류의 『중국유기』가 각가 다른 번역자에 의해 출판됐다. 과거 중국에서 아쿠타가와는 중국을 멸시하는 내용의 기행문을 쓴 작가로 여겨져 부정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쿠타가와가 『지나유기』에서 1920년대 초기 중국을 사실적으로 명확히 .. 2024. 9. 3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오자와 준 연구자 / 일본 측 추천문 저널리스트로서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개조사改造社의 저널리즘을 둘러싸고 오자와 준小澤純 / 아쿠타가와 문학 연구자 『지나유기』를 간행한 개조사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관계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개조사는 정치적 야심을 계속 품고 있었던 가고시마鹿児島 출신의 야마모토 사네아쓰山本実彦(1885‐1952)가 1919년에 창업한 신흥 출판사다. 야마모토는 정치적으로는 보수파로 소년 시기에는 오키나와에서 소학교 대용교원(자격증 없이 교직에 종사)이 됐고, 야마토신문사やまと新聞社에서 일할 때는 런던 특파원으로 파견됐다.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했을 때는 러일공동사업의 가능성을 모색했으며, 현대 중국에 대해서도 강한 관심을 갖는 등 저널리스트적인 감성이 풍부했다. 종합잡지 『개조』는 데모크라시democracy를.. 2024. 9. 3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시노자키 교수 / 일본 측 추천문 '흔들림'으로부터 배운다 시노자키 미오코篠崎美生子 / 게이센여자학원대학 교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910년대부터 20년대에 걸쳐서 활약한 단편소설 작가지만, 살아 있을 당시에도 아시아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어 실력이 출중한 독자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 그 정도로 많았던 것은 당시 일본이 식민지를 만든 결과라 하겠습니다. 다만 아쿠타가와가 1927년에 자살했을 때, 그 형이상학적인 죽음을 흉내 낸 청년은 일본 만이 아니라 조선에서도 있었습니다. 당시 아쿠타가와가 그 정도로 강력한 언설 생산력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 그가 구사한 언어를 시대 속에 다시 놓고 진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일본의 독자, 연구자만의 힘만으로.. 2024. 9. 30. 합스부르크의 상징 벨베데레 궁전 방문기 / 오스트리아 빈 프라하에 갈 일이 생겨 비행편을 찾아보던 중, 여러 항공사와 경유지를 검토하게 되었다. 다양한 옵션이 있었지만, 결국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핀에어의 인천-헬싱키-비엔나(빈) 경유편이었다. 가격도 적당했고, 경유 시간이 짧아 여행이 피로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엔 단순히 프라하로 가는 여정의 중간 경유지일 뿐이었지만, 빈을 끼워넣으면서 예상치 못한 오스트리아 빈 여행이 내 일정에 자연스레 포함되었다. 이런 우연한 기회는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귀국편은 프라하에서 출발해 헬싱키를 거쳐 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빈은 나에게 있어 그저 경유지일 뿐이었는데, 이번 여정 덕분에 오스트리아의 수도를 잠시나마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침 빈에서 체류할 시간이 짧지 않아, 도착한 첫날부터 빈 시내를 둘러볼.. 2024. 9. 3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국기행>> 진강 교수 / 중국 측 추천문 지성이 연마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중국 기행 진강秦剛 / 북경외국어대학 교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근대 일본인 작가 가운데서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애독된 작가 중 한명이다. 그것은 그가 아시아에 공통된 전통적인 문화 교양을 지니고 구미歐美 문학과 깊이 있게 접촉함으로써 현대문예의 소양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시야를 확보해서 주옥과도 같은 작품을 많이 창작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등의 문제는 아쿠타가와가 전 생애 걸쳐 전개했던 문학적 주제였다. 아쿠타가와는 유행작가가 된 젊은 무렵부터 동서의 교양과 지성을 겸비하고 있는 문화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21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서 아쿠타가와는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大阪毎日新聞社의 특파원으로서 중국 각지를 넉 달에.. 2024. 9. 30. 이전 1 ··· 4 5 6 7 8 9 10 ··· 18 다음 728x90